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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노래를 듣다 - 이내 1집 [지금 여기의 바람 O Vento Agora Aqui] 리뷰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2. 15. 08:31

>> 글 : 현 수

>> 사진 제공 : 이내

 

 

 

 

 

 

 


생각다방 산책극장, 그리고 이내

2011년 7월 17일, 부산의 골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좁은 미로 골목 어디메에 있는 허름하고 고적한 주택이 생각다방 산책극장(이하 '다방')으로 태어났다. 공간을 꾸민 거의 모든 것들이 주워온 것들이었다. 이내와 친구들은 두 달 여의 '공사놀이'를 통해 이곳을 만들었다.
다방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청년들의 쉼터였다. 얽매이지 않은 채로 세상에 대해 적당히 반항하고 혹은 적당히 내려놓는 일들로 그들은 공간을 채워갔다. 그러던 중 2012년 5월부터 7월까지 다방 친구들이 모두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행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순례길에서 그녀는 사랑에 빠졌다. 그것이 그녀가 2012년 12월 포르투갈로 떠난 이유이다. 1년이 넘는 동안 애정을 쏟았던 사람과 공간을 버리고 떠나는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선택한 길인 만큼 포르투갈행은 여러 모로 의미가 깊다.
이내가 비자 문제 등의 이유로 2013년 9월에 돌아오기 전에 다방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부산 남구 대연동에서 동래구 칠산동으로 이사한 것. 복천동 고분군 인근에 있는 작은 동네에서 다방은 새로운 보금자리를 틀고서, 돌아온 이내를 맞았다.
다방과 이내는 그렇게 서로 주고 받는 관계였다. 그녀는 다방에 만남을 주었고, 다방은 그녀를 세상에 보여주었다. 다방이 그녀 혼자만이 만든 것도 아니고 소유물도 더더욱 아니지만, 그들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이내의 진짜 1집은 다방이 아닐까.

 

 

[지금 여기의 바람]의 노래

이제 이내의 1집 앨범 [지금 여기의 바람]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포르투갈로 떠나기 전 그녀는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앨범을 냈다. 2012년에 만든 앨범 [일단은, 어쨌든, 조만간에]는 총 10곡을 포함한 앨범이었다. 아이폰으로 녹음한 수공예 앨범으로 그 첫 번째 곡목을 따서 앨범명이 지어졌다. 그때에서 2곡을 뺀 8곡에 자작곡 세 곡, 그리고 포르투갈 노래 두 곡을 추가해서 총 13곡으로 이루어진 1집 앨범이 2014년 1월 17일 만들어졌다. 그것이 바로 이 앨범, [지금 여기의 바람]이다.
이번 앨범을 관통하는 특징을 단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정직함'이라고 하겠다. 전곡은 온전히 그녀의 힘으로 만들어졌다. 따로 화음이 없이 기타리스트 한 사람이 자신의 기타 하나만으로 부르고 연주한 것이다. 그러니 일체의 전자음도 믹싱도 없다. 이 정도면 어쿠스틱을 넘어서서 아날로그다. 다른 소리가 첨가되지 않았으니 기타는 기타대로, 보컬은 보컬대로 온전히 살아난다. 녹음에는 에코조차 전혀 없어서 목소리에서는 숨의 떨림이 느껴지고 기타현을 문질러 당기는 지문이 느껴질 만큼 소리가 생생하다.
주법 또한 단조롭다. 길어봐야 4마디, 짧으면 반 마디에 이르기까지 정해진 주법만을 끝까지 반복한다. 4마디라 하더라도 A-A-A-A' 내지는 A-A-A'-A' 수준인데다, 이 한 주법도 기타 강습 기초반에서 들어볼 법한 가장 기본적인 주법에 가깝다. 여기에 곡의 파트 끝마다 마무리 주법이 들어가는 정도가 전부이다. 나머지는 코드 변화인데, 이 코드도 한 마디에 한 코드 원칙을 거의 대부분 준수했다. 개중 가장 화려한 곡이 중반에 주법 변화가 한 번 오는 'For BigT'인 수준이다.
연주의 특징이 그러하다 보니 인상적인 변화감을 줄 수 있는 요소는 오로지 곡과 보컬의 힘뿐이다. 그러나 보컬도 기교가 없다. 약간의 허스키가 섞인 보컬은 귀에 친근하게 들린다. 담백하게 부르는 톤에 키도 높은 곡이 거의 없어서 대부분의 곡들이 원곡의 키로 남자가 불러도 거의 다 소화시키 수 있을 정도다.
앨범 전체가 주는 편안함의 원천은 바로 기교를 부리지 않는 정직함이다. 어떠한 감정도 담담하게 쓰다듬어주는 보컬과 치장하지 않는 연주로 인해 처음 들어도 생소하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오히려 이 정직한 연주가 근래 번잡함이 가득한 음악들 속에서 독보적인 매력을 갖는다.

