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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생존마감

[ 게이머의 창문 ] 가정 문화 캠페인

온 가족의~

 

 

모여서 놀면 즐겁다. 골방에 둘이서 마주앉아 고스톱을 치는 것보다 광 파는 사람도 있고 구경꾼이 옆에 앉아 떠들고 있는 편이 훨씬 흥이 돋는다. 차가운 도시의 외톨이는 온라인 게임에 접속해서 다른 사람들과 협동을 통해 놀 수도 있고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 하지만 개중에는 북적이는 느낌을 좋아해서 PC방에 홀로 찾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축제나 굿판의 예를 들지 않아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여서 즐거움을 나누고 싶어한다는 것에는 공감할 것이다.

 

<스페인 발렌시아 지방의 토마토 축제인 라 토마티나. 출처 : 라 토마티나 공식 홈페이지 ( http://www.latomatina.es/)>


하지만 모여 노는 데엔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른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모여 놀 다른 사람이다. 바쁘고 외로운 현대인들은 자신과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을 끊임없이 탐색하고도 여전히 사람에 굶주려 있다.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공간이다. 모여 놀 수 있는 장소가 없다면 모일 수가 없지 않은가. 학생 때는 자취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친구들의 인기를 모을 수 있었다. 장소 제공자는 권력자였다.

바쁘고 외로운 현대인이라, 시간이 부족하다. 언제나 한가로운 나로선 이해할 수 없지만 다들 참 바쁘다. 해야 할 일도 많고, 만나야 할 사람도 많다.

 

이 모든 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는 아니지만 그래서 21세기 가정용 게임기 판매업체의 캐치 프라이즈가 참 인상 깊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게임기 중 하나인 플레이스테이션. 출처 : 구글링(저작권은 Sony에 있음)>

 


온 가족의~~”

 

지금 이 단어를 처음 보는 사람들에겐 참 와 닿지 않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 수식어는 참으로 오래도 쓰였다. 최근 TV 등을 접하지 않아서 모르지만 어딘가에서는 쓰이고 있지 않을까?

온 가족의 게임기는 가정용 게임기 중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렸고, DVD 플레이어로 쓰였다. 그리고 저 구호는 세계적으로 히트했으며 개발회사에 명성을 더해 주었다.

 

저 문구대로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놀이가 성공한다면 정말 좋은 일이다. 가족인 이상 집에 모이게 되어 있다. 어떻게든 모이게는 되어 있으니까 사람은 해결됐다. 대부분의 가족들은 하나 이상의 이라는 공간도 가지고 있다. 공간 문제도 간단히 해결된다. 멀리 떨어진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것보다는 시간은 절약될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저 구호처럼 게임이 모두의 놀이문화로 자리잡았는가? 지금도 인구 중 게임을 즐기는 비율은 늘어나는 중이다. 하드코어 게이머를 위하여 온갖 종류의 난제를 던지던 게임업계는 대량의 리소스(게임의 데이터) 대신 사람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돈을 낼 사람들의 숫자 자체를 늘려가는 중이다. 가장 최근에는 우리 엄마가 하트 보내달라고 성화에요!” 라는 소리까지 나오지 않았는가.

 

그래서 다시 생각해보자. 온 가족의 게임 시대는 왔는가?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이 모여서 게임을 하는 풍경이 낯설지 않게 되었는가?

전혀 아니다.

당장 이 글을 쓰는 오늘만 해도 웹툰에서 셧다운제를 비꼬는 이야기를 보았다. 게임 관련 뉴스에서는 지나친 규제로 인하여 제2 3의 넥슨 사태('카트라이더'로 유명한 온라인게임 제작회사 넥슨은 최근 본사 주식을 일본으로 이전하였다)가 일어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살인사건 수사 과정에서 PC방 출입이 이유가 되기도 하였다. 아직도 전 국민이 게임을 익숙하고 편안하게 느끼는 일은 멀어 보인다. 자 그럼, 이제부터 이유를 하나씩 생각해보자.

 

 

<아이토이. Wii가 지원하던 기능을 일찌기 도입한 플레이스테이션의 소프트체계+하드웨어. 아이토이 카메라로 동작 인식 가능. 출처 :  http://www.gameshot.net (게임샷)>


<콜 오브 듀티. 플레이스테이션2에서 인기 많았던 슈팅(FPS)게임. 동일 장르의 다른 게임에 비해 딱히 잔인하다거나 한건 아님. 출처 : spong.com (해외 게임 리뷰 사이트)>

온 가족이 모여서 게임을 즐기기에 적합한 게임들이 제공되었는가? 매일 총을 쏘고 피가 튀기는 게임을 하던 아들에게 벽걸이 TV의 동화 같은 풍경은 참 적응 안 된다. 그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데이터 양도 풍부한 게임을 컴퓨터로 즐기는 중이다. 그런데 같은 게임이 다른 가족들에게는 힘들다. TV화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아차릴 수 없는 경우도 많거니와 몸도 따라 주지 않는다. 드라마 속 뺨 때리는 장면보다 100배는 잔인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던 아들에게 잔소리를 하는 어머니는 게임성이 못마땅하다. 총체적인 난국이다.

