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대는 가까이 있다.
밀양 가는 버스 터미널에 와있을 때 마음이 무척 복잡했다. 밀양상황을 보고 느끼고 조금이라도 밀양 주민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는데, 막상 가겠다고 선언을 하니 두려웠다. 산구석에 위치한 농성장을 어떻게 찾아갈 지도 막막했고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가겠다고 마음 먹는 것까지가 어려웠지 뒷일은 인연이 이끌었다.
가기 전날에 페이스북에 밀양에 가겠다고 적었더니, 다행스럽게도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한 분이 댓글로 차량을 지원해주겠다고 했다. 덕분에 2일동안 농성장을 찾아가는 것이 한결 수월해졌다. 밀양에 가서 짧은 시간이라도 상황을 보고 듣고 함께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니 모르는 사람도 도움을 손길을 건네준다. 다른 누군가에게 마음을 쓰니 다른 사람의 마음을 내가 받는다. 나와 멀리 떨어져 있는게 아니고 사람 마음 하나 둘씩 모이고 모이면 만들어지는 게 바로 연대가 아닐까?
#2 넉넉히 미소와 할머니들의 주름.
부북면 평밭마을 가는 길턱 초소에서 한전시공사 차량을 막는 할머니들을 만났다. 거기에서는 할머니들이 고구마 줄기를 까시면서 삼삼오오 모여 계셨다. 부산에서 왔다고 하니, 멀리서 왔다면서 환하게 웃어주셨다. 덥다면서 물이랑 포도를 주시고 연신 부채질을 우리 쪽으로 해주셨다. “처음에는 개미새끼 한 마리 안보일정도로 사람이 없었어. 그래도 지금은 사람이 많이 오고 있어.” “빨리 중지가 돼야지, 이 짓을 또는 못하겠다.” “국회의원 다녀가도 해결해주지 않더만.”넋두리를 하셨다. 작년 겨울에는 산에서 공사 인부들이 나무 베려는 거 막는다고 매우 힘들었다고 하셨다. 요즘 할머니들은 그곳에서 한전 차량들이 올라 왔을 때 막기 위해 농성장을 지키고 계셨다. 밭일과 병행하기 위해 조를 짜서 교대로 산에 올라온다고 한다. 할머니들은 그렇게 밭일을 하랴, 한전 차량이 올라오는지 감시하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셨다.
*밀양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신고리 원전의 전력을 경남 창녕군에 위치한 북경남변전소까지 보내기 위해 경남 밀양시 울주군 기장군 등에 거쳐 162기를 세우고 있다. 이는 수도권의 전력 사용을 위해서 세워지고 있다. 밀양시에는 162기중 69기가 집중돼있다.
할머니들과 주민들의 기나긴 싸움은 2001년 한국전력이 울산시 울주군의 신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경남 창녕군의 북경남 변전소까지 765㎸(킬로볼트) 송전선로를 설치하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시작됐다. 한전이 송전선로 구간을 확정한 것은 2005~2006년인데, 이때 주민 의견을 수렴하고 동의를 얻는 과정이 생략됐다. 송전선로 구간 확정 과정에서 제대로 된 공청회 한 번 열지 않았다고 한다. 상동면의 경우 전체 인구는 3536명인데 주민 38명만 모아놓고 일방적 설명회만을 열었을 뿐이다. 주민 분들은 송전탑 건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05년부터 7년째 싸우고 있다. 2007년 지식경제부가 실시계획을 승인하고 이듬해 8월 공사에 들어가면서 주민들의 반대는 드세졌다. 밀양 5개면(단장면, 산외면, 상동면, 부북면, 청도면)을 69개의 송전탑으로 관통하도록 계획된 이 사업계획은 지역주민들의 반대에 직면했다. 밀양시 4개면 주민들은 지난 2008년 ‘송전탑 반대 주민대책위원회’를 꾸렸다.
한전 측은 결국 산업자원부에 사업승인을 의뢰하였고 산업자원부는 중앙11개부처의 협의를 얻어 지난 11월 30일 이 사업을 승인하였다. 지난 해 12월 중순 지역주민과 외지의 토지주들에게 경남도지사 명의의 공고가 우편으로 접수되었으며 내용은 산업자원부장관이 "전원개발촉진법 제5조의 규정에 의거 승인한 765kv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2구간) 건설사업에 귀하 소유 토지가 편입 예정되어 동법 시행령 제 17조의 규정에 의거 전원개발사업실시계획 승인사항 열람을 안내하오니 기한 내 열람하시기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법에 따라 한전은 전기시설 예정부지가 필요하면 땅 주인의 동의 없이도 강제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뒤 2011년 1월 16일 경남 밀양시 산외면 주민 이치우(74)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국전력이 자신의 밭에 송전탑을 세우려고 굴착기를 가져온 날이었다. 이치우 어르신의 죽음으로 다섯달 동안 중단되었지만 6월 18일 공사가 다시 재개되었다. 한전은 송전탑 반대 싸움에 앞장서온 주민 3명에게 10억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고, 활동가 14명에게 공사방해를 계속할 경우 매일 100만원씩 납부하라며 가처분신청을 냄.
