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에서 보내는 편지] 자 이제 여기에 당신의 이름을
얼떨결에 홀씨 회의에 따라 가게 됐는데, 구경이나 하고 올 줄 알았더니 어떤 코너를 쓸 거냐고 물어보더라고요. 대답을 못하고 있으니 누군가 한마디 했습니다. “그냥 나이 자체가 메리트 일 것 같은데….” 헐. 내 나이가 메리트라니. 게다가 내가 대안학교 학생이라는 게 밝혀지자 전 어쩐지 좀 난감해졌어요. 뭘 기대하고 있는 걸까, 신선한 시각, 재밌는 글, 풋풋함, 뭐 그런 것들? 전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예술 문화 잡지라고 하는데 뭘 쓸 수 있을지도 감이 안 잡히고. 그래서 제 글은 그냥 아주 주관적으로 막 쓴 글이 될 테니까 읽는 사람들은 별 생각 없이 읽어주세요.
오늘은 우선 ‘자! 이제 네 이름을 쓰렴’ 이라는 예쁜 그림책 얘기를 할 게요. 그림에 자신이 없어 미술시간을 싫어하는 아이, 베티가 있습니다. 미술시간이 끝나도록 베티의 도화지는 비어있지요. 어떤 거라도 좋으니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한 번 시작해 보라는 선생님의 말에 베티는 연필을 도화지 위에 힘껏 내리꽂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말해요. “자! 이제 네 이름을 쓰렴.” 다음 주 미술시간, 선생님 책상 위에는 번쩍거리는 금테 액자 안에 베티의 점이 걸려 있습니다. 그 뒤로 베티는 수많은 다양한 점 그림을 탄생시키게 됩니다. 얼마 후 학교에서 미술 전시회가 열렸는데 베티의 점들이 큰 인기를 얻게 되죠. 전시장에서 한 아이가 베티를 부러워하자, 베티는 아이에게 그림을 그려보라고 합니다. 아이가 삐뚤빼뚤한 선을 하나 그리자 베티는 이렇게 말해요. “자! 이제 여기 네 이름을 쓰렴.” 하구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저의 미술수업들이 떠올랐어요.
저는 꽤 유명한 사립초등학교, 그리고 평범하디 평범한 일반 중학교를 거쳐서 지금은 대안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 까지만 해도 잘 그리지는 못해도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어요. 크레파스를 꼭 쥐고 해나 사람, 집 같은 것들을 그렸지요. 그렇지만 점점 학년이 올라가고 미술시간에 소묘니 데생이니 하는 단어가 나오면서 평범한 학생이었던 저에게 미술시간은 점점 부담스러워졌습니다. 선생님이 수업 중에 몇몇 잘 그린 그림들을 들어서 보여주면 속으로 미술은 타고나다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중학교 때가 되자 상황은 더 안 좋아졌죠. 저에게 중학교는 참 재미없는 곳이었는데, 지루한 수업에 지친 저는 첫 미술시간에 약간의 기대를 품고 기다렸어요. 그런데 처음 미술 선생님이 우리 반에 들어오면서 한 말은 “지금 머리 풀고 있는 여자애들은 맞기 전에 머리 다 묶어라” 였어요. 진짜로. 그렇게 시작된 중학교 미술시간에 대한 기억은 여자애들이 수업 시작 전에 이반 저반 돌아다니면서 ‘고무줄 있는 사람~’을 절박하게 외치고 다닌 기억이나 잡다한 준비물을 안 가져온 애들이 복도에서 엎드려 뻗쳐있던 기억밖에 없는 듯합니다. 그 뒤로 학년이 올라가면서 미술선생님이 바뀌었는데 별 다른 건 없었어요. 미술시간은 집중력을 키워준다고 믿었던 그 선생님은 과자봉지 똑같이 만들기, 명화 따라 그리기, 옵아트 따라 그리기 같은 걸 시키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따라 그리기를 좋아하셨던 것 같아요. 아무튼 그렇게 저는 미술시간을 대충 때우고 지냈습니다.
열일곱이 되자 전 중학교를 벗어나 지금의 학교에 왔어요. 1학년 2학기 때부터 미술시간이 있었는데 저처럼 미술시간에 대해서 안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애들이 많았는지 반 친구들도 대부분 별로 기대하지 않는 눈치더라고요. 그렇지만 그 때의 미술 시간은 제 마음 속에 깊게 남아있게 되어있습니다. 아주 새롭고 따뜻한 기억으로.
