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거대한 장애물에서 지역의 이웃으로! - 신촌 원룸축제 실패와 부산외대의 이전
by 편집장
* 대학이 있어 좋은 게 아니라 대학 자체가 거대한 장애물
“두 개의 대학에 둘러싸인 마을은 대중교통도 멀리 돌아와야 할 뿐 아니라 대학을 가로질러 마을로 가는데도(차로) 통행료를 내야 합니다. 대학이 있어서 좋은 게 아니라 대학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장애물이죠.”
연세대와 이화여대에 둘러싸인 신촌 주민의 이야기다. 최신의 문화를 접하고, 주민이 캠퍼스를 산책로 삼기도 하고, 도서관 등 대학시설을 함께 이용기도 하면서 대학이 있어 지역의 자랑이 되던 것은 옛 말이다. 도서관이며 시설들이 대학생들의 수요에 맞추는 것에도 급급해 지역주민들에게 열어둘 자리가 별로 없다. 게다가 주거지역들이 상가나 원룸촌으로 변하면서 오래 그 지역에 살았던 주민들 자체가 급격하게 줄어들게 되었다. 그나마 생활을 꾸리고 있는 주민들은 대학에 둘러싸여 버스 노선은 멀리 돌아가고, 가로지르는 지름길을 관통하는 것만으로도 돈을 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대학이 주변환경을 바꾸는 1차적인 원인이 되면서 생활세계를 끊어놓게 된 것이다.
부산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바 없다. 부산의 대표적인 대학가인 부산대학교 인근도 최근 2~3년간 새로 허가가 나서 지어졌거나 지어지고 있는 원룸이 80개가 넘는다. 그리고 대학 입구에 거대한 복합쇼핑몰을 세워 대학의 입구가 상가의 입구로 변해버렸다. 몇 년 전만 해도 대학은 고등학생들이 동아리 활동을 빙자해 소개팅을 하는 대면식의 장소로도 활용했고, 다양한 공연이 이루어지는 문화의 공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대학로에서 축제를 할 때조차 백화점의 영업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제재를 받고 있다. 또, 신촌과 마찬가지로 차로 들어갔던 문으로 다시 나올 때까지 10분만 넘기면 주차비를 내야 한다. 대학이 커지면서 원룸은 많아졌고 상권도 넓어졌지만 딱히 문화시설이 더 생기지는 않았고 대학 내 문화시설이 주민들에게 열려있지도 않다. 오히려 기존에는 가능했던 문화들이 대학의 존재에 의해 단절되고 있다. 대학은 더 이상 지역의 자랑이 아니라 애물단지가 되고 있다.
<재미난복수에서 준비한 부산대 앞 거리 전시전 모습>
* 원룸 축제를 통한 공동체 회복의 노력
한 곳에 생활의 터전을 꾸리고,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그리고 다시 그 손자 자녀들이 살아가는 마을이라는 개념 자체가 뒤흔들리고 있다. 도시는 부동산 가격에 따라서, 직장에 따라서, 또는 재개발이라는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서 뿌리를 깊게 내릴 여건이 되지 못한다. 특히나 대학이 밀집된 신촌 지역은 상가촌과 원룸촌이 형성되면서 유동인구나 거주하는 사람은 많지만 이웃이 형성되지 못하고 스쳐 흘러가는 곳이 되고 만다.(봉원동 20,000명 중 20대 7,000명으로 35%)
부산외국어대학교의 남산동 이전을 목전에 둔 금샘마을공동체와 함께 서울의 대학로를 탐방하면서 신촌민회에서 가지고 있는 고민을 들어볼 수 있었다. 신촌민회는 체화당이라는 카페를 운영하면서 다양한 강좌 등 공동체회복을 위한 문화사업을 하고 있다. 또 지역의 기관들과 협력하여 원룸축제를 만들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들은 예상되듯이 실패의 연속이다.
“몇 회 째 원룸 축제를 개최하고 있지만 정작 원룸 안에서 살고 있는 젊은이들과 만나는 것이 쉽지 않다. 오히려 원룸 축제를 하면서 동네 청년들이 아니라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을 가진 다른 지역의 청년들이 놀러오는 계기는 되었다. 최근에는 억지로 청년들을 모으는 것이 과연 도움이 될까 하는 고민을 진지하게 하게 된다.”
몇 년 머물다 졸업이나 취업 등과 함께 떠나는 청년들의 비중이 높은 지역에서 원룸축제라는 공동체 회복을 위한 노력은 차라리 공동체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창조에 가깝다. 아직은 남아 있는 주민들과의 관계를 다시 연결하고 만들어가는 일도 중요하지만 원룸 속에 철새처럼 깃들다 사라지는 청년들을 어떻게 바라볼지 또한 중요하다. 현상적으로 그럴듯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진짜 없던 공동체를 창조하기 위해서라면 공동체의 구성원을 규정짓는 작업이 꼭 필요할 것이다. 대학로 부근이라면 ‘원룸촌에 거주하는 대학생, 취업준비생들은 그 지역의 주민인가?’라는 질문이 바로 그 시작점이 될 것이다.
