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으로 된 건물, 혹은 가게를 가진 느낌은 어떨까? 예를 들면 정항우 케익이나 이영숙 부띠끄를 사업체로 가지고 있는 사장님의 기분 말이다. 필자가 정항우님이나 이영숙님을 알지 못해 그들이 어떤 느낌을 가지고 가게 간판을 바라보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영숙님과 이름이 비슷한 필자의 친구를 통해 아마도 기분이 좋으리라고 어렴풋이 알고 있다.
10년 전 고등학교를 다닐 때 일이다. 필자의 친구 중에는 이름이 ‘이영식’인 친구가 있다. 유머러스한 성격 덕에 이성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그의 별명은 자연스럽게 그의 이성친구들이 지어줬는데, 그들 사이에서 내 친구 ‘영식’은 ‘영숙씨’로 통했다. 이후 별명이 사실상 이름처럼 불리던 그가 “이영숙 부띠끄” 앞을 지나갈 때, 아무도 “영식이 니 가게다~”라고 놀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빠르게 그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어린 마음엔 그게 부러워서 내 이름으로 된 가게는 없나 하고 간판들을 보며 길을 걸었던 때가 생각난다.
오륜동에 가면 이와 같이 특정인의 이름으로 불리는 갤러리가 있다. 바로, 관장님의 함자를 딴 김민정 갤러리이다.
김민정 갤러리는 3층 건물이다. 1층에는 도자기 공방과 전시실이 있는데, 사람들에게는 전시실만 오픈되어 있고 공방은 관장님 개인 작업실처럼 꾸며 놓으셨다. 보통은 잘 오픈하지 않는 공간 같은데, 오륜마을잔치날은 특별히 관장님의 배려로 가져온 짐을 놓는다고 안쪽 공방까지 구경할 수 있었다. 공방에는 여러 가지의 그림 재료와, 찰흙 등 도자기 공예 재료들로 가득했다.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바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다.
갤러리 운영자라고 하면, 이전에 작품 활동을 하신 분이라 하더라도 화가의 냄새보다는 사업가의 냄새가 스물스물 나기 마련인데, 오륜마을잔치날 김민정 관장님은 개량한복에 선글라스, 모자를 쓰신 모습이 학교 다닐 때 한문 선생님을 뵙는 듯했다. 말을 조금 덧붙이자면 약간 세련된 한문 선생님이다. 건물의 전체적인 느낌도 딱 그렇다. “전통과 세련의 조화”. 이것이 컨셉이었던 것일까?
김민정 갤러리 2층에는 갤러리카페가 있다. 정확한 이름은 <카페 여름>이다. 갤러리카페라고 소개하니 서구적인 모습을 상상하기 쉽겠지만, 그림이 걸린다는 개념 외에는 인테리어부터 시작해 찻잔 하나까지 이곳에 있는 모든 것이 한국적이다. 특히 야외 테라스는 한국적으로다가 경치가 아주 좋다. 말이 조금 우습긴 한데, 3면이 탁 트인 것이 커피빈이나 카페베네의 테라스랑은 느낌이 많이 다르다. 도시에 있는 카페들 앞에는 시멘트나 벽돌로 지어진 건물들이 있지만, 카페 여름에는 앞에 회동수원지라는 저수지가 있고, 우거진 나무들이 있고, 뒤로 산이 있고, 하늘이 있다. 그곳에서 차를 한 잔 마시고 있으면 뭔가 자연인이 된 것 같다. “아…… 나 지금 건강해지고 있어”라는 느낌을 눈앞의 풍경이 나에게 선물로 준다.
마을회관에 갔을 때, 어르신들께 갤러리에 자주 가시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한 번도 간 적이 없다고 하신다. 가까워서 한 번은 들르셨을 법도 한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가서 할 일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그 말씀이 사실이라면, 내 생각에 마을 어르신들께서 갤러리를 방문한 최초의 순간은 오륜마을잔치를 하던 날일 것이다. 어르신들이 몇 십 년간 소장하고 계시던 사진과, 현재의 손 사진, 그리고 약간의 다과와 음악공연은 그동안 어르신들과 갤러리 사이에 있었던 장벽을 허탈할 만큼 너무나 가볍게 무너뜨려 버렸다.
어르신들은 갤러리에서 웃었고, 작품을 감상했다.
필요하다면 작가들에게 무료로 공간을 내어주시는 일도 마다 않는 후한 인심의 김민정 관장님. 마을을 위해 고민하는 청년들이 만들어낸 갤러리용 컨텐츠. 이 두 가지 조합이 함께 한다면 김민정 갤러리는 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언제나 열려 있을 것이다.
마을잔치를 준비한 개념미디어 바싹팀은 이제 오륜동에서 시간 속으로 사라지지만, 관장님의 많은 기획들 중에 주민들을 돌보는 기획이 많아져서 어르신들이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일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이런 생각을 한다. 젊은 사람들이 어르신들을 위한 고민을 지금부터 꾸준히 해나간다면 그리고 그것이 컨텐츠로든 어떤 문화로든 사라지지 않고 잘 축적된다면, 우리가 나이가 들었을 때 조금은 덜 심심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짧지만 갤러리라는 공간 하나를 놓고 참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된 시간이었다.
by 전문예술인 정종우
* 이 기사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부산문화재단이 주관한 문화이모작 사업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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