부북면 평밭마을의 컨테이너 농성장에서 주민 아주머니 두 분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단장면 금곡리 765kv 송전탑 자재를 싣고 나르는 헬기장에서 민주통합당 문정선 의원과 한전 협력업체 직원들이 대치 중인데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 빨리 와달라는 연락이 왔다. 우리도 얼른 차에 올라탔다. 도착한 지 1시간도 채 안되어 상황이 이렇게 급박하게 돌아가니 콩닥 콩닥 심장이 뛰었다.
765kv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 건설공사 4공구 앞에 도착하자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여기서 100미터가 넘는 송전 철탑을 건설하는데 필요한 자재들을 헬기로 싣고 나른다. 문정선 의원은 헬기를 띄우는 움직임을 보고 막기 위해 정문 밑으로 진입을 시도하였다. 하지만 한전 협력업체 직원과 용역 대여섯명이 의원의 몸 위에 앉아서 방해하였다. 문의원은 30분가량 문 밑 사이에서 깔려 있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문의원은 헬기장에서 앉아 목 부분 통증을 호소하고 계셨고 손에도 피가 나고 있었다. 어떤 상황이 있었는지 짐작이 갈 정도로 머리는 산발이 되어 있었고 지쳐 보였다. “이 헬기장을 꼭 막아야 하는 이유는, 송전탑 건설 자재들이 헬기로 옮겨져서 할머니들이 공사현장을 막아야하는 노선이 더 생겨서는 안 되기 때문이에요. 어머니들이 내 동네에 뭐가 또 올라와 있으면 걱정이 되셔서 또 올라가거든요. 그것 때문에 이 헬기장을 막는 거예요.” 결국 문의원은 계속 목 부분의 통증을 호소하셨고 자기가 계속 자리를 지켜야 된다고 버티셨지만 상태가 계속 안 좋아 결국 응급차에 실려 갔다.
밀양에서는 송전탑 공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에 주민들이 공사를 몸으로 막기에도 사람이 부족한 상황이다. 많은 기자, 단체들이 다녀가지만 정작 비상시에는 주민 두세명이 움직일 뿐이다. 한바탕 전쟁이 끝나고도 주민분들은 뙤약볕 아래에서 계속 한전 협력업체 직원들과 대치해 있었다. 카메라를 잡고 있는 손이 계속 덜덜 떨렸다. 내 눈 바로 앞에서 너무 격렬한 몸싸움이 있었다. 듣기만 했던 부조리한 현실과 맞닥뜨린 날이었다. 많은 사람이 사는 마을보다 돈이 더 중요한 자들은 이렇게 주민들이 몸으로 밀고 싸우고 고함을 지르고 요구를 해도 그냥 밟고 지나가버린다. 외부에서조차 발악하지 않으면 눈길도 관심도 없다.
#4. 땀, 눈물, 피 그리고 감사함.
헬기장에서 고준길(70) 어르신과 대화를 했다. 어르신은 “죽기를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용기가 생긴다.”고 말씀하셨다. 밀양상황을 이야기해주시다가 눈물을 흘리셨다. 70-80대 노인들이 하기에는 너무 힘이 든다며 좋은 기사를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달라고 당부하셨다. 앞으로도 계속 싸울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할아버지가 눈물을 훔치셨다. 할아버지의 눈물과 땀을 봐도 여태껏 힘들고 긴 싸움을 묵묵히 해오셨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할아버지에게 나는 오히려 여태껏 버티고 싸워 오신 것에 대한 감사와 경의가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할아버지의 저 용기 앞에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생각했다. 나는 잘못된 권위 앞에서 평소에 용기있게 소신있는 행동을 했던가? 현실을 그저 편한 수준에서 수용하고만 있지는 않았는지? 이 정도면 만족해야지, 이 정도면 나는 자유로운 거 아닌가? 하면서 말이다. 앞으로는 나도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 내 이웃에 가해지는 억압의 고리를 끊기 위한 노력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서종범 어르신은 70-80대 노인들이 싸우기에는 너무 힘이 든다고 하셨다. 현재 공사방해죄로 10억가량의 손해배상이 청구 된 상태셨다. (총 3명의 주민이 손해배상청구당함) 또한 공사 방해죄로 100만원씩 재산가처분 신청을 당한 분들도 있다. 70, 80되는 노인들이 무슨 힘이 있어 공사를 방해했다고 재산가압류 신청하냐며 통탄해하셨다. 이대로 간다면 이치우 어르신의 죽음은 또 다시 일어날 지도 모른다며, 재산권 생명권 다 뺏긴 앞으로가 더 큰 문제라고 말씀하셨다. 어르신은 오늘 대치 상황 중에 팔에 깊은 상처가 나 피가 났는데도 병원에 가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셨다. 어르신의 몸과 마음의 상처가 더 깊이 패이지 않고 차츰 차츰 아물었으면 하는 바람 이전에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들이 생기지 않는 상식적인 세상이어야 하지 않나 하는 한숨과 기대와 분노가 먼저 앞섰다.
