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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찬리 생존중/[ 어쩌다보니 여행 ] 에세이

도시 속의 시골 마을, 오륜동



날이 맑다. 햇살도 따뜻하고 바람도 시원하다. 며칠간 나를 괴롭히던 몸살도 조금은 가신 것 같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가을 소풍을 가는 설렘을 안고 오륜동으로 출발했다.

 

마을버스에서 마실 생각으로 편의점에 들러 커피우유와 물 한 병을 사서 정류장으로 갔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버스 시간표를 보니 2분 전에 출발한 버스……. 다음 버스는 30분 후에나 있었다.

 

‘편의점에 들르지만 않았다면 탈 수 있었을 텐데……’ 생각을 하면서 버스에서 마시려던 커피우유를 마시며 정류장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차와 사람들을 구경했다.

 

드디어 30분이 지나 기다리던 마을버스가 왔다. 분명 오륜동 가는 버스는 5번이라고 표지판에 나와 있는데 5-1번이 들어왔다. 실망도 잠시, 기사 아저씨께 물어보니 요즘 오륜동에 가는 사람들이 많아 노선이 바뀌어 5-1번 버스도 오륜동에 간다고 하셨다.

 

기다린 만큼 기쁜 마음으로 마을버스에 탑승했다.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노을빛으로 빛나는 가을 햇살을 받으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니 머릿속에 떠오르던 잡다한 생각들이 다 사라지고 지금 바라보는 이 풍경만 느껴졌다. 오륜동으로 가는 길에는 학교도, 파출소도, 아기자기한 카페도, 수도원도 있었다. 이 거리 자체가 하나의 마을 같은 소소한 길. 그리고 그 길 끝에는, 오륜동으로 들어가는 작은 터널이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가 터널 앞 내리막길을 내려가는데 꼭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이 들면서 터널 속 미지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저 끝에 빛이 보인다. 그리로 나가는 순간, 내 눈 앞에는 시골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마치 도시에서 시골로 순간이동을 한 것처럼. 건물 없는 길가로 펼쳐진 나무숲, 그리고 울긋불긋 단풍이 든 산이 보이는 풍경. 굴다리를 경계로 도시적인 길이 시골 같은 길로 변신했으니, 방금 지나온 터널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현실세계와 요괴들이 사는 세계를 잇는 터널 같았다. ‘센과 치히로에서는 음식들을 먹은 사람들이 돼지가 되던데, 이곳에서도 뭘 먹으면 동물이 되는 걸까?’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떠올랐다.

 

조금 열어둔 창문 틈으로 불어드는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길가의 가을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새 오륜동 종점에 도착했다. 종점에 내린 내 눈 앞에는 잘 자란 농작물들과 회동 저수지가 보였다. 배추와 파, 무 등이 자라는 밭을 손질하시는 분들도 느긋해 보였다. 장전역에서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10분. 전형적인 도시에서 10분만에 시골풍경이 나타나다니! 보통 시골은 톨게이트를 지나 고속도로를 타거나, 국도를 타고 다른 지역으로 많이 이동해야 논과 밭이 보이는데 말이다. 순간이동이라도 한 걸까?

 

낙엽이 지는 나무와, 가을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회동저수지에 내 마음도 여유로워지고 있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아름다운 자연을 벗 삼아 트래킹하시는 분들도 참 많았다. 함께 손을 잡고 거니는 부부, 아름다운 풍경을 핸드폰에 담기 바쁜 할아버지, 친구들과 함께 나들이 나온 어르신들, 아이와 함께 산책 온 가족들도 이곳 풍경에 함께 있었다.

 

마을을 둘러보며 걷다가 버스 시간을 알아보니 한 시간 후에야 다시 장전역으로 나가는 버스가 있었다. 회동저수지가 한눈에 보인다는 갈맷길을 가볼까 생각했지만 마음을 바꾸어 카페가 있는 김민정 갤러리에 들렀다. 갈맷길에 갔다가 버스를 놓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라기보다는, 한가롭게 풍경들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에 더 끌렸다.

 

김민정 갤러리는 3층 건물으로, 하늘색으로 칠해진 벽에 나무로 된 외부계단이 있어 자연과 잘 동화된 건물이었다. 1층에는 갤러리, 2층에 카페가 있어 외부계단을 타고 카페로 올라갔다. 계단에는 화분들이 자리 잡고 있어 계단을 올라가는 내내 아름다운 꽃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계단 끝에 어떤 할머니가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계셨다. 그 곳에서 책도 읽으시고 사람들과 마을 풍경도 구경하시는 것 같았다.

 

할머니와 눈이 마주쳐 “안녕하세요.”하며 인사를 드리자 반갑게 웃으면서 카페에 들어가라고 손짓해주셨다. 그렇게 반갑게 맞아주시는 게 너무 감사해 가방 속에 있던 귤 하나를 꺼내드렸다. 작은 귤 하나에 참 고맙다고 하시는 할머니의 미소가 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가방 속에 있던 이 작은 귤 하나가, 처음 만난 어린아이들이나 어르신들과 소통할 수 있는 좋은 끈이 되어주었다. 말을 건네며 웃을 수 있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끈.

 

한껏 훈훈해진 마음으로 카페 테라스에 앉았다. 테라스 나무 바닥에 자리를 잡고 낮잠 자는 고양이를 보고 웃음 지으며, 카페 아저씨가 맛있게 만들어주신 키위쥬스를 마셨다. 탁자 위의 화분에 심어져 있는 국화꽃 사이로 수원지를 바라보고 있자니 고요하고 아름다운 풍경에 소소한 행복이 느껴졌다. 바람에 사사삭거리는 나뭇잎 소리는 덤이다.

 

버스 시간에 맞춰 카페를 나서는데 할머니가 말을 건네셨다. “또 와요.”라고. “네.”하며 웃으며 돌아서고는 출발하려는 버스에 황급히 올랐다. 빈 자리에 앉아 숨을 돌렸다. 들어오며 봤던 풍경이 거꾸로 달려갔다.

 

다시 터널을 지났다. 주황빛 불이 켜진 터널을 지나자, 들어올 때의 내리막길은 오르막이 되어 있었다. 시골길은 터널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단숨에 도시 길로 바뀌었다. 문득, 묘한 상상이 들었다. 내가 지나온 터널이 정말 요괴들이 사는 신비한 마을로 오는 입구였다면? 내게 인사를 해 주신 할머니가 정말 오륜동에 사는 할머니일까? 그런 상상을 하는 동안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가 맺혔다.

 

홀로 훌쩍 찾아본 오륜동.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바쁜 일상을 지내느라 느껴보지 못했던 여유로운 가을을 그곳에서 마음껏 느낀 것 같다. 짧지만 기분 좋은 꿈을 꾼 것 같은 여행이었다. 사람 구경하는 즐거움과 앞으로 뭘 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은 덤으로. 혼자 떠나는 여행의 장점은 나에 대해 마음껏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니까.

 

 

 

글 by 송상연

사진 by 현 수

 

 

* 이 기사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부산문화재단이 주관한 문화이모작 사업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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