 


 

[지금 여기의 바람]의 이야기

앨범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8번 트랙까지의 '생각다방산책극장 시즌1'과 9번 트랙 이후의 '포르투갈 시즌1'. 생각다방산책극장 시즌1의 곡들은 모두 [일단은, 어쨌든, 조만간에]의 곡들이다. 그 뒤의 곡 5곡이 모두 포르투갈과 관련된 곡이며, 이중 12번과 13번 트랙은 원곡이 포르투갈 곡이니 실질적으로는 3곡이다.
그렇게 본다면 생각다방산책극장 시즌1은 현재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가장 작게는 고양이를 바라보는 일상적 감성(이것은 야한 노래)에서부터 때로는 백 가지의 모습을 지닌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착해질께요), 어떤 때에는 정치적 소신을 발화하기도 한다(가만히 #강정). 다방에서 함께 한 이들과의 장면 하나 하나가 살아나는 느낌이다. 그래서 7번 트랙까지의 곡들은 어떤 생생한 활기를 지니고 있다.
8번 곡인 '기차역 왈츠'는 두 파트의 경계점에 있는(정확히는 생각다방산책극장 시즌1의 피날레) 곡이라는 점에서도 그렇고 곡 분위기로도 그렇고 여러 모로 의미가 남다르다. 만남과 헤어짐이 공존하는 공간인 기차역이라는 제목이 주는 것과 같이, 떠나는 시점에서 차마 끊어낼 수 없는 추억에의 아쉬움들이 곡 속에 가득하다. 단조 화성에 느린 템포가 앨범 전체를 통틀어 가장 우아한 곡으로 만들어졌다.
한편 포르투갈 시즌1의 곡들은 현재성과 회상성을 동시에 표출한다. 포르투갈에 있는 나와 내 곁에 있는 사람에 대한 현재성과 더불어 두고온 공간과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진하게 묻어나오는 감정은 그녀의 삶의 이야기를 더할 나위 없이 정직하게 담아내고 있다.
이야기 하나하나에 삶의 즉물적인 감흥에서부터 복잡하고 미묘한 딜레마의 지점까지 꾸밈없이 담아내는 면모 역시 이 앨범을 관통하는 정직함이라는 특성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한 사람의 뮤지션이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가 깊은 울림을 주는 까닭은 바로 이에 있다고 하겠다.


바람의 감성을 듣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지금 여기의 바람]이라는 이름은 이번 앨범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지금'이라는 현재성과 '여기'라는 지역성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그녀는 자신이 겪어내는 어느 장면에서 자신이 있는 곳을 노래했다. 때로는 포르투갈에서 다방을 그리워하기도 했고, 때로는 다방과 그곳에서 함께하는 사람을 이야기하기도 하면서.
다방과 포르투갈이라는, 그녀의 삶에서 중요한 축인 두 공간의 노래가 한 장의 앨범에 담겼다.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두 번의 이행을 하는 동안 사랑했던 것들과 두어야 했던 것들의 무게감들을 그녀는 꾸밈 없는 담담한 노래로 풀어내고 있다. [지금 여기의 바람] 앨범은 현재 다방에서 판매하고 있으며, 앨범이나 공연 소식은 이내의 페이스북 페이지(페이지 주소 첨부)를 통해 접할 수 있다.
따뜻하고 정직한 감성의 바람이 불어온다. 1월에 시작한 바람이 담담하게 봄을 부르려 하고 있다. 이른 봄기운에 외출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면 복천 고분군을 거닐고 칠산동 다방에 들러보는 것도 좋겠다. 좋은 앨범 한 장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 바람의 감성을 들을 시간이다.

 

 



앨범 구성

01 일단은 어쨌든 조만간에
채워지지 않는 갈등 같은 바람에 대한 노래다. 1절은 홀로 있을 때 다른 이와 어우러지고 싶은 욕망을 이야기하는 반면 2절은 1절에서의 욕망이 채워진 후에 느껴지는,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을 이야기한다. 두 마음은 빈번히 우리 마음 속에서 교차한다. '이런 날도 있'다는 말은 이 균형점이 아닌 모든 날들을 지칭한다. 그러나 과연 얼마나 우리의 삶이 균형점에 놓일 것인가. 그런 바람이 누구에게나 하나쯤은 있다는 듯, 마지막에는 가사를 만들어 부를 수 있는 구간도 두었다.

