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께서 정성스레 차려주시던 그 밥
초량동 밥집. 진미 식당
어릴 때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책가방을 던져 놓고 친구들과 정신없이 노는 게 일상이었다. 그렇게 지칠 때까지 놀다 해 질 무렵 골목길로 들어서면 보글보글 된장찌개 끓는 냄새가 나고 송송송. 뚝딱뚝딱. 도마 소리가 들렸다.
이제는 늦은 퇴근. 길 집으로 돌아올 때면 두부, 호박, 감자, 양파, 집된장 넣고 끓여 낸 구수한 된장찌개, 호박나물, 오이소박이, 멸치볶음, 장아찌, 배추김치, 생선구이. 엄마가 한 상 차려냈던 저녁밥상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던 옛 기억이 나곤 한다.
그렇게 집 밥이 그리운 날이면 진미 식당을 찾는다. 집된장을 넣고 끓인 찌개와 소박하고 정갈한 가정식 반찬, 그리고 많이 먹이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고봉밥까지! 식후엔 할머니께서 직접 만드신 살얼음 동동 식혜가 디저트로 나온다.
무엇보다 이 식당에선 작은 것도 함께 나누는 이웃들을 만날 수 있다. 항상 이 식당을 이용하는 사람 좋은 주차장 아저씨, 고추 한번 먹어보라고 한 움큼 주고 가시는 할머니.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인사 나누는 정겨움이 있다.
다들 밥은 잘 먹고 댕깁니까?
요즘 제대로 먹는 거 같지 않고, 먹어도 뱃속이 허하다면
여기 정성가득 집 밥 먹고 기운 좀 차려 보이소!
4대째 이어 온 맛
수육과 국수가 맛있는 집. 평산옥
국수와 수육이라니! 처음엔 이 두 음식의 조합이 너무 생뚱맞았다. 수육하면 김장김치 담그는 날 푹푹 삶은 돼지고기에 김치 찢어 올려 먹거나, 주머니 사정이 좋은 날 맛집에서 먹는 수육 백반이나 떠올렸는데 아니 수육을 밥이 아닌 국수와 먹는다고? 절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조합을 확인하러 평산옥에 갔다.
국수 2000원, 수육 8000원!
주문을 하면 정갈하고 깔끔한 반찬이 나온다. 반찬은 마늘, 양파, 풋고추 짭조름하게 무친 경상도식 부추 무침, 무생채, 돼지고기와 찰떡궁합인 새우젓, 그리고 이 식당만의 비법소스로 차려진다. 특히 이 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비법 소스는 새콤달콤한 그 맛이 돼지고기와 환상의 궁합을 이룬다. 돼지고기의 느끼한 맛을 잡아주어 한층 더 깔끔한 수육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국수! 흔히 국수하면 떠올리는 멸치 육수의 맛이 아니다. 부드럽고 깔끔한 맛에 눈이 번쩍할 것이다. 아마 육수를 우려낸듯한데 그래서 수육과 더 잘 어울리는 모양이다. 국수와 수육의 조화! 이 맛이 궁금하다면 직접 평산옥에 가서 확인해 보시라!!!
통조림 팥의 단맛이 물린다면!
동구 초량동. 천지빼까리 카페
한여름의 열기를 식히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팥빙수를 찾는다. 차가운 얼음에 달콤한 팥을 함께 먹으면 입도 즐겁고 더위도 물러간다. 하지만 그 빙수에 들어가는 팥이 중국산 통조림 팥이라면 금세 질리고 만다. 민감한 사람은 방금 빙수를 먹었는데도 물이 캐이는(마시고 싶은) 그런 상태에 주화입마 되기도 한다.
또, 요즘 카페에는 빙수도 가지가지다.(전혀 상관없지만 어릴 때 할매가 하던 욕이 문득 떠오른다. “빙신도 가지가지네”) 팥빙수, 녹차빙수, 딸기빙수, 커피빙수, 블루베리빙수……. 하지만 이런 빙수들은 밥값보다 비싸 지갑을 열기가 망설여진다. 빙수도 너무 가지가지다.
