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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륜에사심” 전시와 잔치 이야기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1. 6. 22:17


[ 당신이 모르는 오륜마을 이야기 ]


 

 


2012년 10월 18일 아침 밤잠을 설친 화가공동체 민들레의 신승훈은 오륜동 마을회관 옆에 있는 김민정 갤러리에서 사진들을 붙이느라 분주하다. 전날 밤도 늦도록 테이블을 옮기고 사진을 붙이고 했건만 아침까지 일거리가 쏟아진다. 열두 시가 되자 사람들이 하나 둘 도착했다. 카메라를 든 친구, 기타를 든 친구, 앰프나 빔을 든 친구들이 속속 갤러리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개념미디어 바싹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년들과 그들의 또 다른 예술가 친구들이다.

이 젊은이들이 번화가에서 떨어진 오륜동의 김민정 갤러리를 찾은 것은 몇 개월 동안 오고 가면서 수집한 마을주민들의 사진과 찍었던 영상을 전시하고 상영하는 마을잔치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문화체육관광부, 부산문화재단,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농어촌의 문화활성화를 위해 실시한 문화이모작 프로그램에 ‘바싹’의 멤버 중 몇이 참여했다. 처음 계획에서 바싹이 영상을 찍고, 책을 만들고, 사진전시를 하고, 잔치를 한다고 했을 때 몇 천만 원을 지원해도 잘 안 되는 것을 몇 백만 원으로 어떻게 하냐는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지속적인 관계를 맺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우려의 말도 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왜 프로젝트의 이름을 ‘오륜에 사심’이라고 지었던가. 오륜동에 ‘사시는’ 어른들의 이야기에 애정을 가지자고 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사심인 것을 보여주자고 했다. 보통 사심이 있다는 것은 부정적인 경우에 쓰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 젊은이들은 희생이나 봉사가 아니라 진지하면서도 우리가 가진 재능으로 인근에 있는 오륜동 마을과 그 마을에 살고 있는 어른들과의 관계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잘 해낼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방법이었기에 선택했다. 그것은 우리의 전략이자 사심이 맞다. 또, 왜 우리는 오륜동으로 갔나. 지속적인 관계를 맺으려면 가까이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수몰의 역사나 고령화 지역이라는 것도 중요한 이유였지만 무엇보다 부산대 앞을 주요근거지로 활동하는 우리들과 가까이 있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였다.

 

 

 

처음에 마을을 찾아 마을발전협의회 회장님께 의도를 말씀드리자 오륜동 여기저기를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셨다. 그리고 나중에 전시계획을 알게 된 김민정 갤러리의 관장님께서는 일주일 간 전시장을 쓸 수 있도록 먼저 세심하게 날짜를 조정해주셨다. 마을회관에 모인 할머니들에게 찾아갈 때에도 처음에는 좀 귀찮아하시는 듯했으나, 공연을 하기도 하고, 청년들이 요리를 해서 같이 먹기도 하고, 찍은 사진이나 영상을 함께 보기도 하는 사이 자주 보이는 얼굴이 없으면 “갸는 왜 안 왔냐?” 물어보는 사이가 되어 갔다.

전시 오픈과 잔치 준비로 바쁜 사이 마을에는 확성기가 울렸다. “아! 아! 아침에 말씀드렸듯이 오늘 오후 2시, 김민정 갤러리에서는 개념미디어 바싹이 준비한 잔치가 있습니다. 전시도 하고 공연도 하고 음식도 준비한다고 하니 모두 빠짐없이 참석해주시기 바랍니다!” 마을발전협의회 회장님의 목소리가 회동수원지 한켠 오륜마을에 울렸다. 그 방송에서 ‘개념미디어 바싹’ 발음을 너무 잘 하셔서 이 동네 이장님은 참 세련된 분이구나 생각했다. 나중에 잔치가 진행되면서는 여러 번 ‘개념미디어’를 기억 못하셨지만 말이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락커 이동진,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사를 준비하고 있는 마틴, 인근 재미난 복수에서 활동하는 최성민이 축하 공연을 위해 전날 몇 시간을 함께 연습을 했다. 첫 오픈 공연은 ‘섬집아기’, ‘찔레꽃’ 등 조용한 노래로 시작해서 ‘군밤타령’, ‘밀양 아리랑’ 등 신나는 노래로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할머니들의 흥을 돋우고 마무리했다. 축하공연이 끝나자 흥이 난 할머니 한 분이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로 끝나는 창부타령을 추임새 넣어가며 완창했고 앵콜을 받아 또 한 곡을 부르셨다.