#5 ‘한전’이라는 강도에게 삶을 뺏긴 밀양 주민들.
한 주민분과 한전 협력업체 직원과 그 자리에서 토론이 벌여졌다. 한전 협력업체 직원은 시위를 해도 되니까 공사만 하게 해달라고 했다. 헬기 이륙하는 곳에서 시위하지 말고 합법적으로 시위할 수 있는 장소를 주겠다고 했다. 자신들도 한전 하청 업체라서 곤란한 처지임을 말했다. 거기에 대해 주민 어르신은 “당신네들은 벌 수 있는 것을 못 버는 것이지만 우리는 가지고 있던 것을 강도에게 뺏기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주민들 의견은 묵살하고 공사를 진행하고 거기에 벌금을 청구했으니 무시 무시한 강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합법’적 시위는 무엇이고, 주민들이 자신의 터전에서 요구하는 것이 ‘불법’이란 말인가?
사실 밀양의 문제 말고도 주변에서도 무슨 사건만 터지면 “법대로 하자.”라는 말을 자주 볼 수 있다. 권위나 힘을 더 가진 대상이 하는 이 말은 힘의 논리로 할 수 있는 협박이다. 이 말은 법은 너의 편을 들지 않을 것이고 니가 떠들어봤자 너의 이야기를 묵살할 것이다, 법적 절차를 따라서 진행하면 너는 돈도 많이 들 것이고, 정신적으로도 피곤할 것이라는 의미다. 법대로 해봤자 너한테 좋을 것 없으니 그냥 까불지 말고 포기하라는 뉘앙스가 담겨있다. 받아들이는 사람도 역시 법의 무게감때문에 반박하는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진다. 어떤 법으로 인해 사람들의 말이 묵살당한다면 그 법의 존폐와 수정에 대해 고민을 해봐야 할 것이다.
#6 어둑어둑 깔리는 밤 속에서 빛나는 주민들의 얼굴
문정선 의원은 밤이 되어 어둑어둑 해질 때 즘 응급 구급차로 실려 갔다. 곧 어두워졌고 옆 사람의 얼굴도 못 알아볼 정도로 밀양의 밤은 까맸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면 하늘에 별들이 빽빽이 박혀있었다. 정말 아름다웠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에 기가 눌렸는지, 어둠이 낮에 있었던 많은 일들, 옆 아주머니, 아저씨, 할아버지들의 얼굴들을 하나씩 꿀꺽 삼킬 것 같은 묘한 두려움을 느꼈다. 옆 금곡유원지에서 피서 온 휴양객들이 노래 부르는 흥겨운 소리가 어둠에 잠긴 발악의 장소까지 들려왔다. 내일도 급박하게 일이 돌아갈 것을 대비해서 토의하는 주민들의 귀에 그 소리는 어떻게 울렸을까.
아주머니들이 저녁으로 맥주, 김밥, 육포 등등을 사오셨다. 옆에 밤을 새기 위한 텐트도 쳤다. “심각하게 할 필요있나?, 진지하게만 하면 지쳐서 길게 못 가.” 하시면서 김밥을 주시고 맥주도 따라주셨다. 문정선 의원 이야기가 나오면 이내 걱정스런 목소리가 나왔지만, 유쾌한 어르신들은 그날의 활약상을 이야기 하시며 이내 다시 웃음꽃을 피우기도 했다. 박혜영 아주머니께서 잘 곳을 마련해주셨고, 덕분에 낮의 많은 일들을 두고 곱씹으며 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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