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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찬리 생존중/[공동체, 현지특파원]공동체

짝사랑 진행중

글 : 김현지



함께 하는 게 좋다, 사실 뭐 혼자서 잘 못하기도 하고. 그리 똑똑하지도 부지런하지도 않다. 그래도 머리를 맞대고 있으면 나의 아이디어와 그의 추진력과 그녀의 세심함, 또 누군가의 꼼꼼함이 만나 어떻게든 일이 굴러가게 된다. 그런데 그게 끝은 아니다. 일이 그렇게 풀려간다는 것만으로 ‘함께‘의 효용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나의 능력으로는 되지 않았을 일들이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며 이루어져 갈 때 ‘우리’는 보람을 느낀다. 그리고 함께 시작했기에 더욱 책임감을 느끼게 되고 서로가 있어서 끝까지 함께 갈 수 있다.



작년 여름, 농촌봉사활동-낮에는 노동을 하고 저녁에는 농생과 변혁적인 삶들에 대해 듣는 ‘농촌비전트립’-을 2주간 하게 되면서 ‘함께’에 대한 믿음을 아예 내 삶의 방향으로 삼고 살고 싶어졌다. 마루바닥에 둘러앉아 낮에 캐 온 감자랑 고구마를 쪄먹으면서 그날의 볕과 바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슬슬 강의가 시작되곤 했다. 더욱 잘 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만났다. 조합을 꾸려서 농산물들을 함께 유통하는 농촌마을, 아예 생산과 공급을 모두 같이 하며 자급자족으로 살아가는 마을 공동체, 강원도 홍천과 서울 수유리에 두 살림터를 두고 있는 도농공동체 등 다양한 공동체에 대해 듣거나 직접 가보았다. 또한 공동육아협동조합에서 일하는 선생님조합원과 마을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마을연구소에서 풍력발전을 연구하고 발전기를 만드는 아저씨의 이야기도 들었다.



그 다양한 삶의 고민들은 어설픈 스물한 살의 가슴을 들끓게 했다. 세워두었던 모든 계획을 통째로 날리고 휴학을 해버렸다. 무작정 알바를 시작했다. 돈을 모아 자취방을 하나 구한 다음 동아리의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살고 싶었다. 함께 살아가는 연습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뭐라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당장이라도 마을공동체에 들어가거나 협동조합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대학 졸업을 무한정 미룰 수 없는 상황에서 당장 할 수 있는 것이라도 하자는 심산이었다. 그 때의 나는 그렇게 멀리 바라보지는 못했지만 당장 뭐라도 해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두 달 가량을 일하면서 집도 알아보고 사람도 구하던 중에 동아리 회의가 열렸다. 민주적 공동체 사랑방의 설립과 운영에 대해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긍정적으로 지지해주던 친구들이 깊이 고민해보더니 우려를 표했다. 너무 갑작스러운 변화도 그렇고 공동체 사랑방이 한 사람이 배워온 것들로 운영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이미 존재하는 동아리라는 넓은 범위의 공동체에 덕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참 속상했다. 짜증났다. 내가 포기한 기회비용에 대해 돌려받고 싶다는 알량한 보상심리도 작동했다. 그래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시간과 과정을 조금 더 두고 진행하기로 했다.


다시 두 달 정도 알바는 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회의감과 우울감에 빠져 있었다. 동시에 나의 좌절감과 짜증이 오히려 내가 기존에 속해 있는 공동체에도, 내가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서서히 인정하게 되었다. 얼마 전에는 다니는 교회에서 교회 소유의 집을 타지방 대학생들을 위해 복지차원에서 내놓았다. 지금은 교회 친구들 세 명과 함께 살고 있다. 다큐멘터리 기획을 핑계로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동아리 모임도 계속 참석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안적 공동체와 협동조합에 대해 더욱 알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오히려 친구들과 함께 살면서, 동아리 회의와 모임을 가지면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내가 얼마나 배려나 이해가 부족한지 확인했기 때문이다.


서울로 올라가서 공동체아카데미를 수강하려고 했지만 부산에 대한 애정과 한 해 동안 맡기로 한 일로 인해 선뜻 그러지도 못하고 있다. 허나 관심은 또 다른 관심과 닿는 법, 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서 부산에 있는 공동체와 그것들의 건강한 움직임에 대해 듣게 되었다. 듣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도 않고 가슴만 더 뛰고 해서 이제는 공부하는 마음으로 인터뷰도 하고 찾아다니려 한다. 사실 잘 모르기는 하지만, 그래서 잘 해내고 잘 써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만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재미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시작해보려 한다. 열심히 배우고 찾아다니면서 흥겹고 정겹고 고생 겁나하고 때로는 힘들기도 한 여러 이웃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나누고 싶다. 사실 또 한편으로는 나중에 어떻게든 ‘함께’ 살아갈 나의 이웃들에게 홍보와 설득의 편지도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