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쨌든 안녕합니다
개념미디어 바싹 생존사
오늘도 어쨌든 안녕합니다
글. 숨별
이번 호에는 생존사가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편집장의 은근한 독촉. 몇 개월 동안 연재를 못한 농땡이 기자는 뜨끔한다. 그 말이 ‘숨님은 잘 생존해있습니까’로 들린다. 살아있음의 증명은 바싹에게도 나에게도 중요하다. 원하는 글을 쓰겠다고 호기롭게 선언했으나 잉여롭게 일 년이 훅 지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집으로 돌아와 노트북에 생존사라 제목만 떡 적어놓고 있으니 떠오르는 말들은 전부 신세타령. 낭패다.
주 활동지가 부산인 바싹에는 가깝게는 울산 지부장, 멀리는 아메리카 지부장이 존재한다. 나는 마산지부장이다. 각 지부장은 기사 작성과 배부처 관리를 맡게 된다. 동시에 수많은 회원을 관리해야 하므로 심적인 부담과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마산지부에는 회원이 나뿐이다. 그건 다른 지부도 마찬가지. 유일한 지역회원이 곧 지부장이다. 그러니 유일한 회원인 나만 관리를 잘 하면 되는데 그것도 쉽지가 않다. 그래도 그 역할 덕분에 요리조리 끼어들 수 있는 참견권 하나는 강력하다.
작년 봄에 1호를 발행한 바싹은 어느덧 일주년을 코앞에 두고 있다. 그동안 배부처도 늘었고, 덩달아 회의 시간도 늘고, 새로운 기자도 늘었다. 눈치 챘겠지만 딱히 늘지 않는 건 바로 수익이다. 술도 마시다보면 늘건만! 자본의 관점에서 보면 개념미디어 바싹의 생존은 기적이라 할 수 있다. 매 달 온라인으로 기사를 발행하며 콘셉잡지를 찍어내기 위해서는 당연히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시간이야 몸으로 때울 수 있지만 돈은 매정하다. 초기에는 발행인의 신문배달로 버텼지만 곧 한계가 찾아왔고 인쇄비를 벌기 위해 바싹은 바짝 수다를 떨었다. 풍요로운 수다야말로 바싹의 가장 큰 재주이니까.
그렇다면 지금은 어찌 되었나? 물론 돈은 여전히 바싹의 아킬레스다. 하지만 대안으로 여러 가지 문화사업에서 생기는 수익과 공동부담(이라고 쓰고 십일조라고 읽는다)을 택했다. 그리고 꾸준한 수다의 결과물로 바싹에도 드디어 조직의 모습이란 것이 갖춰졌다. 어렴풋이 발행인, 편집장, MT추진위원장(?) 등의 직책은 있었지만 세분화되어 팀이 정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콘텐츠팀, 디자인팀, 대외협력팀, 조직관리팀. 말만 들어도 전문적인 냄새가 풍겨나지 않는가? 탈퇴하려면 손가락 하나쯤 꺼내놓아야 하는 무시무시한 조직은 아니지만, 어설프긴 해도 각자가 잘하는 일의 범위 내에서 위치를 잡아가는 중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지역공동체와의 관계 맺기다. 문화이모작사업의 지원을 받아 진행된 오륜동과 관계 맺기 <오륜에사심>, 금샘마을공동체와 협업해서 만든 마을잡지인 <장전에서 남산까지> 시리즈를 진행하며 난생 처음 세미나에도 참석하고 마을주민들과 잔치도 벌였다. 살기 바쁜 청년들이 모여서 ‘무엇’을 만들어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사업의 성과를 떠나 청년들이 다양한 연령대와 스킨십하고 지역사회와 관계를 맺었던 것은 장한 일이다.
“바싹에는 (돈은 없어도) 알 수 없는 힘이 있다”
건축 관련 기사를 쓰는 ‘싫은데요’가 어느 세미나 발표에서 말했다. 낯 뜨거워지는 발언이라 사람들은 웃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 수 없는 힘의 정체. 그 8할은 따뜻한 수다에서 나온다. 먹고 살기 힘들다는 요즘에 그것도 예술 좀 해보겠다는 청년들이 월요병을 제끼고 테이블에 둘러앉는다. 영양가 없는 글에는 영양을, 영감 없는 사람에게는 먹던 감도 던져 줄 기세로 수다를 떤다. 상대방의 있는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며 기사를 같이 만들어 간다. 나도 이제 새 코너를 짜야할 텐데 하고 왔다가 회의 2번만에 어렴풋이 코너가 잡혀가는 경험을 한다. 역시 알 수 없는 힘이다. 수다 속에서 감 잡은 것이 새로운 내 코너만은 아니다. 수다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생존을 확인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바싹이 건강하게 생존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매월 잡지를 만드는 것의 무서움을 느꼈다. 특히 조금만 잘못하면 우리의 장기인 수다가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를 감지했다. 그래서 해가 바뀌면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약간의 휴식을 주기로 했다. 한달의 휴가를 가지면서(그래도 수다워크숍은 계속 했다) 1, 2월호를 묶어서 발행하게 된 사연이다.
즐겁게 수다를 떨면서, 힘들면 쉬어가면서
오늘도 바싹은 어쨌든 안녕하시다.
<바싹 생존기념 야외주류문화체험학습에서 생존 인증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