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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장소&문화

아픈 사람들의 사랑방, 수정 2동 시민약국


김윤경






오래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곳, 오랜 이야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을 찾고 싶어서 무작정 수정시장으로 향했다. 

“이 근처에 오랫동안 사람들이 찾는 곳 없나요?”

쉽게 답을 찾지 못할 것 같던 두루뭉술한 나의 물음은 의외로 쉽게 해결되었다. “오래된 곳? 있지. 시민약국! 일제시대 때부터 약국하던 곳인 데 거기 한 번 가봐~” 두세 분 더 물어봐도 답은 똑같았다. ‘시민약국.’ 이 동네 사람이면 시민약국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지, 길 또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1969년부터 지금까지, 산복도로의 이야기를 간직한 시민약국을 만나보자.







언제부터 산복도로에서 약국을 하셨나요?

/ 69년부터 했지. 그 때는 이 동네에서 이 집만 기와집이고, 다른 집들은 다 하꼬방(천막치고 사는 막집)이었어. 여긴 일제시대 약방 했던 곳이었거든. 할아버지가 처음엔 진주에서 한의원을 하다가 광복동에서 약국을 했지, 거기는 약국이 많기도 해서 69년에 여기로 터전을 잡았어. 사모님이 의사였거든. 그래서 2층은 의원을 하고, 1층에는 약국을 같이 했어. 시민약국, 시민의원.


약국과 의원을 같이 하다니. 아프면 모두 ‘시민’을 찾았겠어요. 실제로는 어땠어요?

/ 아침에 눈 뜨면 길 앞에 50명 넘게 줄서서 기다리곤 했어. 84년까진 시민의원, 시민약국 이렇게 병원과 약국을 같이 했지. 그땐 약국에서 약 처방하던 시절이었지. 여기 산복도로는 다 빈민촌이었어. 어지간하면 다 여기 왔지. 죽는 병 말고는 여기 와서 다 낫는다고 사람들이 싸고 약도 잘 듣는다고 했었지. 


지금도 손님들이 많은 거 같아요. 단골들이 있나요? 단골들이 계속 찾게 되는 시민약국의 비결(?)도 알려주세요. 

/ 그 때 오던 사람이 이사해도 생각나면 다시 오더라고. 병원에 안 가도 처치를 간단하게 해주고, 상담도 해주니까. 어느 병원에 가면 좋다, 민간요법까지 되도록 환자들에게 알기 쉽게 궁금한 걸 다 알려주니까. 형식적으로 파는 게 아니거든. 말 안 듣는 건 환자 몫이지만, 일러주는 건 우리 몫이니까! 요샌 너무 메말라있어. 환자들은 아프니까 갑갑한 게 많거든. 의사들이 5~10분만 더 친절하게 얘기를 해줘도 환자들은 많이 해소될 거야. 우린 그런 상담을 해왔으니까 그런 게 마을 사랑방처럼 사람들이 약을 꼭 안 사더라도 여기 와서 묻고 가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하더라고. 






산복도로의 변화를 함께 하셨겠어요. 

/ 그럼, 여기도 많이 발전했지. 하꼬방이었던 이 길도 옆에 양화점, 간판집, 라디오방, 미장원, 세탁소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더니 조금씩 발전한 거지. 앞에 저 새마을금고도 가구방이었어. 옛날엔 7-8만원이면 살 수 있었다니까. 왜 티비에 나오는 이북의 모습 같았다고 보면 돼. 점차 개발이 되고 집 자체부터 변화하면서 우리의 생각들도 변하고 있는 거 같아.


앞으로도 계속 이 자리에서 ‘시민약국’을 하실 건가요? 

/ 앞으로도 계속 이 곳에서 장사하면 좋지, 동네 사랑방 같은 이런 곳이 필요하니까. 나도 그만두고 싶어도 잘 안돼. 약국 안에 집이 있으니까. 사람들이 아프면 계속 전화하고 문 두드리고 그러면 밤 늦도록 문을 열어야하고. 사람들이 계속 찾으니까 앞으로도 계속 못 그만두지 않을까 (웃음)



1969년부터 있었다는 의자! 여전히 편안한 쉼터를 내준다.


콜레스테롤 예방에 좋다는 양파껍질 달인 물. 건강에 좋다며 나에게도 한잔 주셨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계속 손님들이 다녀갔다. “이상한 거 물린 거 같은 데 뭐 발라야 해요?”하며 연고를 찾는 이부터, “저번에 딴 데 가니까 설명을 잘 안 해주더라고~ 그래서 쫌 먼 데도 또 왔어”하고 처방전을 들고 온 이, “나온 김에 들렸어. 물 한잔 먹고 가자.”하고 물 한 잔 마시고 가는 어르신까지. 다들 앉아서 주인이모가 따라주는 물 한잔에 약을 먹고,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다 간다.

흙벽과 나무기둥, 69년의 목조양식 그대로인 시민약국은 외관뿐 아니라, 매일 매일 좋은 물을 달여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손님들을 맞이하는 따뜻한 주인의 마음까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아픈 사람들의 갑갑한 마음을 잘 알아주는 주인이 있어, 따뜻한 산복도로의 ‘시민약국’은 오늘도 영업중이다.



* 이 글은 개념미디어 바싹이 사)슬로산복커뮤니티와 함께 부산 평생교육진흥원, 부산광역시의 '산복도로 생활인문콘텐츠 프로그램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된 원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