누군가에는 쉽고, 누군가에는 어렵고, 누군가에는 지루한 스타일이고, 누군가에는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의 자극이다. 이 동네 사람들이 게임을 만들 때 항상 저것에 부딪힌다. “어려운 정도는 적절한가?” “사용자들의 성격에 맞는가?” 결론은 그거다. 모든 사람이 만족하는 게임은 없다!

사회에 팽배한 분위기에도 그 원인이 있다. 위에도 잠깐 언급했다시피 게임은 악으로 규정되어 있는 양, 강한 규제를 받고 있다. 지금은 담배를 넘어서 준 마약 수준이다. 이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대개의 기성 세대는 자신이 알 수 없는 것을 위험한 것으로 간주해 왔다. 어느 시대에서는 누군가가 재미를 목적으로 꾸며낸 이야기를 책으로 낸 것을 불량하고 위험한 것으로 취급했다(소설). 어느 시대에서는 거기에 그림을 더하고 문장을 간추리자 위험하고 공부에 방해되는 것으로 취급되었다(만화). 영화관은 탈선의 온상이며 이성을 밝히는 저급한 작자들이 드나드는 곳 취급을 받을 때도 있었다. TV에는 바보상자라는 별명이 붙어 있었을 때도 있었다(TV는 기성세대의 통제에서 벗어났다고 하기에는 성격이 좀 다르긴 하다).

거기에다가 한국의 교육열은 엄청나다. 학벌 사회를 논하면 말이 길어질 것이므로 그냥 넘어간 상태로 이야기를 진행하자. 아무튼 게임을 하면 공부에 힘쓸 시간이 줄어든다. 그러므로 악이다. 청소년 셧다운제는 분명 청소년의 수면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도입되었지만 실제로 시간을 더 빼앗는 것은 따로 있다. 정말 게임 때문에 아이들이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는가. 이것과 관련해서 세 번째 이야기로 넘어간다.

 

당신의 가족은 지금 모두 집에 모여 앉아있는가? 혹시 자녀들은 학원을 순회하며 아직 집에 못 들어오고, 가장은 야근과 회식에 붙들려 귀가를 못하고 있지 않은가? 모여서 놀려면 모일 수가 있어야 할 텐데, 가족이 한 데 모인 시간이 거의 없지는 않은가? 남들 하는 만큼 해내고, 남이랑 비슷하게 살려고 바둥거리는 것뿐, 나쁜 것은 당신들의 가족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안다.

아무튼 현대의 4인 가족은 한곳에 모이기가 참 힘들다. 저녁을 함께 먹는 가족이 절반은 될까. 그것보다 훨씬 적다는데 내 키보드를 건다. 모여서 밥도 못 먹는데 게임은 무슨 게임. 모두가 그럭저럭 만족하는 게임성을 갖추고, 부모님이 개방적이고 가정적이기까지 해서 게임을 즐기고 싶어도 이래서야 방법이 없다. 모일 수 있어야 온 가족이 즐기는 게임기가 성립하는 거 아닌가.

 

<위 스포츠 리조트. wii 소프트 중 가장 많이 팔린 'wii sports'의 차기작.  출처 : playstation.co.kr (플레이스테이션 공식 홈페이지)>


 

온 가족이라는 구호가 등장한지도 시간이 꽤 지났다.

케이블 TV에 가끔 일본의 유명 게임업체의 가정용 게임기 광고가 나온다. 광고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면면도 제각각이다. 남녀와 노소를 가리지 않고 하하호호 게임을 즐기고 있다. 그런데 정말로 저 광고는 효과가 있나? 모두가 모여서 카트 게임을 즐기고 스포츠 게임으로 경쟁하고 요가 소프트를 이용하는 시대가 드디어 온 것인가?

 

나는 온라인 게임 회사에 일하는 입장으로 TV에서 그렇게 즐겁게 중년 여성과 아이들이 한데 모여 게임을 즐기는 풍경에 배가 아파 심사 뒤틀린 마무리를 하겠다.

게임이 재미있는 게 아니라, 모여서 노는 게 원래 즐거운 거라니까요!

오늘 저녁에는 온 가족이 모여서 윷놀이라도 벌여보세요.


 

 



     [애니팡의 대히트에 관하여]

테트리스가 전국민의 게임이던 시절이 있었다.

N모사의 게임 포탈에서 제공되던 2인용 고스톱 게임이 자식들에게서 컴퓨터를 빼앗던 때도 있었다.

그것을 전국민의 게임이나 온 가족의 게임이라고 불렀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유행은 유행일 뿐이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그 뒤로도 지속적으로 게임을 즐겼다는 흔적은 없다.

또한, 본 글은 한 장소에 모여서 함께 1회의 게임을 함께 즐기는 것을 통하여 놀이 문화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각자의 단말기에서 각자의 화면을 가지고 분리된 1회의 플레이를 즐기는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7인치 화면에서 여럿이 동시에 즐길 수 있기도 하다. 흔한가?)

 

 

- 글 by 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