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장수의 계란을 사는 사람은 누구일까? - LIG 더 뺀드 공연 후기
글 : 정종우
- 계란이 왔어요
어쩌다가 쉬는 평일 낮, 계란장수가 집 앞을 지나갈 때가 있다. “계란이 왔어요. 싱싱하고 맛있는 계란이 왔어요.” 얼마 전 있었던 ‘더 뺀드’의 공연소식은 그렇게 계란장수를 만나듯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공연이 무료란다. 우리 동네에서 계란을 그렇게 무료로 나눠줬으면, 설거지 하고 있던 아줌마부터 시작해서 어제 계란을 샀기 때문에 당분간은 필요 없는 아줌마까지 너도나도 우루루 계란을 받으러 나왔을 거다.
우리 지역의 인문학 관련 단체나 글쓰는 모임등에 “공연”이 왔어요라는 음성이 한차례 지나갔다. 무료라고까지 했다. 그런데 계란 한 판보다 인기가 없었던 것 같다. 그날 저녁 알바가 있어서, 친구와 선약 때문에, 야근에, 교회에 가야 돼서… 등 이유가 참 많았다. 계란 한판은 쉽게 받으러 나갔을 것 같은데, 그보다 대략 8배는 비싼 공연티켓은 왜 기대만큼의 인기가 없었던 걸까? 3일 모두 공연을 보러간 이가 2사람이 안된다. 그나마 3일을 내리 출석한 사람은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팬이다. 이미 공연 맛을 본 사람이다.
- 싱싱하고 맛이 있는 계란이 왔어요
계란후라이는 알레르기 있으신 분들 아니고서는 누구나 좋아하는 국민 반찬이다. 한때는 고급반찬이었던 시절도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저렴하면서도 영양도 있고 엄마들이 간편하게 만들 수 있어 사랑받는다. 이처럼 국민반찬이라고 불리는 데에는 어렸을 때부터 먹었던 것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생각된다. 한 예로 키즈마케팅을 펼치는 기업들의 의도를 들여다보면 아이들을 꼬셔서 부모들 지갑을 열게 하겠다는 전략이 크게 자리하고 있지만 좀 더 장기적으로 보면 어릴 때 아이들에게 특정 브랜드를 계속 접하게 하면 성인이 되었을 때도 예전부터 봐오던 친숙한 브랜드를 선택할 것이라는 계산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문화예술교육특구인 금정구에서 활동하면서 밴드 공연을 실제로 본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다.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생각은 밴드음악하면 시끄러운 것, 장르로는 과격한 Rock 이었는데, 막상 공연을 보니 악기 4개로 참 다양한 느낌과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것을 보고 놀랐다. 밴드 사운드는 클럽의 전자음악 못지않게 신나고 흥겨웠고 들썩거렸으며 파워풀했다. 심지어 감미롭기까지 한 사운드. 이제 슬 공연 맛을 본 것이다.
- 신선란, 한방란, 큰왕란, 유정란, 자연란 등 종류도 다양합니다
LIG아트홀 기획공연 “더 뺀드” 첫째날의 공연팀은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이하 구남)와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이하 불나방)이었다. 구남은 시작부터 끝까지 신명나게 달리는 팀으로 기억한다. 스탠딩석에 있는 관객들도 구남도 시종일관 흥겹게 뛰었다. 그런 흥겨움 속에 구남의 가사는(잘 들리진 않았지만) 부쩍 고민이 많아진 요즘 쓸데없는 생각을 좀 덜어주기도 했고, 이제는 이런 가사들이 좀 와닿구나, 이해가 간다며 상념에 잠기게 하기도 했다. 반면 불나방의 레파토리는 다양했다.(그렇다고 구남이 다양하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매체를 통해 보았던 익숙한 모습, 좋아하는 곡들도 있었지만 고질적 신파에 대한 애증을 바탕으로 한 곡들은 쉬이 몸이 반응하지 않았다. 그래도 재미있었던 것은 멜론에서 음악을 들었을때는 몰랐는데, 공연장에서 직접 들어보니 꽤 흥이 나서 좋았던 곡도 있었다. “석봉아”가 그렇게 파워풀한 노래인지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가장 좋았던 것은 “캠퍼스 포크송 대백과사전”이었다. 적당히 극(劇)의 요소도 있었고, 달콤한 이야기와 조까를로스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참 좋았다.
- 공연이 왔어요. 3만원 4만원 5만원 짜리 등 다양하게 있습니다.
공연을 상품이라고 가정을 해보면, 구남을 구입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신나게 즐기고 싶은날 표를 구입하게 될 것 같다. 불나방은 약간 망설여진다. 별사탕이 들어있는 건빵 같달까.. 건빵을 먹으면서 별사탕을 간간히 먹으면 너무 달지도 않고 참 맛있다. 하지만 별사탕이 없는 건빵은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공연이라는 상품을 구입하는데 있어서 한가지 공통적으로 염려되는 것이 있다. 내용물이 뭔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은 처음 들어본 뮤지션이라면 더 하다. 선곡표를 넘어서서 이번 공연은 이런 것이다. 과자로 치면 “태양의 맛”이라던지 샴푸로 치면 “7가지 손상 집중 케어효과”같은 식의 정리된 언어가 있다면 어떨까? 물론 점점 장르의 벽이 허물어지고 근래의 뮤지션들은 어떤 틀에 맞추어 설명하기 어려운 점들이 있다는 걸 알지만, 공연이라는 상품에 신중하게 잘 정리된 표현들을 사용할 때 대중들은 내용물에 감을 잡고 자신에게 필요한 상품인지 아닌지를 능동적으로 판단하기가 더 쉽지 않을까?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이 다음번 공연 때 작정하고 “감성을 팔러 부산으로 갑니다” 하면 적어도 나는 충동구매한다. 그리고 취향이 비슷한 친구들 여러명 줄줄 꾀에서 같이 충동구매 하자고 얘기하고 다닐 거다. 점점 공연맛이 입에 익숙해져 우리 생활속으로 깊이 들어오게 되면, 이런 저런 수식어 다 필요 없이 “공연이 왔어요.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공연이 왔어요.”라는 간단한 메시지에도 필요한 사람들은 다 사러 나올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3호선 버터플라이가 부산에 온데”라는 정보만으로는 “어 그래 잘 다녀와”라고 말 할 사람이 대부분일 것 같다.
- 계란이 왔어요. 이별한 사람들을 위한 계란, 먹으면 가슴 따뜻해지는 계란이 왔어요.
공연이 다 끝나고 1주일 뒤 공연자와 LIG관계자들과의 작은 미팅이 있었다. 3호선 버터플라이의 성기완씨가 다른 지방의 공연장은 관객들로 좀 붐비는데 부산은 안그렇다고 하시면서, 부산 관객분들이 슬픈것(본인들의 음악)을 별로 안 맞아 하시는 것 같다고 했다. 그 말도 얼추 맞는 것 같다. 입에 익숙하지 않은 맛을 사람들이 맛보려 하지는 않으니까.
예전에 내가 아주 싫어하는 홍어를 입에 넣고 씹어봤던 때가 있었다. 냄새를 맡아봤는데 호기심 정도로는 절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만성 비염기가 있던 나는 “코가 뻥 뚫린다”는 말에 그 일을 실행하게 되었다. 결과는 여전히 맛이 없었지만, 편견을 가지고 있던 것을 그래도 맛은 보고 판단해봤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 3호선 버터플라이의 슬픔이 어떤 슬픔인지 좀 이해되고 공감할 수 있게 설명이 된다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맛은 보자며 티켓을 한 점 손에 슬 쥐어볼 사람들이 생기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