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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경계에 핀 꽃들의 동행, 소설 '빠쓰정류장'의 작가 김비를 만나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2. 7. 20:13

 

 

 

작가 인터뷰

 

 

 

경계에 핀 꽃들의 동행,

소설 '빠쓰정류장'의 작가 김비를 만나다.

 

 

 

글. 친절한 지선씨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하다보면 많은 단어와 문장들과 함께 감정들이 오간다. 그 말들을 통해 서로를 이해했다고 생각한 뒤 다시 만났을 때 여전히 좁혀지지 않은 생각을 확인하면서 당황한 경험이 한 번쯤 있지 않은가? 그때마다 나는 언어가 너무나 불분명하고 모호하다는 점과, 말이 입 밖으로 나가는 순간 그 의미가 퇴색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좌절감을 느끼곤 했다. 우리는 서로를 완전히 이해해야만 하는 것일까? 완전히 이해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함께 나아갈 수 있을까?

 

 

  김비 작가의 ‘빠쓰정류장’이라는 소설은 우리들에게 ‘가능하다’고 말한다. ‘빠쓰정류장’은 죽음과 삶의 경계에 있는 사람, 남성과 여성의 경계에 있는 사람, 그리고 장애와 비장애인의 경계에 있는 사람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세 인물은 세상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고 부유하는 존재들이다. 함께 여정을 떠나지만 각기 다른 상황에 처했기에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대화는 끊임없이 서로 부딪치며 언제 튕겨나갈지 모르게 아슬아슬하다. 소설을 읽어가다 보면 낄낄거리다가, 울다가, 섬짓해지기도 한다. 때로 이들의 대화와 여정이 현실인지 환상인지도 헷갈린다. 시한부 인생인 여주인공의 여정이 이렇게 환상으로 여겨지는 것도 어쩌면 경계에 선 자들의 동행이 그만큼 어렵고, 경계에 서보지 않은 사람들이 그 동행을 이해하기는 더 어렵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계 위에 흔들흔들 서있는 그들의 모습이 위태로워 보이면서도 한 곳을 향해 함께 뚜벅 뚜벅 가는 발걸음을 쫓다보면 어느새 마음이 따스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보도블록이 있으면 꽃은 블록 위에서 피는 것이 아니라 그 틈 사이로 핀다. 경계 속에 있는 것 자체로 아름답다. 함민복 시인의 시 구절이 많은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이 태어날 때는 남자였지만, 크면서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 스스로를 들여다보며 “나는 왜 이럴까?”라는 질문을 품어왔다. 나이가 들면서 성정체성에 대한 괴리감이 극에 달했다가, 이후 새로운 성정체성을 인정함으로써 비로소 맞는 옷을 입은 것과 같은 편안함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물론 그녀는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상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아픔을 들여다봐야 하는 소설가로서 갈등과 혼란에 찼던 스스로의 과거에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이제는 경계에 선 스스로를 인정해서인지 마음의 여유를 얻게 되었다.

 

  ‘모두 각자의 경계 위에서 흔들리며 사는 것이다. 아무도 땅에 내려앉은 사람은 없다. 누구나 흔들리며 사는 것.’

 

 

  김비 작가는 자신의 글쓰기행위를 ‘토해낸다’라고 표현한다. 그녀에게 글은 소통의 도구이기 이전에 자신의 한계를 드러내는 어떤 장애물 같은 것이다.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사람들에게 아무리 이야기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말에 대한 한계에 부딪혔다. 그래서 그녀는 속에서 많이 싸우고 삼키는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었다. 자신 안에서 드러내지 못했던 것을 글로 토해내면서 자신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글에서 ‘냄새가 난다’고 표현하는지도 모른다. 여성과 남성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며 힘겨웠던 것들, 드러내지 못했던 자신의 한계, 절망과 슬픔 등이 글 속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녀는 스스로가 경계 속에 있다는 점을 받아들여서인지 사람들과의 소통에 있어서도 여유로워졌다. 최근 ‘빠쓰정류장’ 소설 출판 기념 북쇼는,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독자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으로 연 행사였다. 전에는 자신이 버티기 위해 글을 토해냈다면 이제는 그 벽에서 좀 더 나와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작품이 독자들 품으로 가는 순간 그들의 삶에 녹아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독자들이 받아들이는 것도 존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또한 북쇼를 하면서 자기 안에 있는 난해하고 무거운 것들을 더 다듬어야겠다는 생각 또한 얻었다고.

