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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찬리 생존중/[보드게임 가나다] 보드게임

너란 마음 쉬운(?) 마음 - '딕싯(Dixit)'과 감성게임

 

 

 

 

너란 마음 쉬운(?) 마음

 

 

- '딕싯(Dixit)'과 감성게임

 

 

 

글 / 현 수

 

 

 

 


문제. 다음 그림 중 [봄날은 간다]를 연상시키는 그림을 고르시오.

 

 

이야기꾼이 '봄날은 간다'로 낸 카드는 3번이었다. 어떻게 봐도 3번 같지 않은가? 그런데 놀랍게도, K씨 1번을 정답으로 골랐다. 왜 1번이 [봄날은 간다]냐고 물었더니, K씨 왈
"(성이 날아)가고 있네."
일부러 문제를 쉽게 내어서 모두 맞출 수 있게 해 주려던 출제자는 K씨 덕분에 점수를 얻었다. 모두가 문제를 맞추면 너무 쉬운 설명이라서 출제자 혼자 점수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출제자는 환호했다. 그 출제자가 누구냐고? 그게 나였다.


'딕싯'은 이런 게임이다. 우선, 모두가 손에 다섯 장의 카드를 받는다.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이야기꾼이 된다. 이야기꾼은 손에서 한 장의 카드를 골라서 그림을 설명한다. 어떤 식으로든 상관없다. 몸짓 설명? 무방하다. 이야기꾼이 그 카드를 비공개로 자기 앞에 내려놓으면, 다른 모든 플레이어들도 손에서 그 설명이 연상되는 카드를 골라 이야기꾼에게 비공개로 전달한다. 실례로, L군은 카드 한 장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설명을 한답시고 한 마디를 했다. "우끼!" 우리들은 모두 넋을 놓은 상태로 손에서 "우끼!"에 해당할 만한 카드를 골라야 했다.
자, 이야기꾼은 모인 카드들을 바닥에 펼쳐놓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카드를 제외한 나머지 카드들 중에서 이야기꾼의 카드를 찾아야 한다. 이때 모두가 맞추면 이야기꾼은 너무 쉽게 설명했으므로 혼자 점수를 못 받는다. 반대로 모두가 틀려도 너무 어렵게 설명했으므로 혼자 점수를 못 받는다. 그러면 이야기꾼은 언제 점수를 받느냐고? 누군가는 맞추고 누군가는 틀렸을 때다. 여기에 옵션이 하나 더 있다. 누군가가 이야기꾼의 카드가 아닌 다른 이의 카드를 지목했다면, 그 카드를 낸 사람은 추가점을 얻는다. 이른바 낚시점수다. 쉽게 말하자면, 위 문제에서 1번 카드를 낸 P씨는 K씨를 훌륭하게(?) 낚은 공으로 점수를 1점 더 획득하게 되었다.


이 게임을 일컬어 감성게임이라고들 한다. 단순히 아름답고 동화적인 내용만으로 감성게임이라고 부르는 건 아니다. 혹은 사랑의 감정이나 슬픔의 섬세함을 자극하는 그런 게임도 아니다. '딕싯'을 감성게임이라고 부르는 건 이런 이유들이 아니라, 상상력을 자극하는 게임이라는 데에 있다. 아름다운 동화적 일러스트의 카드들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과 표현을 떠올릴 수 있는 신선함이 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보드게임은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다른 게임들에서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상대를 끌어내리고 내가 올라갈 수 있는 전략을 짜고자 애를 써야만 한다. 이런 건 계산이라고 하지 상상이라고 하지 않는다. '딕싯'을 하려면 상상을 하고, 예측을 해야 한다. K씨는 모르고 P씨는 알 만한 무언가를 생각하는 일, 자신이 낸 카드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짐작해보는 일, 독특하게 상상하되 남들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발상하는 일. 카드를 보고 나의 상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을 맞춰보는 일은 은근한 즐거움을 제공한다. 그렇게 해서 맞았을 때에는 저 사람과 서로 통했다는 기분까지도 드는 것이다. '딕싯'에서 잘 나오는 말 중의 하나가 바로, "너는 맞출 줄 알았다"라는 말인 것을.
상상하고 공감하기는 공동체의 가치와 의미를 되살리려 하는 오늘날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능력이 아닐까. 한 자리에 모인 사람들 간의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보드게임의 큰 장점이 있다면, '딕싯'이 구축한 감성게임이라는 세계는 보드게임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거라고도 볼 수 있다. '딕싯'을 하는 순간 당신은 앉은 자리에서 멋진 여행을 하게 될 것이다. 바로 다른 사람의 마음 속이라는 곳으로의 여행을.

 


덧붙임 1. 워낙 세상에 사람들이 다양하다 보니 하다 보면 꼭 자기만의 세계를 가진 사람이 나올 때가 있다. 그래서 이 게임에는 4차원 판독기라는 별칭이 붙기도 한다. 모두 맞추는데 혼자 틀리거나, 아무도 그 사람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등. 대체적으로 천재이거나 별세계 사람인 경우로 나누어지는데 전자는 극히 드문 경우이니 너무 추켜세우지 말도록.

덧붙임 2. 딕싯은 지금까지 3개의 확장과 함께 새로운 에디션인 '딕싯 져니'가 나오긴 했는데, 카드 일러스트가 가장 무난하고 예쁜 건 역시 딕싯 1이다. 그리고 정보를 조금 더 주자면, 3명부터 6명까지 하는 게임이지만 역시 4-6인에서 할 만하다. 3명은 좀 아쉽다. '딕싯 오디세이'라는 확장을 붙여서 하면 12인까지 할 수 있는데 이 경우 규칙이 조금 달라지는 부분은 있다. 그러니, 강력 추천은 5-6명이다.

덧붙임 3. 그래서 이 게임은 어떻게 이기는 거냐고? 이야기꾼이 카드를 너무 쉽게 설명해서 모두가 다 이야기꾼의 카드를 맞추면 이야기꾼만 점수를 못 얻는다. 이야기꾼이 카드를 너무 어렵게 설명해서 아무도 못 맞춰도 이야기꾼만 점수를 못 얻는다. 누구는 알게, 누구는 모르게 해야 이길 수 있다. 그러니 상대의 마음을 생각하는 건 이야기꾼부터가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