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지금, 우유니에 해가 떠오른다.
by 김황
# 세상이 좋아졌다. 인터넷 창에 키보드만 몇 번 두드리면 멋진 사진, 상세한 설명과 함께 다른 세상을 손쉽게 엿볼 수 있다. 옛날 백과사전 세대들은 상상도 못했을 e편한세상.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여전히 배낭을 메고 훌쩍 떠나길 꿈꾸는 까닭은, 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모니터를 통한 대리만족 따위가 아니기 때문일거다. 바라 마지않던 그 풍경을 이 두 눈에 오롯이 담고 싶은, 그 거리를 두 발로 직접 거닐어보고 싶은 그 욕심 때문이겠지.
세상엔 보석같은 장소가 많고 많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마음속 깊은 곳에 품은 비장의 장소 하나 정도는 다들 갖고 있을거다. 누군가는 샹젤리제 거리에서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기를 꿈꿀테고 또 누군가는 그랜드 캐년을 바라보며 자연이 주는 감동과 경이에 젖기를 바랄게다. 혹시 모르지, 당신은 타임스퀘어에서 근사한 공연을 한 편 보며 뉴요커가 된 듯한 기분을 만끽하고 싶어할지.
....그리고 나의 경우, 죽기 전에 반드시 가고말리라 다짐한 꿈의 장소는 다름 아닌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 사막’이었다.
이 세상 어딘가, 당신이 진정으로 꿈꾸는 곳은 어디인가?
# 언제인지 모르겠다. '우유니'의 존재를 처음 알았던 때가.
한국에 있을 때, 하늘과 땅의 경계가 사라지는 비현실적인 풍경을 담은 사진 한 장에 꽂혀버렸다. 그 사진이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에 비가 내렸을 때 찍은 사진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물 찬 우유니’는 줄곧 내 드림플레이스였다. 볼리비아....남미. 지구 반대편. 멀구나. 하지만 간다. 반드시 갈거야. 그렇게 우유니는 내가 여행에 대해 꿈꿨던 낭만,로망,판타지의 대부분을 독식했고, 내게 있어 '우유니'라는 이름 석 자는 그 어떤 이름난 세계의 비경도 넘볼 수 없는 공고한 성채였다.
우유니를 찾고 실망하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찾은 시기와 날씨에 따라 우유니의 풍경은 변하니까. 나는 내가 상상했던 우유니의 모습이 내 눈 앞에 펼쳐지길 간절히 바랐다. 제발 부탁이야. 그렇게나 꿈꿨던 장소라고. 내가 원하는 바로 그 장면을 보여줘. 우유니를 찾을 날짜를 정했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크리스마스에는 기적이 일어나는 법이니까, 이 아름다운 세상은 나에게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안겨주겠지. 1
황량하다 싶을 만큼 메말라 보이는 우유니 마을. 하지만 그 너머에는 비를 품은 소금사막이 있다.
# 버스를 타고 밤새 달려 이른 새벽에 우유니 마을에 도착했다. 인적이 없고 컴컴한 마을의 실루엣은 전혀 특별할게 없었지만 “마침내 이 곳에 왔다” 라는 기쁨과 일종의 성취감에 맘이 떨린다. ‘그 장소’가 이제 정말 지척에 있다고 생각하자 왠지 모를 긴장감과 흥분도 찾아든다. 낮에 둘러본 우유니 마을은 오직 관광객들을 상대하기 위해 형성된 마을인 것마냥 사방 팔방에 투어회사들이 즐비해있다. 미리 알아본 투어 회사들 중 한 곳을 골라 투어신청을 했다. 12월 24일 새벽에 출발해서 우유니 사막 안에서 해가 뜨기를 기다린 뒤 아침 일출을 보고 돌아오는 프로그램이다. 투어신청서에 사인을 했지만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지 얼떨떨하기도 하다. 2
새벽 3시. 투어차량을 타고 우유니 소금사막 안으로 진입을 한다.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라는걸 알면서도 두근거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다. 차창 밖은 짙은 어둠이 가라앉아 있고 이정표 없는 소금사막 한 가운데서 우리가 탄 차량이 달린다. 우리가 어디로 어떻게 달리고 있는지 방향 감각을 일찌감치 잃은 나는 그저 가이드가 베테랑이기를 두 손 모아 빌 뿐. 부디 나를 최고의 포인트로 인도해주길!! 설렘과 걱정이 교차하는 시간을 보내는 내 귀에 어느 순간부터 낯선 소리가 들려온다. 이 소리는, 자동차 바퀴가 물살을 가르는 소리. 투어차량은 어느 사이엔가 물이 차 있는 장소에 다다랐고 가이드는 연신 전조등을 깜빡이며 포인트를 찾는데 몰두한다. 차량에 탄 여행자들 사이에 긴장감이 고조되는게 피부로 느껴진다.
해 뜨기 전의 우유니....어둑한 사위 속에서 심장이 두근거린다.
# 새벽의 우유니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발치에서 물이 찰랑거리는 것을 느끼자 가벼운 전율이 몸을 스친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주변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어둠 끝까지 뻗어나간 드넓은 소금사막의 느낌, 그리고 걸을 때마다 참방거리는 이 물소리….여기는 우유니다. 그 사실을 되씹고 실감할수록 이 순간이 소중하고 사랑스럽다. 걸음을 옮기는 매순간이 먹먹하다.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면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기시감. 분명히 처음 찾는 곳임에도 낯선 느낌이 들지 않는 까닭은 지난 몇 년간 수백번도 넘게 머릿속에서 이 순간을 시뮬레이션 해봤기 때문일까. 이 젖은 대지 위에 두 발을 딛기를 얼마나 소원했는가. 조금은 찬 공기를 머금은 바람이 부는 소금사막, 그 위에 내려앉은 어둠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신비다. 이제 곧 날이 밝아오면, 물이 가득 찬 이 땅은 세계에서 가장 큰 거울이 되어 하늘의 풍경을 반사하겠지.
'내가' '지금' '여기에' 서 있다는 그 사실에, 터질만큼 가슴이 벅차다.
기쁘다. 이 세상은 이렇게나 아름답다.
그리고 지금, 우유니에 해가 떠오른다.
ㅡ "Merry Chirst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