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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시발(先輩始發)론을 넘어 후배무용(後輩無用)론으로

글 : 편집장

 

 

몰라뵈서 죄송합니다”. 2012년 대학을 이제 막 졸업했거나 해야 하는 시점에서 어떻게 살지 감 못 잡고 있는 세 바보가 뭉쳤다. 이들은 올해의 목표는 무엇인가요?”라는 식의 바보 같은 질문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했다. 이름하여 세 얼간이 프로젝트(3 idiot project). 인터뷰를 한다고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어지간히 답답했던 모양이다. 인터뷰 내용과 사진을 정리해서 꼬박꼬박 웹에 포스팅까지 했다. 교수도 선배도 주지 않던 답을 스스로 찾아 나선 세 바보의 엉뚱한 행보에서 청춘의 가능성을 보게 된다.

취업 스트레스에 탈모가 일어나고, 밥을 주문하기 전 지갑에서 지폐보다 망설임을 더 두껍게 꺼내는 청년들에게서 이런 시도가 일어난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대기업 사원과 공무원을 키워내는 인큐베이터 같은 세계에서 가끔 예술가라는 변종이 나오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의 부모와 친구들은 놀라워했고 실망했다. 뭐 먹고 사느냐고. 먼저 그 변종으로 태어나고 살아간 선배들도 자기 뒤치다꺼리 하느라 뒤에 태어난 변종들을 챙길 여유가 없었다. 변종들 솎아내기 쉬운 이런 환경 속에서도 꾸준히 바보들이 태어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래서 바보 같은 질문이라도 들고 작은 기대라도 가지고 세상에 나선 세 바보에게 박수를 보낼 수밖에.

몰라뵈서 죄송하다? 죄송해야 할 것은 그 바보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지닌 답답함과 의문들에 힌트를 주지 못하고, 숨통 트일 기회를 제공하지 못한 선배들이 죄송해야 할 것이다. 종종 부산의 젊은 문화인력 부족이 화두가 되면 젊은이들이 다 떠나가도록 선배들은 뭐했냐는 이야기가 나오곤 한다. 이름 붙이자면 선배시발(先輩始發)쯤인데, 앞선 데이터가 없으니 뒤따라갈 지표도 없다는 것으로 요약되겠다. 그런데도 이 바보들은 귀한 시간 내서 인터뷰하고 정리한 것을 바로 바로 공개하고 있다. 그런 바보같은 청춘을 몰라본 선배들이 죄송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생활기획공간 통도 불과 3년 전에 그렇게 바보들의 행진을 시작했다. 저질러 놓고 보는 방식도, 되는대로 정보를 오픈하는 것도 비슷하다. 바보들은 마음의 문을 쉽게 연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바보에게 쉽게 마음의 장벽을 거두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으로 이 활동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으리라. “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가고 있었고, 2011년 회춘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서로 자문하거나 사업을 제안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넓어졌다. 그래서 이곳저곳의 소식을 들을 수 있게 되고, 바보들끼리 모여서 일을 도모하는 경우를 더 자주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나 나도 여전히 그 가운데 있다.

부산대 일대의 재미난 복수, “”, 아마존, 작은고추디자인스튜디오 등 문화단체들이 장전커넥션이라는 이름으로 정기적인 반상회를 하고 있다. 바보들답게 잘 놀고, 먹고도 살기 위한 협력을 위함이라고 반상회의 취지를 정했다. 한 달에 한 번 모여서 서로의 정보나 일정을 공유하다 보니 협력의 거리도 많이 생겼고 모자란 자원이라 하더라도 더 잘 쓸 수 있는 궁리를 할 수 있었다. 바보들의 바람대로 재밌는 거리들도 많아졌고. 그 일련의 과정에 만난 예술가들과 아마추어들이 엽서 크기의 잡지를 내겠다는 바보같은 아이디어 하나로 이렇게 바싹Bassak”이란 잡지를 발간해 1년째 기사들을 발행하고 있다. 알 수 없는 바보들의 심리다.

젊은 단체들 간, 청년들 간의 결합으로 만들어지는 이런 분위기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선배들이 팁을 주거나, 좋은 판에 끼워줘서 경험치를 늘리게 하는 것이 아닌데도 앞가림을 해야 하는 비슷한 고민에서, 활동의 원동력이 되는 즐거움의 공유라는 차원에서 서로 모이고 자극 받고 하다가 뭔가를 만들어내는 식이다. 질적인 결과를 바로 보장할 수는 없지만 생계나 지속성에 대한 걱정, 창작과 새로운 기획의 즐거움을 공유하면서 만들어내는 데이터는 부산문화에서 긴 시간 진행된 데이터의 공백을 빠른 속도로 채워가고 있고 또 그렇게 되리라 기대할 수 있다.

그런 기대의 근거는 우선 페이스북 블로그 등 활동의 기록을 웹에다 남기는 세대의 특징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런 표면적인 특징 말고도 나아가 생계라는 현실과 즐거움이라는 철학을 공유하는 수평적 네트워크(관계 맺음의 방식)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들에게는 선배, 후배의 관계보다는 고민을 혼자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 자체가 힘이 된다. 그러니 콘소시엄이다 연대다 해서 행사를 만들어내는 것은 예술가나 문화 활동가를 아주 쉽게 바보로 만들어 버리는 이 사회에서 청년들이 취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의 대견한 점은 지 코가 석자인데도 다음 세대를 걱정하고 고민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다음 세대의 이름은 후배라는 이름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동료라는 이름으로 존재한다.

판을 다 깔아놓고 역할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판을 깔 때 얼마나 그 테이블의 경험을 하게 하느냐가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지름길이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성장한 사람들은 후배라기보다는 동료가 될 것이다. 이제 부산에서 오랫동안 진행된 선배시발(先輩始發)은 후배무용(後輩無用)론으로 멋있게 마무리될 필요가 있다. 문화행정이나 선배들이 겨우 살아남은 후배들의 콘텐츠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부산의 문화라는 큰 테이블에 어떻게 동료나 파트너로써 결합시킬 것인지를 고민해야 부산의 문화 인력 기반이 자리를 잡아갈 수 있다. 물론 새로이 문화활동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후배라는 명칭은 겸손하게 마음에 새기고 지역 문화의 당사자이자 파트너로서 스스로의 입지를 다져나가야 할 것이다.

선배, 후배, 문화 행정의 관계 속에서 이런 공감이 이루어지고 자연스레 자리매김할 때 선배 시발론은 후배 무용론으로 나아갈 수 있고, 더 이상 예술가가 바보로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아닌 문화환경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다시 선배시발론이다.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후배들을 테이블에 초청하는 것도, 그들을 동료로 키워내는 것도 선배들이 할 일이다. 청년들의 움직임을 밥그릇 싸움으로 환원하여 진입을 막고, 후배들이 지쳐 떠나갈 때까지 선배들만 안녕한 세계에서 창조적인 예술이니 생기 있는 지역이 만들어질리 만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