동구 초량동에 있는 마을카페 ‘천지빼까리’에서는 직접 쑨 국산 팥에 과일 잼을 얹은 깔끔한 팥빙수를 판매한다. 가격도 무려 3,000원으로 저렴해 밥 먹고 후식으로 먹기에도 부담 없다. 착은 가격 뿐 아니라 착한 재료 덕분에 빙수를 한 그릇을 비워낼 때까지 물리지 않고 다 먹은 뒤에도 깔끔하다.
천지빼까리의 팥빙수에는 기호에 따라 딸기잼, 복숭아잼, 사과잼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이 중에서도 특히 사과잼이 일품이다. 팥빙수를 한 입 떠먹으면 사과 알갱이가 함께 씹힐 정도로 산뜻하다.
통조림 팥과 통조림 과일이 들어간 팥빙수는 보통 400kcal가 넘는다고 한다. 하지만 직접 삶은 팥과 생과일을 사용하면 칼로리가 많이 줄어든다고 한다. 아무래도 건강에도 더 좋지 않겠는가. 직접 준비한 재료에 이렇게 착한 가격까지. 목뒤로 땀 기운이 느껴지거든 이 천지빼까리 팥빙수를 떠 올려보자. 요즘 열 받을 일도 천지빼까리니까 스트레스를 식힐 사람에게도 추천한다.
배달안하는 자장면 집
초량동. 금수관
혼자 여행을 다니던 때가 있다. 여행 초짜였던 내게 고수들이 알려준 여행 팁 중의 하나는 유명하다고 알려진 음식점보다 기사님들이 추천하는 집을 찾아가라는 것이었다. 굳이 여행이 아니어도 직장인들이 매일같이 하는 고민이 점심 때 뭐 먹을 것인가 이기도 하다. 산복도로로 출근하면서 나도 점심때마다 고민이 많았고, 여기저기 밥집을 기웃거렸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택시가 많이 주차되어 있는 곳을 발견하게 되었다. 택시 기사님들이 찾는 바로 그곳, 여행 고수들의 나침반이 가리키던 바로 그곳. 그곳에 아주 오래된 간판의 중국집 금수관이 있었다.
사람들이 흔히 초량동에서 유명한 것 하면 불백과 밀면, 돼지국밥, 돼지갈비를 꼽는데 이런 것들은 주로 육거리에 가면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음식점들이 많은 육거리에서는 택시 기사님들을 많이 찾아 볼 수가 없었는데 의외로 산복도로에 위치한 금수관에는 기사님들이 몰려 있었다. 아는 사람만 찾아가는 맛 집이라는 증표!
금수관의 자장면은 옛날 자장면 맛이 난다. 요즘 흔히 먹게 되는 자장면에는 감자와 고기를 찾아볼 수가 없는데, 금수관 자장면은 깨알같이 감자와 고기가 씹히는 즐거움이 있다. 그렇다고 자장면만 맛있는 것은 아니다. 해물 가득하고 시원 담백한 짬뽕도 일품이다.
고급 중화요리라고 할 수는 없지만 금수관의 자장면과 짬뽕에는 어릴 적에 먹던 소박한 맛이 나서 편하고 좋다. 건물도 오래 되어 옛날 느낌이 더 나고 식당 안도 좁다. 금수관을 어렵시리 찾았는데 앉을 자리가 없다고 당황하지 말자. 안쪽에는 가정집 같은 방이 있어서 조용하고 편안하게 먹을 수 있다.
문수정. 마을 활동가(슬로산복 커뮤니티)
* 이 글은 개념미디어 바싹이 사)슬로산복커뮤니티와 함께 부산 평생교육진흥원, 부산광역시의 '산복도로 생활인문콘텐츠 프로그램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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