대부분의 문화가 가족단위가 참여할 수 있는 형식이거나 극단적으로 소비에 치우쳐 있다. 산업화와 신자유주의를 지나면서 이런 분위기가 너무 오래 지속되어 지금의 20대는(물론 20대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나이 지긋한 동네 아저씨조차) 공동체에 대한 향수조차도 거의 가지고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원룸축제는 20대 청년이 상상하고 있지도 않은 ‘이웃’이라는 개념이자 가치를 이끌어내야 하는 어려움을 안고 있다. 그와 동시에 ‘축제’라는 형식이 지향하는 바처럼 스스로 이웃이 되고 또 다른 이웃을 만나가는 일 자체가 즐거운 장이 되도록 해야 하는 이중의 난제를 안고 있다. 그러니 이 과제는 기술적으로 ‘복원’ 가능한 세계가 아니라 새롭게 문화를 만들어가는 ‘창조’의 영역이다.
좁은 원룸이 보장하는 개인적인 안락과 익명의 자유로움의 이면에는 바나나를 한 송이 사면 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월세나 공과금의 압박, 그리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떠는 수다로도 채워지지 않은 고립감이 존재한다. 이 모든 걱정과 고립의 무게는 다운 받은 영화를 보면서, 컵라면 용기를 쌓아가면서, 혹은 집에 들어가는 시간을 유예하면서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겁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문제들의 원인이 좁은 방 칸칸이 자리 잡은 개인들에게 있지 않다.
* 공동체 창조의 밑그림과 주체들
어차피 꼭 복원해야 할 기존의 공동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대학 인근에서 새롭게 창조될 공동체의 상을 다양하게 그려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또 얼마나 많은 주체들이 대학과 지역의 공생과 협력을 이야기 하느냐도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다. 우선 대학이 지역사회의 중요한 주체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 구청이나 교육청에 있는 ‘지역사회 협력’부서 같은 기구가 대학마다 필수적으로 있어야 지역의 다양한 요구를 이야기하고 조율할 창구가 되지 않을까 한다. 그러한 기구를 통해 대학이 있는 시·군 단위에서의 지역 협력뿐만 아니라 그 대학이 속한 동 단위를 지역적 협력을 중요한 현안으로 두어야 할 것이다.
부산외국어대학 이전과 관련한 상상을 해보자면 대학 버스 노선의 선정에서 지역민들의 요구를 반영(아이들 통행 고려 우회, 주민 교통편의 고려한 노선 지정 등), 원룸화 방지를 위한 기숙사 숫자 조정 및 지역 홈스테이를 통한 대학과 지역의 연계, 대학언론의 지역 소식 할당, 대학 동아리와 지역 이웃과의 공동 프로그램, 대학 축제와 지역 축제의 결합 등 협치의 테이블만 만들어진다면 논의해볼 안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실제로 진행되고 있는 일들도 있다. 장전동 인근에서 미리내원룸협의회가 꾸려지고 있고 문화단체, 대학생들과 함께 자취생의 날 행사를 준비해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자리를 만들고 있다. 또 부산대학교의 축제를 대학만의 축제로 보지 않고 일부를 지역의 문화단체들의 행사와 연계하여 지역의 축제로 만들어보자는 시도도 있었다. 대학의 학생회와 지역의 문화단체 등이 빈번히 교류하면서 함께 머리를 맞대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부산 대학 내 문화기구가 만들어지면서 대학 밖과 접촉하려는 분위기도 마련되고 있다.
그러나 이 정도의 움직임은 공동체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데 턱 없이 부족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학과 대학생들이 새로운 지역의 주체로 서는 일이다. 현재 대학은 지역에 있으면서 주거, 상권 등 구조 변화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속의 대학생들도 그런 구조에 희생되거나 단순한 소비자의 입장에 머무르고 만다. 언제까지 대학은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이 자기의 역할이 아니라고 발뺌을 할 것인가. 소비문화의 점철과 공동체 해체의 중심에 대학이 있는데도 말이다. 이제 대학이 발 벗고 나서서 지역의 이웃이 될 준비를 할 때다. 주민들이야 멀리 돌아가건 말건, 원룸이 생기건 말건 상관 하지 않고 방관의 입장을 취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동안 좁혔던 지역에서의 입지를 다시 세우며 스스로 쳤던 바리케이트를 거둬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