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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린 것의 자리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3. 19. 11:14

by 마틴



여린 것의 자리바깥으로 떠난 여행에서 비가 계속되어 이틀간 숙소 안에 있게 되었다가, 떠나는 날에 부랴부랴 오른 공주 마곡사는 시간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곳이었다. 인간이 지은 것과 자연이 지은 것이 누대의 세월속에서 서로 조화를 찾아낸 풍경이었다. 천 오백년전에 지어졌다는데, 당시의 절은 후대의 것보다 작았나보다. 대웅전마저 소박하여 사찰의 용마루는 능선의 품에 쏘옥 안기었고, 나무기둥은 금강송과 어깨를 나란히 기대고 있었다.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툭 하고 나뭇가지 부러진다. 보니, 바닥에 여럿 떨어져 있다. 법정스님은 <무소유>에서 이렇게 썼다. “그 겨울 가야산에는 눈이 많이 내렸었다. 밤이면 이 골짝 저 골짝에서 나무 넘어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눈에 꺾인 것이다. 그 고집스럽고 정정한 소나무들이 한 송이 두 송이 쌓이는 눈의 무게에 못 이겨 꺾이고 마는 것이다. 모진 비바람에도 끄덕 않던 나무들이 부드러운 것 앞에 꺾이는 묘리를 산에서는 역력히 볼 수 있었다.”


지난 이틀간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스님의 이야기가 새롭게 다가왔다. 청년들은 어른들이 너무 높은 지위를 지어 적은 것을 나누어주면서도 지나치게 착취해가는 것에 대해 신물이 나 있었다. 말하자면 지금의 어른들은 너무 고집스럽고 쎄게 굴며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는 것. 여린 어린이들마저 착취의 대상이 되어 유년기가 실종된 이야기들은 가슴 아팠다. 그 신물이 마침내 생체에너지 고갈상태로 가버려 삶에 대한 꿈이 없다고 하는 이마저 있었다.


꿈은 빈 터에서 꿀 수 있는 것이다. 나무는 일년살이에서 봄여름에 가득히 피웠던 허영의 잎사귀를 가을바람에 툭 떨구며 성숙하고, 긴 겨울 영도(zero point)의 나목이 되어 가지마저 떨구어 비워낸다. 그렇게 비워내는 일이 선행해야, 봄과 더불어 새롭고 여린 것들이 살아갈 자리가 마련되는 이치를 자연은 알고 있는 것이다. 어른들은 자신의 유년기에, 공터가 많아 뛰어놀며 그저 여린 채로 순하게 자랐던 기억을 가지고 있을테다. 그런 그들이 비워내지 않고 채우려만 들다가 다음 세대의 꿈을 꿀 자리, 자라날 자리를 내어주기는 커녕 하물며 점거하고 박탈하니 이치에 어긋난다. 고집으로 성긴 욕심을 툭 떨구고, 여린 이들에게 자리를 내어줄 때, 이 땅에 봄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