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정구에서 만들어지는 협력들
박진명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 선생 눈에는 가르칠 대상만 보이고, 검찰 눈에는 사기꾼만 보이고, 장사꾼에게는 고객만 보인다. 그것이 습관이 되면 벽이 되고 혼자 떠들고 있거나, 시도 때도 없이 의심의 눈초리를 날리고, 속이든 뭐든 팔아먹을 궁리만 하게 된다. 그런 습성의 벽이 깨지기 시작하는 것이 여행의 어느 순간이고, 예술을 통해서 감동을 받는 순간이다.
그렇다고 그런 변화의 시간이 꼭 장기간의 여행이나 위대한 예술에서 시작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 있지만 미처 알지 못했던 사람들의 장점이나 가치가 달리 보이기 시작할 때 또한 크게 벽이 허물어지는 시간이다. 그렇게 만난 사람들과 만들어가는 좋은 사귐이 또한 여행이고, 커다란 감동을 동반한다.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습벽을 되풀이하면서 듣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한다.
어울림이 중요한 이유다.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자기 편견이 강하고 불평도 많다. 편견이 크고 불평이 많으면 오해와 갈등이 생기거나 지독한 무관심의 상태에 머무르기 쉽다. 어울리면 다른 시각과 재능이 섞이고, 예상치 않았던 제안이 나오고, 그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거나 할 수 없을 거라 여겼던 일들을 해내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협력을 통해서.
<십여 곳의 단체들이 함께 하는 장전커넥션회의 모습>
금정구에서는 각자가 지닌 습벽을 넘어서는 자리들이 하나 둘 만들어지고 있다. 다양한 주제를 지닌 개인이나 단체들이 각자가 해오던 활동이나 장르를 넘어 어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우선 부산대 일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화단체들이 정기적인 반상회를 하고 있다. 지난 해 협력의 경험을 가졌던 인디나 청년문화단체인 재미난 복수, 고양이레이블을 비롯 인문카페 헤세이티, 여행관련 마을기업과 인형극과 아동 교육 관련 사회적기업인 금빛물고기와 문화공간 예예, 공연단체 메이클라인, 일요일마다 온천천에서 아트마켓을 여는 아마존, 라틴 탱고 동호회 라로사, 작은고추 디자인스튜디오, 그림을 가르쳐주고 공공미술 등을 하는 화가공동체 민들레, 일상을 재미있게 하기 위한 다양한 기획을 하는 커뮤니티 카페 생활기획공간 통 등이 모여 ‘장전커넥션’이라는 이름으로 매월 반상회를 개최하고 있다.
<예술가이모삼촌 만나기를 통해 청소년 교육을 고민하는 예술가들>
이들은 각 단체의 계획을 공유하면서 협력을 통해 각 단체가 만들어내는 행사의 질을 높일 뿐 아니라 청소년 문화예술교육을 함께 진행하기도 하고 지역의 문화역량을 활용해 지역축제를 만들기도 한다. 이를 통해 “예술가 이모․삼촌 만들기”라는 청소년 문화예술 교육프로그램을 함께 하고 있고 30회째는 청소년들과 예술가들이 함께 축제를 직접 기획하고 진행할 예정이다. 5월에는 금정산성 막걸리축제 사전 행사를 문화단체들 간의 협력으로 “청춘을 누가 막걸리”라는 이름으로 온천천에서 진행하였다. 또 8월 독립예술제 “Zero Festival”을 3일간 부산대 일대에서 진행했다. 다양한 장르, 단체 간의 협력을 통해서 문화 행사의 질이 높아지는 것을 넘어 교육 등 지역의 문화 자체가 풍성해지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다.
< 청춘을 누가 막걸리를 함께 만든 장전커넥션 >
뿐만 아니라 8월에는 복지를 단순한 지원을 넘어 문화를 통해 각 개인들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으로 확대하기 위해 의논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문화복지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포럼이 개최되어 구내의 복지관, 금정경찰서 이주민 지원 담당자, 이슬람 성원의 금샘 외국인센터, 금샘마을 공동체, 생활기획공간 통과 아마존, 화가공동체 민들레 등의 문화단체, 에코언니야, 아름다운 가게, 교육복지사 등 구내에서 활동하는 단체들 뿐 아니라 구청, 문화재단이 모여 사례를 발표하고 그간 각자의 사업에 골몰했던 것을 넘어 협력을 통해 지역의 복지를 함께 고민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두 달에 한 번씩 모여 좋은 사례들을 공유하고 금정구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지역으로 가꾸어 가기로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베푸는 복지가 아니라 촘촘한 관계를 형성해가는 복지로 방향을 전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금정구 문화복지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포럼>
이러한 협력의 자리들은 금정 예술공연지원센터(GAS)에서 진행되고 있다. 금정구에서 만든 GAS같은 센터가 단순히 공간을 제공하거나 프로그램만 진행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과 관련한 다양한 필요와 욕구를 지닌 주체들을 모아내고 정보를 유통하는 사랑방 역할을 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지역에 생겨난 문화공간의 역할에 있어 지역의 다양한 문화역량을 파악하고 연결하는 매개 기능의 중요성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러한 어울림의 자리들을 통해 그동안의 습성과 벽을 넘어 이웃에 살고 있는 예술가들의 어려움도 보이고, 지역에서 꼭 함께 키워가야 할 아이들도 보이고, 이주민 노동자와 자녀들도 보이고, 지역도서관의 소중함도 보일 것이다. 이렇게 우리 주변에 있는 문화와 다양한 이웃 사람들의 이야기를 여럿이 함께 고민함으로써 더 이상 혼자 떠들거나 의심과 불평에 휩싸일 필요 없이 협력에서 오는 크고 작은 감동이 있는 지역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장
motwjm@naver.com
'+컬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배시발(先輩始發)론을 넘어 후배무용(後輩無用)론으로 (0) | 2013.05.13 |
---|---|
양아치 세계에서의 사회적 기업과 SSM (0) | 2013.04.20 |
[특집- 협력을 통한 문화의 흐름2] 청년문화와 지역공동체의 협력 (0) | 2012.09.06 |
[특집- 협력을 통한 문화의 흐름1] 연대를 통한 청년들의 실험 (0) | 2012.08.01 |
[바싹 컬럼] 잔인한 먹이사슬의 학대 (0) | 2011.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