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김현지
몇 달 전부터 친구 재한은 춤을 추러 다닌다고 했다. 그 때가 한 9월쯤이었다. 들은 바로는 어떤 시민창작예술 프로젝트 정도로 알고 있었다. 재한은 모임에 나올 때마다 간혹 피나 안 공연준비 이야기를 했었다. 평소 그대로 침착한 투였지만 즐거움이 담긴 말투였던 것 같다.
재한의 두 번째 공연이 있는 토요일, 어느 청소년 프로그램의 마지막 파티에 갔다. 그곳에서 지역 뮤지션들이 청소년들을 위해 노래하는 흥겨운 무대를 보았다. 그곳에서 매력적인 여성 보컬의 노래를 듣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엘아이지 아트홀로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무대 사이드석은 이미 꽉 차있었고 전편 좌석은 반 정도 차있어 중간쯤에 앉았다. LIG 아트홀의 무대는 공연에 맞추기 위한 세팅을 항상 고민하는 느낌이 든다. 팜플렛을 꺼내 프로젝트 팀원들의 춤 프로필들을 하나하나 읽고 있으니 조명이 어두워지고 안은미 안무가가 나왔다. 무한도전에서 보던 것처럼 알록달록하게 꾸민 독특한 차림새의 모습으로. 피나안 프로젝트는 안무가 안은미가 독일의 천재 무용수 피나 바우쉬를 기리며, 또한 그녀의 예술정신인 “춤은 특별한 교육 없이도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는 언어”라고 했던 것을 실현해보는 장이다.
50여명의 참가자들이 각자 1분 59초 동안 표출하고 싶은 이야기 혹은 마음의 상태를 거의 몸짓으로만 표현했다. 자신이 선택한 의상을 입고 분장을 하고 소품을 챙겨서, 표현하고 싶은 감정들이 손끝 발끝을 타고 흐르는 그대로 움직이는 거다. 수차례, 펼쳐지는 새로운 무대들, 그 각기 다른 감정의 표현들은 놀라웠다. 춤으로, 자기 팔 다리로, 손가락 발가락 엉덩이 어깨로 표현하는 것. 그동안 익숙한 표현방법인 말과 표정이나 글 말고, 춤으로 몸으로 말이다. 처음엔 귀 기울여 듣다가도 스무 명쯤 넘어가면 집중력이 떨어지듯 혹시나 지루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팜플렛 속 안내책자엔 스무해가 지나도록 짝이 있어본 적 없단 사람은 귀여운 여인이 되어 사랑스런 몸짓으로 무릎을 까딱거리며 남자들의 구애를 거절했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가진 안면인식장애를 댄스로 표현했다. 그 때 나는 춤이 사람을 얼마나 사랑스럽게 할 수 있는지를, 또 그저 불만일 수도 있는 이야기가 퍼포먼스로 변하는 즐거움을 새삼 깨달았다. 그 깨달음은 ‘일어나’에서 극대화되었는데, 아무도 깨우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 사람의 잠 이야기였다. 여러명의 안무자가 잠옷을 곳곳에서 단잠에 빠져있는 채로 시작한다. 귀를 때리는 알람소리가 울리면 한 사람이 나와서 후닥닥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매면서 아침시간을 챙긴다. 그러는 동작 사이사이에 의자와 소파, 바닥에 널부러져 세상 모르고 자는 안무자들을 깨운다. 깨워도 깨워도 일어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처음에 자고 있던 그 자세 그대로 기어코 돌아가서 잠을 자는데 그 원래 자세로의 복귀가 위트가 넘친다. 피나 안이 제공하는 짧은 시간안에서 제일 극적이고 재미있던 무대가 아닌가 싶다. 고군분투하며 사람들을 기상시키던 그 사나이는 마지막으로 단명을 지르며 주저앉는다. 그 안에 아침출근의 괴로움이 담겨있다. 올빼미형 인간으로서 굉장히 공감되고 재미있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저런 동작과 스토리를 만들기까지가 상상되면서 두 배로 흥미로웠다. 마취과 의사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매너리즘을 심장박동표시기를 들고 나와 초록색 가운을 입고 생명선의 소리에 맞춰 움직였으며 어떤 이는 ‘나의 나’라는 제목으로 사이드석으로 나와 누군가를 빼꼼 쳐다본 일 말고는 거울 앞에 2분 내내 서있었다. 피나안은 참가자들이 원하는 형식 그대로를 수용해서 무대로 실어 보냈다. 안무 프로젝트였지만 행위예술 퍼포먼스 같은 느낌이 과반수였다.
