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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찬리 생존중/[삼미 슈퍼 무비즈] 영화

0. 삼미슈퍼무비즈



사진 >> 현 수

 

 

 

 

 

 

 

 

삼미   / 말미잘

금방이라도 비가 올 듯 잔뜩 흐린 여름날, 학교 도서실에서 소설책을 한 권 빌렸다. 제목도 요상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한 번 읽고, 집에 와서 한 번 더 읽었다. 회사에서 잘리고 이혼당한 아저씨가 동네 야구를 시작하는 이야기였는데, 수많은 문장들 속에서도 마음을 뒤흔든 문장이 하나 있었으니.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

 

뭐? 치기 힘든 공은 치지 말라고? 평범한 한국 사람인 나에게 익숙한 것은 분명 대표팀의 부상 투혼, 평생 김밥 팔아 모은 돈을 대학에 기부한 할머니의 미담 같은 것들. 그런데 이 무슨 괴상망측한 소리인지!

 

시간은 흘러 2013년. 내 속에 하고픈 말들이 쌓여 무언가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접하던, 지루하기만 하고 사람 냄새라곤 나지 않는 그런 글 말고. 어려운 표현들, 전문적인 지식들 같은 거 없어도 각자의 고유한 삶이 담겨 있다면 마음을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함께 하는 두 사람과 서로의 이야기들을 써 본다. 제멋대로이지만 맛깔스러운 세 가지 결들이 드러나기를 바라면서.

 

“지루한 글은 쓰지 않고, 그저 서로의 삶을 음미할 뿐이다”라고.

 

 

 


슈퍼   / 두숭이

 

어릴 적 우리 동네의 슈퍼엔 그 흔한 간판 하나 없어서, 누구에게는 ‘담배가게’, 누구에게는 ‘구멍가게’였다. 내겐 똥과자를 해먹을 수 있어 ‘똥과자집’ (우리 동네에는 달고나. 쪽자로 불리는 설탕과자를 ‘똥과자’라 불렀다).

허술한 그 슈퍼엔 커다란 평상이 하나 있었다. 낮의 평상은 주로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이 함께 마늘을 까거나, 파를 다듬으며 동네에서 일어나는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나누는 곳이었다. 집안일로 속상한 날이면, 시어머니나 남편 욕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다. 요즘 같은 열대야엔 무더위에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이 시원한 맥주에 수박을 나눠먹는 피서지가 되었다. 가끔씩은 맥주 한 잔이...두 잔...세 잔으로 술판이 점점 커졌다. 어느새 동네에서 술 꽤나 하는 아저씨들이 이 밤의 끝을 잡고 마시려는 통에, 남편을 데려가려는 아줌마들과 “한 잔만 더~”를 외치는 아저씨들의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한편 동네 꼬마들에게는 슈퍼 앞 오락기가 인기였다. 100원에 즐길 수 있는 오락기 앞에, 너도나도 동전을 손에 쥐고 줄을 섰다. “야! 여기서 벌써 필살기 쓰면 안 된다고! 기 모아야 된다고!” 돈도 없으면서 맨날 뒤에 서서 훈수를 두는 애, 순위에 이름을 새기기 위해 용돈을 홀랑 다 쓰고도 아쉬움에 발을 떼지 못하고 “100원만!!” 꿔달라는 애도 있었다. 아무도 깨지 못한 판을 아슬아슬 깰 때에는 축구 응원과 같은 함성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지금 그 슈퍼는 사라지고 없다. 가게 안과 평상 앞 북적북적했던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들도 없다. 대신 바코드소리와 “현금 영수증 해드릴까요?”의 공허한 소리만 남았다. 아직도 할인마트보다 슈퍼가, 슈퍼 앞 평상의 사람 냄새가,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가 그립다.

 

 

 

 


무비즈   / 현 수



내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가끔 아버지와 함께 보림극장에 가던 날이 생각난다. 한 달에 한 번의 짜장면이 외식의 전부일 정도로 가난한 산동네에서 살던 그때. 보림극장은 남포동보다 싼 값으로 2편을 볼 수 있는 극장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가던 그 즈음의 보림극장은 철 지난 일류 영화 한 편에, 유치찬란한 삼류 영화 한 편을 보여주었다. 지금도 기억 속에 아련한 대표적인 삼류 영화 중 하나인 '아메리칸 닌자'도 그곳에서 보았다. 닌자가 긴 칼 하나를 양손으로 잡더니 칼 두 개로 만드는 장면은 아직 머릿속에 생생하다. 아버지는 영화를 그리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내가 영화광이었다는 건 아셨나보다. 값싼 삼류일지라도 극장에까지 데려가 주었으니 말이다. 문현동 산동네에서 내려와 중앙시장을 지나서 범일동 중고가전 골목을 지나 좌천동 철길을 넘어 가던 길. 사십 분이 넘게 걸리는 그 길을 걷던 부자의 모습은 가끔 내 머릿속에서 3인칭의 시선으로 그려지곤 한다.

돌이켜보면 이런 지난 시간들은 내게 많은 이야기들을 남겼다.'아메리칸 닌자'에 얽힌 추억, 영화 '친구'에 나왔던 보림극장 가는 길, 지금은 버스정류장 이름으로만 남은 보림극장. 혹은 조선방직과 함께 사라진 삼류 극장과 노동자들이나, 그때와는 달라진 아버지나, 혹은 나나, 아니면 범일동 빈대떡 맛집까지. 한 편의 영화가 때로는 추억이 되고, 때로는 사색이 되었던 순간들이 있다. 이제부터의 글은 그런 것들에 대한 기록이며, 또 다른 누군가의 가슴에 한 편의 영화로 남기를 바라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