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무비 : 인연 따라 유럽 여행>
by 김 황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여행 중에 만나는 인연은 (일상의 인연과는 다른) 특별한 인연일까?"
사람에 따라 다른 대답이 나오겠지만 나는 이 질문에 분명히 "특별하다"고 대답하겠다. 1 사실 여기서 "어째서?" 라고 다시 한 번 물어오면 똑 떨어지는 정답을 댈 순 없다. 하지만 여행중에 만난 인연들은 기억의 상자 속에서 그들만을 위해 따로 마련된 공간 한켠에 차곡차곡 쌓이는걸 분명히 경험한다. 그건 그 인연이 철저하게 우연성에 기댄 인연이라서일 수도 있고 여행이 감수성을 예민하게 만들었기 때문일수도 있다. 혹은 아무런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은 보다 순수한 관계이기 때문이라는 대답도 제법 그럴싸하다. 이유야 어쨌거나 여행자들끼리의 유대감은 좀 더 특별한 구석이 있다고 믿는데 바로 이 인연들 덕분에 내 유럽여행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흘러갔다. 사실 난 다른 대륙들에 비해 유럽에는 기대를 크게 걸지 않았었는데 유럽 여행을 마친 지금, 유럽은 가장 특이한 여행의 색을 띄는 대륙이 됐다. 내가 그려냈던 내 유럽여행. 이는 바로 '친구 순방 여행'.
지금까지 여행을 하면서 만난 유럽친구들이 헤어지면서 내게 말했다. “나중에 유럽에 오면 꼭 연락해!!” 물론 내가 유럽을 여행하는건 아직 뒤의 이야기고 정말 다시 만날 수 있을거라 확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다시 못 만날 가능성이 더 컸다. 하지만 그럼에도 유럽에 오거든 자신이 사는 곳을 찾아달라는 친구들의 말이 따뜻하고 고맙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 그리 길지 않은 일정이나마 나와 함께했던 여행을 상대도 즐겼고 나와의 인연을 기쁘게 여기고 있다는 의미니까 말이다.
Driving girls ~ ♪
유럽 땅에 발을 딛자 가장 먼저 지금까지 만났던 유럽 친구들이 떠올랐다.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페이스북이나 메일창을 띄워보지만 막상 연락을 하려니 이게 어쩐지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 잠깐 잠깐, 내가 연락해도 괜찮은걸까? 내가 찾아가면 환영해줄까? 괜히 폐를 끼치는건 아닐까? 여전히 나를 다시 만나고 싶어할까? 아니, 애초에 연락하라고 했던 말도 그냥 한 번 해본 소리가 아닐까? 2 어렵사리 망설임을 딛고 용기내서 아프리카를 함께 여행했던 시모나에게 메일을 보내봤다.
그래서 연락을 하고 결과가 어땠냐고? 독일 뮌헨에 살고있는 그녀는 날 기꺼이 초대했고 나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환대를 받았다. 옆 도시에서 지내면서 주중에는 출근해야했던 시모나를 대신해서 그녀의 부모님이 나를 공항까지 마중을 나오셨다. 주말까지 그녀의 부모님 댁에서 신세를 지면서 뮌헨을 구경하는 동안 그녀의 가족들이 더할 나위 없이 나를 따뜻하게 대해주셨음은 물론이다. 주말에 마침내 만난 시모나와 그녀의 가족, 이웃, 친구들과 함께 즐긴 옥토버페스트의 3 기억은 내 여행에서 잊을 수 없는 소중한 한 장면이 됐다.
내 행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어서 다른 친구들에게 연락했을 때 내 연락을 반기지 않았던 이는 고맙게도 한 명도, 정말 단 한 명도 없었다. 독일에서, 이번엔 스위스에서, 다음엔 또 네덜란드로....유럽의 국경을 넘나들며 친구들을 찾아가는 내 여행이 계속 이어졌다. 괜한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지만 모두들 하나같이 따뜻한 포옹으로 재회의 순간을 축하하며 함박웃음을 지어줬다. 나를 위해 준비된 편안한 침대와 따뜻한 식사라는 호사를 즐기며 가족과 이웃 사이에 녹아들었을 때 나는 더 이상 외로운 길 위의 이방인이 아니었다. 사람 사이로 흐르는 따뜻한 정을 피부로 느끼는 나날들을 보내며 지금까지 쌓인 여독을 차츰 잊어갔다.
유럽에서의 일정 대부분은 지금까지 여행을 하며 한 올씩 꼬았던 인연의 끈을 따라가며 보냈다. 여행 일정은 예상보다 3주일이나 더 길어졌고(반대로 여행경비는 인도 수준으로 떨어졌다) 훨씬 더 특별하고 소중한 기억들이 내 여행앨범을 장식해나갔다. 내가 그 모든 환대를 받았던건 내가 아주 대단한 사람이여서라거나 단순히 우리가 함께 여행했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유러피언들의 초대 문화가 남다르기 때문일수도 있고, ‘세계여행’ 이라는 타이틀이 그들의 관심과 응원을 이끌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인 친구’라는 희소성도 그들에겐 강력한 동기부여가 됐을게 틀림없다. 그 환대들이 무엇에서 비롯되었든지 간에 분명한 사실은 단 하나. 내가 받은 크고 작은 친절들 하나하나가 유럽에서의 매순간을 감사와 감동으로 가득 채웠다는 것이다.
여행이 길어지면서 깨달은 점 한 가지. 여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건 내가 찾아가는 여행지, 내가 먹는 음식, 내가 즐기는 액티비티가 아니다. 여행이 길어질수록 풍경과 경험은 점점 비슷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니까. 정말로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바로 내가 만나는 사람들. 그들의 마음만큼은 항상 새롭고 다른 빛깔로 다가온다. 좋은 사람과 함께일 땐 특별한 것들이 없어도 매순간이 장면장면 사진처럼 남아 가슴에 박히는 까닭이다. 여행을 가장 아름답게 포장하고 싶다면 여행의 기억을 ‘나의 기억’으로 채울게 아니라 ‘나와 당신의 기억’으로 채울 것. 친절한 현지인과 마음 맞는 여행자들이 내게 보여줬던 미소와 따뜻함...나는 내가 이 분에 넘치는 선물들을 또 다른 사람들에게 되돌려줄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란다.
- "특별하다"고 대답하겠다 :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으니 부연설명. 여기서 '특별하다'는 단어의 쓰임은 '더 소중하다'라기 보다는 '속성이 다르다'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한다. [본문으로]
- 그냥 한 번 해본 소리가 아닐까? : 뭐 이런거 있잖은가. 한국인들의 “다음에 밥 한끼 같이 먹자” 같은거. [본문으로]
- 옥토버페스트 : 뮌헨에서 열리는 맥주축제. 세계3대 축제 중의 하나로서 매년 9월말에서 10월 초까지 열린다. 600~700만명의 맥주애호가들이 뮌헨을 찾는 이 시기동안 수십만개의 소시지와 함께 700만리터의 맥주가 소비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