기다리던 재한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공연 전 놀러갔던 파티에서 노래를 불렀던 싱어송라이터가 재한의 무대에서 같은 노래를 무대 깊숙한 쪽에서 기타와 함께 불렀다. 그러니까 나는 그 노래를 그 날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서 두 번 듣게 되었는데 그 느낌이 퍽 달랐다. ‘너랑 춤추고 싶고 취하고 싶고 다하고 싶다’는 노랫말이 담겨 있었는데 가사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동작들을 했고 발목에 나무구슬 소리가 나는 방울을 달고 박자에 맞추어 소리를 내며 발을 밟았다. 시와 음악은 시간 안에 존재하고 무용은 시간과 공간 속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노래와 무용이 만날 때의 느낌은 노래만 따로 들었을 때와는 다르게 매력적이었다. 노래는 춤이 가진 메시지의 이해를 돕고 춤은 노래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어주었다. 그것들을 관찰하고 느끼는 기분이 정말 좋았다.
또한 흥미로운 것은 친구인 재한이 찾기 놀이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인데 피나안에서는 여러명이 필요한 극무용-보통 이런 것들은 무용이라기보다는 극에 가까웠다-에는 무용가들이 아닌 참가자들 안에서 역할이 채워진다는 것이었다. 재한이 찾기 결과 재한이를 한 네 번은 다른 사람 퍼포먼스 속에서 본 것 같다. 참가자들은 그러한 참여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피나안 동료들의 이야기에도 녹아들 수 있었다. 스무 명이 넘게 필요한 퍼포먼스에서도 모두들 그 때 그 때 필요한 의상을 다르게 입고 나와 주인공의 이야기에 몰입되어 춤추는 모습에서는 감동적이고 부럽기까지 했다.
부럽다는 감정은 사실 공연을 보기 시작한 20분 쯤 후부터 내내 든 생각인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몸짓으로 표현하고 다른 이의 이야기 속에 그가 상정한 ‘누군가’가 되어 팔과 다리와 손가락과 표정으로 연기하는 것이 점점 부러워져 갔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느껴지는 춤의 분위기는 아직도 꽤 닫혀있고 그나마 우리네 어깨들이 들썩일 때라곤 커다란 사운드의 비트들이 던져질 때나 어르신들이 전국노래자랑에 놀러 갔을 때나 엠티에서 남 입에 술이 들어가라고 노래를 불러줄 때니까 말이다.
사춘기 시절 나는 여드름은 무럭무럭 자라는 시기에 몸에 찬 에너지가 다 분출되지 않아 피부로 나타나는 거라고 한다. 이렇게 무대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 표출하고 싶은 감정을 좋은 에너지로 빵빵 터뜨리면 마음에 여드름이 나는 일은 잘 없겠다 싶다. 공연을 보면서 차오른 생각은 모든 순서가 끝나고 모든 참가자들과 관객들이 어울려 스테이지에서 춤추면서 확신으로 굳었다. 안은미의 말처럼 이 프로젝트는 계속되어야 하고 우리들의 어깨춤은 모든 순간에 허용되어야 하리라~! 들썩들썩~! 그날 돌아오는 길 윤희언니와 나는 오랜만에 들썩거린 어깨에 힘이 빠져 돌아오면서도 즐겁고 에너지가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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