첫 시간에 우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강당에 둘러 앉아 다 같이 미술 교과서를 읽고 가장 맘에 드는 그림 말하기였어요. 이 게 미술책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써본 때였지요. 그 뒤로 게임을 했어요. 열 명씩 두 팀으로 나눈 후 각각 집게손가락을 하나씩 내밀어 훌라후프를 허리 높이에서 받치고 시작하는 거예요. 이 때 손가락과 훌라후프 사이에 작은 종잇조각 하나씩을 끼우는데 이 종이가 빠지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합니다. 그렇게 먼저 바닥에 훌라후프를 내려놓은 팀이 이기는 거죠. 간단해 보이지만 키도 성격도 다른 열 명이 함께 속도를 맞춰서 무릎을 천천히 굽히면서 바닥까지 도착하는 일은 쉽지 않죠. 마지막으로 한 건 역할 놀이에요. 모두가 한 마을에 산다고 하고 그 마을에서 무슨 역할인지 하나씩 말하면 됩니다. 농부, 의사부터 돌멩이, 개똥, 처녀귀신 등등 무엇이든 상관없어요. 그리고 일어서서 흩어진 후 자기와 관계있다고 생각되는 두 사람과 삼각형을 만듭니다. 그러면 스무 명 전체가 이렇게 저렇게 삼각형으로 저마다 연결되게 되지요. 이 때 쌤이 한 사람을 한 발짝 앞으로 움직였어요. 그러자 모든 마을 구성원이 움직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쌤은 그 한 사람을 아예 밖으로 빼버렸어요. 모두가 당황했습니다. 다시 삼각형을 구성하기가 아주 어려워지니까요.
이런 일들이 다 끝나고 미술 쌤이 수업 마무리를 하면서 한 말씀 하셨어요. 옮겨 보자면 이렇습니다. 여기 미술을 아주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미술이란 건 아주 넓은 영역이고 이때까지 해본 걸로 미술을 단정 지을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 미술 교육은 일본에서 본 따온 것인데, 일본에서 미술 교육이 처음 도입된 목적은 침략을 위해 지도를 똑같이 따라 그리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미술 교육은 슬프게도 누가 잘 베껴 그리나에 치중하게 돼 버렸다. 나는 여러분이 그림 그리기를 꺼려하거나 싫어하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즐거워했으면 좋겠다. 뭐 그런 내용의 말이었지요.
그렇게 첫 번째 미술수업이 끝나고 저는 많은 것을 느꼈는데, 그중 하나는 약간의 서글픔이었습니다. 제가 이때까지 받아온 수업은 나쁘고 우리학교 수업은 좋다, 이런 얘기는 아니지만 제가 어릴 때도 이런 수업을 받았더라면. 누군가가 나에게도 마음대로 그려보라고, 잘 그렸다고 해줬다면 나는 지금쯤 더 편한 마음으로 붓을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더 자유롭게 종이 위에 나를 표현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그리고 생각했어요. 여기저기서 아이들의 창의성을 키우게 해야 한다고 난리지만 정작 우리는 어릴 때부터 마음 가는 대로, 자기 방식대로 그릴 수 있는 자유를 뺏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는 지금 청소년들에게 그런 자유를 허락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해를 그리면 안 된다는 둥 여러 가지 규칙을 정해주는 바람에 모두가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똑같은 집에 똑같은 산을 그리게 돼 버린 것이 아닌지. 그리고 좀 크면 학생들에게 미술은 그냥 특별한 애들만 잘 하는 과목 혹은 수행평가 점수에 신경 써야 하는 과목이 되고, 그러다가 대학이 가까워지면 입시 미술을 열심히 하거나 혹은 미술과 영영 인연을 끊게 됩니다. 참 슬픈 일이지요.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그림을 그리게 됩니다. 벽에 낙서도 하고, 종이에 엄마 얼굴도 그리고. 그런데 왜 크면서 다들 미술과 멀어지면서 그 마음을 잃어버리게 되는 걸 까요? 그렇지만 저는 또 기뻤습니다. 이때까지 제 속에 숨어있던, 벽에 그림 낙서를 하고 색종이를 자르고 찰흙을 조몰락거리던 그 아이가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 지금은 미술수업 때 아주 재밌게 놀고 있어요. 스케치도 하고, 영상도 만들고, 조각도 하고, 티셔츠도 꾸미고, 다 같이 물뿌리개로 그림도 그리고, 등등. 수업이 끝나고도 우리에게 미술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미술과 함께 살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