02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영민씨가 작곡해준 곡이라고 한다. 미래도, 하고 있는 일도, 성과 따위도 없다. 오늘 하루를 보고 살아가는 이의 현재성을 사람들은 쉽게 부정한다. 앞으로 뭘 하고 살 건지, 지금껏 뭘 해왔는지 등을 통해 잘잘못을 평가하는 잣대는 개인을 내적으로 속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하고 있다는 것은 일종의 다짐과도 같다. 이것이 다방의 이야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리라. 모든이들이 종종 갖게 되는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을 다독여주는 곡.

03 가만히 #강정
누구나 다 알 법한, 제주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를 노래한 곡이다. 구럼비 바위를 부수는 것은 문명이 오랫동안 잃어온, 자연의 일부로서 인간과 자연의 교감과 더불어 역사성을 훼손하는 과정을 반성 없이 확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내버려두라는 직설적인 어법은 나직하고 차분한 곡 분위기 속에서 억세거나 과격하지 않게 다가온다.

04 이것은 야한 노래
장난스러운 곡이다. 다정하고 소소하며 귀여운 이 장면을 표현하기 위해 연주도 좀더 당겨 치는 방식을 취했다. 야한 노래가 아니라는 선언이 더욱 앙증맞다. 제목도 일부러 어떤 상상을 시키게끔 하지만, 실은 옆구리에 얼굴을 대거나 목덜미에 얼굴을 대는 것이 그렇게 야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일상적인 장면의 포착과 그에 대한 순수한 해석을 종용하는 것이 더 재치있는 부분.

05 착해질께요
곡에서 나의 모습은 다양하다. 혹은 싫은 모습도 있고, 좋은 모습도 있다. 내 의지대로 되는 것도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이들에 대한 총체적인 수용이 '착해진다'로 표현된다. '착해진다'는 것은 타인의 시선을 상정한다. 이는 2절의 '내맘대로만'과 대비되면서, 소통하는 단계로의 의지적인 변화를 다짐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06 수전증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순간의 자신의 모습이 가사에서 드러난다. 설렘으로 떨리는 것에 대한 일종의 변명으로 수전증이라 말하지만, 숨기거나 부끄러워하는 감정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감격이 벅차 그것을 천천히 조심스레 드러내는 단아함이 느껴진다. '당신이 듣고 있어요'라는 말을 통해 청자로 하여금 화자와 직접 대면하는 경험을 하게 한다.

07 러브쏭
그대가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내가 그대를 좋아함을 밝힌 뒤, 그대가 좋아하는 것들을 접하며 그대를 떠올리게 되는 과정들이 1절과 2절에서 대응 구조로 깔끔하게 표현되었다. 가사에서 나타나는 아이처럼 순수한 사랑은 '쏭'이라는 장난스러운 단어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08 기차역 왈츠
떠난다는 것은 머무르던 곳에 무언가를 남기고 감을 뜻한다. 그 경계지점에 서 있는 화자의 복잡한 감성이 저리게 나타난다. 떠남에는 어떤 다짐이나 이유가 있겠지만 모든 것을 버리는 일은 선택이 결코 쉽지 않다. 떠나는 사람들은 그것이 다들 비슷하다는 듯 기차역의 '여행자들의 이야기 한 자락'의 감성을 대변한다.

09 For BigT
이 곡은 일종의 편지이다. '러브쏭'에 나왔던 것과 같은 발상의 지점이 이 곡에도 깔려 있다. 너의 이야기에 나왔던 나무로 인해 나무를 볼 때마다 너를 떠올린다. 2절에서는 템포와 주법이 바뀌면서, 너를 떠나보낸 우리의 지금의 모습이 나온다. 멀리 떠난 이를 그리워하며 '우린 여기서 잘 지내'라는 말로 안심시켜주는 듯하다. 그러나 화자가 집단으로 표현된 것(너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보면 오히려 청자인 '너'가 사실은 이내를 가리키는 듯한 역전의 느낌도 있다.

10 Blessing Song
지고지순한 사랑 고백의 노래이다. 전곡 중 유일하게 영어로 되어 있는 이 곡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바치는 곡이다. 빛나게 피어나는 그 모든 존재로서 그대를 노래하는 마음은 순수하며, 반복해서 '당신이에요'라고 말하는 곳에 간절하게 깊은 사랑이 담겨 있다.

11 생각다방 산책극장
'Blessign Song'이 사랑 고백 그 차제라면, 이 곡은 포르투갈에서 갖는 다방에 대한 그리움 그 자체이다. 바다를 통해 공간적으로 격리된 거리감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포르투갈이 자신의 뿌리가 아니라는 사실의 체감에 있다. 흘러가는 것들을 기억하고, 그 장면들과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저리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