 

 

 

 

  김비씨는 마흔이 될 때까지 자신의 인연은 없다고 생각했다. 트랜스젠더라는 점 때문에 호기심으로 접근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 중에 자신을 연인이라고 남들에게 당당히 소개했던 사람은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인생의 여정에 있어 소중한 동행자인 박조건형씨를 만나게 된다. 박조건형씨는 남들에게 김비씨를 소개할 때 글 쓰는 사람이자 자신의 짝지라는 것을 당당하게 소개해준 첫 사람이다. 뿐만 아니라 소설가로 등단한 이후 글에 대한 압박으로 절필을 했을 때, 깨진 상패를 붙여줘서 다시 글을 쓰도록 북돋아준 사람이기도 하다. 그렇게 김비씨는 박조건형씨의 지지 속에서 다시 글을 쓰게 되었고 에세이집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가 탄생할 수 있었다. 출판사의 거절로 3년 동안 묵혀뒀던 원고는 영업이사를 자처한 박조건형씨가 여러 출판사에 보내어 비로소 책으로 출간, 독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소설 ‘빠쓰정류장’이다.

 

  박조건형씨는 김비 작가의 말을 빌자면 겉으로는 강해보이지만 속으로는 여린 면이 있다. 반면에 그녀는 정체성의 갈등을 겪어오는 과정에서 표독스럽고 강해진 면이 있는데 그런 자신이 짝지를 보듬어주고 싶었다. 어쩌면 서로 같지 않음으로 해서 서로를 더더욱 품어줄 수 있는 사이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이 함께 하는 모습이 어쩐지 ‘빠쓰정류장’ 속 인물들의 여정과 꼭 빼닮았다. 서로 흔들거리기도 하면서 서로 다른 경계에 서있을지라도,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할지라도 같은 곳을 향해 바라보고 걸어가고 있으니 따스하다.

 

  그녀가 경남권으로 내려오게 된 이유도 박조건형씨와의 만남 때문이었다. 장거리 연애를 하던 그녀는 양산으로 내려와 박조건형씨와 함께 거주하며 글쓰기를 하고 있다. 자신이 처한 경계와 그 모호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어서인지, 아니면 예술가의 상상력인지 모르겠으나 특이하게도 원룸에 있는 베란다에서 줄곧 작업을 해왔다고 한다. 작업실이 곧 생활공간인 그녀는 현재 새로운 글을 집필하고 있다. 문학을 전공한 것이 아니기에 좀 더 나은 작품을 위해 많이 쓰고 많이 다듬는다고 한다.

 

  김비씨와 이야기하는 한 시간 동안 김비씨로부터 여유가 느껴졌는데, 그 여유가 너무 부러웠다. 내가 부럽다고 말하니 그녀는 좌충우돌할 수 있는 내 나이가 부럽다고 한다. 사람들은 가질 수 없는 저편의 무언가를 서로 부러워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오랜 세월 동안 자신 안의 모호한 것들과 싸우고 그것을 받아들이게 된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그녀는 자신의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자기 건너편의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부정하지 않고 틀렸다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 자체로 흘러가는 강물처럼 보고 즐길 수 있으면, 편안해졌으면 한다. 모호한 경계 위에서 좀 더 흔들리면 어떠랴. 그 속에서 꽃이 피고 그 자체로 아름다운 여정이 시작되는데 말이다.

 

 

 

 

 



by 친절한 지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