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정종우, 편집장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단체의 생존력에 대한 긍정적 사례를 하나 만드는 것“
바싹이 작년 비영리미디어 컨퍼런스에서 한 말 중 하나이다. 그로부터 반 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이 시점에서 개념미디어 바싹에게 이런 질문을 해본다.
“바싹은 안녕하십니까?”
“안녕못하다 이놈아!”
3, 4, 5, 6월 잡지발행을 못했다. 배트맨에 나오는 조커가 “바싹 죽은거 아니냐”고 물어보면 “잠시만요, 맥박 체크 좀 해보구요.”라며 농담이라도 떨어야 할 판이다. 안 그랬다가는 “와이 소 시리어스?”라며 곧장 칼을 들고 달려올 것만 같다.
글 하나가 완성되기가 이렇게 어려웠던가, 한 대학생 씨부렁이는 총 14번의 피드백을 받아 글을 완성했다. 회의가 일주일에 1번 열리니까 14번 수정이면 3달하고도 보름을 지나온 것인데, 포기하지 않은 것만 해도 정말 대단하다. 기사가 채워지기까지가 우리 아마추어에겐 이리도 긴 여정이다. 일반 잡지처럼 편집팀이 쓱싹쓱싹 고치면 지치지도 않고 기사도 빨리 나오겠다 싶다가도 코너의 주인들이 산모고 ‘바싹 수다워크숍’은 그저 산파에 지나지 않는다고 정리했다. 지리한 고민이나 입덧은 산모의 몫이다.
그 외 씨부렁이들은 생활상의 다양한 변화가 있었다. 순서없이 죽 나열해보면 취업한 씨부렁이, 서울로 상경한 씨부렁이, 유학간 씨부렁이, 대학원에 진학한 씨부렁이, 세계일주를 떠난 씨부렁이, 다큐를 찍겠다고 나선 씨부렁이, 건강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씨부렁이, 결혼한 씨부렁이, 고백했다가 차인 씨부렁이, 대학 4학년을 앞두고 진로의 고민에 빠져 휴학한 씨부렁이 등 처한 상황과 고민도 그만큼 다양하다.
매주 열리는 바싹회의는 올해 초, 겨울과 봄 통틀어 2, 3번 밖에 쉬지 않았다. 그 외에는 꾸준히 모여 수다를 떨었고 그 와중에도 새로운 기자들은 나타났고 코너도 새로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씨부렁이들이 처한 상황과 맞물려 인쇄물을 만들지 못했다. 웹상에서는 이러저러한 기사들을 계속 발행했지만 배부처에는 몇 개월째 아무것도 보내지 못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아쉬움과 미안한 마음이 생긴다.
잡지를 만들기 시작한지 1년 6개월이 넘었다. 이제는 퀄리티도 콴티티(quantity)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자기 코너를 가지고 있는 씨부렁이들은 새로운 글을 쓸 때 마다 매번 소재고갈의 문제에 부딪힌다. 그리고 하나 더! 새로 코너를 만드는 씨부렁이들의 아이디어는 마른 모래 같아서 수많은 관심사들이 ‘나잡아 봐라’ 놀이를 하는 듯하다. 잡힐 듯 빠져나간다. 간만보고 있던 디자인팀의 한 씨부렁이는 눈치가 보였는지 코너 하나를 만들겠다고 얼떨결에 선언도 해본다. 이 같은 우여곡절끝에 오랜만에 다시 인쇄물을 만들었는데 이번엔 흔히 생각하는 그런 잡지다.
이번에 만드는 합본호는 말그대로 잡지다. 엽서도 있었고, 찌라시도 있었고, 몇 단을 접은 리플렛 형태의 컨셉 잡지도 있었지만 이번엔 진짜 잡지다. 잡지, 영어로 진(Zine). 아.. 단어만 들어도 심장이 고동친다. 그동안 바싹에서 책이나 잡지를 5권이나 만드는 경험을 했지만 그것들은 어느 동네의 이야기였고, 어느 단체들의 이야기였다. 굳이 예를 들자면 소작농의 비애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심고 물 주었지만, 내 벼가 아닌.. 이거 약간 새드(Sad)한 이야기다.
이 번에는 우리의 수다와 역량으로 만든 침묻혀 가며 넘겨보는 첫 잡지다. 그러나 이 번에 잡지로 만든다고 다음에도 잡지로 만들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몇 개월을 아낀 돈으로(어차피 외상 같은 돈이니 아낀 것인지 모르겠다만) 우리의 지리한 생존에 자극을 만들어보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간 배부처에 몇 개월간 간 것이 없으니 종이 몇 그램이라도 더 얹어주면서 미안함도 좀 덜자는 심산이다.
서로 위로하고 응원할 시간도 보장받지 못하고 알바며 취업이며 생계에 쫒기느라 안녕하지 못하다. 그래서 더 우리의 수다는 멈출 수 없다. 그리고 무슨 잡지가 나왔다 안 나왔다 하는 비정기지냐는 오명을 누가 씌우기 전에 씨부렁이의 삶의 변화들과 더불어 스스로 비정기지(웹진은 꾸준히 발행하지만 인쇄물에서)라고 선언하는 바이다!
<이하 생존증거들>
< 증거 1 야외체험워크숍 현장 - 거창에서 논에 피 뽑기>
< 증거 2 "부산에서 공연배달 거창에서 통닭배달 - 100마리의 전설>
<증거 3 물에서도 계속 되는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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