 

 

 

 

준비한 떡이며, 과일, 전 등 잔치 음식을 나누는 사이 가장 고생을 많이 했던 영상팀이 준비해온 영상을 상영했다. 오륜동의 마을 정경 뿐 아니라, 옛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할머니들의 모습, 수집했던 사진들, 그 전에 방문해서 공연을 하고 음식을 함께 먹던 모습들을 편집해서 함께 보았다. 영상을 보시면서 할머니들은 마을에 대한 자랑부터, 당신들의 모습을 확인할 때의 감탄까지 다양한 반응을 보여주셨다. 전시된 사진을 보면서는 사진 속의 인물이 누구인지, 그 장소가 어디인지, 언제 적 모습인지 이야기를 나누셨다. 그 순간만큼은 오륜동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순간 이런 자리를 마련한 바싹과 예술가 친구들도 오륜동 이야기의 일부가 되지 않았을까.

공연 2부에서는 ‘엄마야 누나야’, ‘오빠 생각’이 흘러나왔다. 막걸리를 한 잔씩 마신 덕분인지 할머니들도 박수를 치면서 모두 따라 부르셨다. 마지막에는 락커 이동진이 할머니들께 락큰롤로 함께 놀자는 제안을 하기에 이르렀다. “엄마도 나왔고 누나도 나왔고 오빠도 나왔으니 이제 락큰롤과 함께 노는 것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멘트가 끝나자마자 ‘개구쟁이’, ‘젊은 그대’를 락으로 부르는데 쉬지 않고 할머니들의 박수가 이어졌다. 마을발전협의회 회장님은 아예 함께 불렀다.

 

 

공연이 끝나자 노래를 따라 부르던 마을발전협의회 회장님은 할머니들에게 즉석 제안을 했다. 마을 잔치에 이렇게 흥이 난 적이 없다면서 “내년 경로잔치에 바싹과 이 친구들을 부르면 어떻겠습니까. 괜찮으시겠습니까?” 파격제안을 하셨다. 할머니들의 동의로 우리는 2013년 오륜동 경로잔치에 초대를 받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이전 경로잔치에 섰던 ‘품바’나 ‘풍물’, ‘밴드’를 제치고 섭외 0순위가 되었다. 잔치가 끝나고 돌아가시면서 할머니 한 분 한 분이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으셨다. 나중에 돌아와서 우리들은 마을 경로잔치에 초대를 받는 일은 마을에서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환대이자 마을과 조금씩 관계가 맺어져 가는 흔적이라는 생각을 공유했다.

다들 바쁘게 사는 청년들이 준비한 일이다. 그래서 사진전과 영상, 잔치가 잘 되었냐면 잘 모르겠다. 사진은 허술하게 뽑았고, 영상도 당일 행사 전까지 밤을 새서 편집을 하고, 음식 준비도 힘들어 급하게 뷔페에 연락을 했다. 만약 우리에게 좋은 예술을 만들었냐고 묻는다면 자신이 없다. 대단한 사업성이 있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좋은 관계나, 도시의 청년과 농어촌 마을의 어르신들이 만나는 좋은 사례를 만들었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할 것이다.

모든 문화가 산업일 수는 없다. 농어촌 문화 활성화를 위한 몇 백만 원 지원이 산업적인 효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것도 과욕이다. 오히려 문화는 관계를 맺는 속에서 생겨나고, 관계 맺기를 통해서 이해와 공감으로 나아갈 수 있다. 바싹은 미디어활동을 하면서 이미 그 연습을 해오고 있었다. 그러니 몇 번의 보도가 나가고, 얼마나 사업적인 성과가 있을 것인지 묻기 이전에 얼마나 진지하게 관계의 복원을 해왔고 앞으로도 해나갈 것인지를 물어야 옳을 것이다. 이 관계의 복원이야 말로 도시-농촌, 청년-노년의 문화적 차이를 메우는 문화사업이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점이다. 바로 그것이 바싹의 젊은 친구들이 문화이모작에 결합하고, 사진과 영상을 찍어 전시를 하고 잔치를 열면서 어르신들을 만났던 이유다.

 

 

 


글 by 씨부렁박

motwjm@naver.com

사진 by 현 수

 

* 이 기사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부산문화재단이 주관한 문화이모작 사업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