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술(1)
덤덤하게 작업을 끝내고 결과물을 보낸 다음 날, 어김없이 수정 요청이 들어왔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이 업계의 일은 완성된 그림파일을 보내준 후 클라이언트로부터 아무 연락이 없으면 일이 잘되고 있는 거다. 적어도 내가 맡은 부분에서는 말이다. 서울에서 걸려온 전화. 덤덤한 표정으로 수정사항을 듣는데 재택근무 2년차 일러스트레이터는 살짝 당황했다. 결혼식 청첩장에 들어가는 예비신부 얼굴이 사진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게 그려졌다는 것이다.
청첩장 예비부부를 그리는 일에서 내가 한 일은 사진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기름종이를 깐 뒤 연필로 베껴 그려내는 일이었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그대로 ‘베껴’ 그려내는 일이었다. 아이가 어른이 될 수 없고, 남자가 여자가 될 수도 없는. 20대가 30대가 될 수 없고, 그 반대의 일 또한 불가능한 작업방식이 트레이싱, 일명 ‘베껴그리기’ 작업이라고 당시에는 생각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그림에서 나이가 더 들어 보인다면 그 예비신부의 얼굴이 원래 나이가 들어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내 손이 문제일까, 내 눈이 문제일까, 실례지만 사실 진짜 문제는 정말로 예비신부의 얼굴이 아닐까. 만에 하나 그렇게 결론이 난다면 지체 않고 클라이언트에게 전화해서 “의사한테 가져가야 할 문제를 왜 나에게 떠넘기는 거요?” 라며 따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따질 때 시작하는 말로는 정내미 떨어지라고 “이보시오.”가 어떨까. 아냐 그것보다는 더 강하게 보여야 되니까….
한참을 허공에 대고 혼자 구시렁거렸다.
얼마 뒤 신부 사진과 그림을 세심하게 비교하며 몇 장의 스케치를 더 해본 결과 답을 찾을 수 있었는데, 신부 얼굴 코 옆 주름을 그릴 때 연필에 힘을 너무 많이 준 것이 그녀를 나이 들어 보이게 만든 요인이었다. 그때 이후로 나는 웃기고 싶을 때가 아니면 코 옆 주름을 그리지 않는다.
이처럼 인물 위주의 작업을 하는 데 있어서 ‘얼굴’이라는 것은 언제나 탐구해야 하는 대상이었고, 그에 대한 지식은 클라이언트의 수정사항 종류만큼이나 많아져서 이제는 어리거나 나이 들어 보이는 이유에서부터 착하거나 못돼 보이는 이유라든지, 피부가 지성인지 건성인지까지도 분별해서 표현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얼마 전에 콘택트렌즈나 안경을 착용하고 있지 않은 여자분에게 “혹시 이전에 안경쓰셨어요?”라고 물어보니 대답 대신 “어멋! 어떻게 아셨어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하지만 그다지 많은 분석을 하고 내뱉은 말은 아니라서 “어… 그냥.. 이전에 안경 썼던 사람으로 보여서요!”라고 말해버렸는데, 그때 그 여자분의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찰나의 그것은 ‘왠 멍청이가 수작을 부리다가 기어이 자멸하는구나’라는 안타까움의 눈빛이었는데, 내 딴에는 정말로 눈 부분이 안경 쓰는 사람처럼 생겼다고 느낀 것 외에는 다른 마음이 없었다.
이 눈썰미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발전하는 것 같은데, 이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머리속으로는 거의 반자동으로 눈, 코, 입 등 각 기관들의 생김새를 분석하고 기존의 데이터와 비교하며 닮은 사람 찾는 일을 시작한다. 아마 잘은 몰라도 터미네이터가 사람들을 만날 때 그가 존 코너인지 확인하기 위해 안구 스캐너를 작동시키는 것보다 내가 더 빨리 이 시스템을 가동할 거라 생각한다. 이건 무슨 자율신경계 마냥 내가 인지하기도 전에 이미 작동을 시작한다. 이 분석 시스템이 작동하는 동안은 보통 상대방 얼굴을 힐끔힐끔, 때로는 조금 오래 쳐다보는데,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나를 여러모로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 한다해도 이해가 간다. 불쾌해 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한번은 두 눈 사이가 조금 먼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예쁜 얼굴의 여자분을 지인과 함께 만날 기회가 있었다. 얼굴의 각 요소는 적절한 자리에 적당한 크기로 있을 때 예쁜 얼굴이 되기 마련인데, 이 변칙스러운 아름다움이 신기해서 손에 쥐고 있는 맥주잔과 여자분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들키지 않으려고 슬쩍슬쩍 훔쳐보았다. “이번에는 ‘왠 멍청이가 수작 부린다’는 오해는 받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하며 정신을 단단히 차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뿔싸! 알코올이 한 모금 두 모금 들어가니, 눈이 올라가야 할 타이밍에 혓바닥이 올라가면서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다금씨는 다른 사람들보다 눈 사이가 약간 먼 것처럼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되게 자연스럽고 예쁘시네요.”
표정을 보아하니 말실수를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