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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장소&문화

<Frozen> - 그림자는 내 몫이다.

by 마틴




성장통이란 말을 곱씹어보자. 왜 성장하는 일은 빛나는 기쁨만일 수 없이 고통스러울까? 나아가 고통없이는 성장할 수 없다는 말인데, 그 이유는 뭘까? 엘사는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드는 재능(gift)를 지니고 태어났지만, 이 재능은 또한 저주(curse)와 같다. 엘사는 놀다가 그만 여동생 안나를 다치게 하고 만다. 놀란 부모는 "일단 숨기라(Elsa! conceal, don′t feel!)"고 조언한다. 아직 자신을 조율할 수 없어 스스로를 다치게 하기 때문에 그 위험을 막기 위한 미봉책이지만, 그리하여 발생하는 것은 갇힌 자아라는 '그림자'다. 독일의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은 이 '그림자'에서 자신의 이론을 정초해나간다. 성장한다는 말은 집단 문화가 수용하는 것과 수용하지 않는 것을 가려내어 전자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회가 수용하는 것은 자아가, 수용하지 않는 것은 그림자가 되는데 성장은 그림자 형성과 함께 필연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이다.

문명은 억압으로 출현한 것인데, 문명화, 사회화의 억압으로 자아는 분열된다. 이렇게 분열된 상태로, 자신의 그림자를 통합하지 못하면 '투사: 남에게서 자신의 어두운 면을 발견하려 드는 것'를 벌이게 된다. 현대 심리의 가장 위험한 면은 바로 자신의 그림자를 우리가 아닌 '그들', 즉 이웃이나 다른 민족, 혹은 다른 문화에 속하는 사람들에게서 발견하려는 것이다. 빛은 숭배하고 어두움을 거부하면 생기는 부작용이 바로 차별과 전쟁이다. 당혹스럽겠지만 그림자는 항상 우리 곁에 존재한다. 자기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수용하는 일은 일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체험이다.

이렇게 보는 건 어떨까? 엘사와 안나는 한 인격의 분열된 두 모습이라고. 엘사는 공주로 태어나 왕비가 되어야 하는 사회적 책임이 막중하지만, 천진하게 뛰어놀고 싶은 소녀이기도 하다. 이 후자가 안나인 셈이다. 그럼 한 쪽이 더 중요한가? 그렇지 않다. 엘사와 안나는 서로에게 자아이자 그림자인 셈이다. 이 분열의 양상은 전자는 자신에게 남다른 능력이 있고, 그것을 기르는 동안에 아직 친구를 얻지 못하여 외롭고 추운 시절을 견뎌야 하는데 반해, 후자는 관계적이고, 친구도 연인도 금방 사귀지만, 아직 성숙하지 못하여 좌충우돌을 거듭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이 두 개의 모습은 서로에게 역설이면서, 그래서 오히려 서로가 꼭 필요하다.

자, 이제 오랫동안 갇혀 지냈던 엘사가 무거운 문을 열고 나온다. 일단 '왕비'가 되는 일 보다 더 중요한 것은 'Let it go'. 그래, 얼마나 불만이었는데! 쌓인 것 다 내는 거야(catharsis)! 일단 내 맘에 드는 가상의 현실을 지을거야! 이를 융은 '자아의 퇴행적 복원'이라고 부른다. 그 환상의 겨울왕국의 눈의 궁전에서 그녀는 아름답게 변신한다. 그러나 그녀의 그림자가 따라붙어 다음과 같이 말해준다. 'Arendel is frozen and deep deep deep in snow.’행복해? 근데 다 얼어붙었어!

최상의 보물은 가장 무시되어왔던 자리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대극적인 요소를 받아들여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충돌을 의식적으로 온전하게 견뎌낼 수 있을 때 역설을 수용할 수 있다. 역설을 받아들이는 능력은 정신적 강인함의 척도이자 성숙의 확실한 표식이 된다. 해결책은 서로 대립하는 상반된 에너지의 동력 안에서 탄생되어야 한다. 문명이 나를 쪼개어 개별화시켰으나, 그 작은 퍼즐을 깨고 나와 나의 그림자와 다시 통합하는 숙제는 내 몫이다. 이 역설을 받아들이는 것은 고통스럽다. 그래서 성장과 성숙에 고통이 따르는 것이다. 윤리적인 사람이 자기 존재의 핵심에 도달하는 고통을 겪어내려 할 때 자기the Self가 등장한다. '자기'는 '자아'보다 더 큰 '나'이며, 파편화되어 투사하는 것이 아니라, 투사의 그림자가 자신의 것임을 알고, 자신의 그림자와 통합한 '나'다.

그녀가 파편화된 채, '왕자'와의 로맨스로 귀결되지 않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사랑하기 전에 자아통합이라는 숙제가 관건이다. 자신의 그림자와 통합하지 않은 미성숙한 이들의 과대망상이 바로 로맨스라는 환상이다. 이들은 상대를 만나서 투사라는 지옥을 열 뿐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그림자가 자신의 것임을 모르고, 상대의 것이라는 생각에서 못 헤어나 비난과 증오를 반복하게 된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타인을 들일 자리가 없던 내가 그림자를 통합하여 하나의 인격을 이룰 때쯤,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백이 생기는 것이다. 심오한 진리는 선이 악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선과 악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치유는 밝은 요소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빛과 어둠이 서로 닿기 시작하는 곳에서 기적이 일어난다. 드디어 자신의 재능을 펼치면서도 사람들을 기쁘게 하며 어울릴 수 있는 엘사 XOX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