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영화봐 show! ] 007에 대한 유감스러운 해법, 「스카이폴」
<제목 그대로였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하늘이 무너지더라...... 출처 : 네이버 영화>
007, ‘스카이폴’의 하늘이 열리다
007이 탄생 50주년을 맞았다고 한다. 참 장수하는 시리즈다. 007 시리즈의 존재 기반인 냉전 시대가 끝난 오늘날까지도 이 시리즈가 그대로 이어올 수 있었으니 말이다. 언제고 007 시리즈는 내가 반드시 ‘이영화봐Show!’에서 언급해야만 할 작품이었다. 그런데 그 50주년 기념작이 때마침 개봉을 했다. 그것도 샘 멘데스 감독. ‘아메리칸 뷰티’로 자신의 명성을 확고히 한 감독의 작품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참 생각할 거리가 많은 명작이었다. 중산층 가정의 허와 실을 꼬집는 데에 있어서 샘 멘데스는 탁월한 역량을 보여주었다.
기대를 잔뜩 안고 극장으로 가서 「007 스카이폴(007 Skyfall)」을 감상한 결과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기존 007 시리즈를 생각하면 나쁘지 않고, 근래의 액션영화들을 생각하면 범작이며, 샘 멘데스를 기대하고 보기엔 실망인 작품이다. 감독은 아마 깊은 고민을 했겠지만, 감독을 앞선 지나치게 많은 호선례(好先例)들 때문인지 무엇 하나 두각을 나타낼 만한 것이 없었다.
훌륭한 프리퀄 작품으로는 J.J. 에이브람스의 「스타트렉 : 더 비기닝(Star Trek)」과 매튜 본의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X-men : First Class)」가 방점을 찍었다. 최근 헐리우드의 트렌드인 ‘아직 건재한 노장’ 화소는 로베르트 슈벤르케의 「R.E.D」, 렌 와이즈먼의 「다이하드 4.0(Die Hard 4.0)」가 선방을 했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 잡은 본 시리즈(「본 슈프리머시(Bourne Supremacy)」, 「본 얼티메이텀(Bourne Ultimatum)」)에서 너무나도 섬세하게 접근하는 데에 성공했다. 영상미학의 측면에서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을 따를 자가 헐리우드에는 없을 듯하다. 더 나은 작품이 있었다고 해서 이 작품을 못하다고 할 순 없지만, 「인셉션(Inception)」의 화면 연출에 눈이 높아져버린 것을 어쩌겠는가. 근래 헐리우드 액션영화에서 작가주의 수준의 감독들이 속속들이 두각을 보이는 가운데 샘 멘데스가 파고들 구멍은 애초에 너무 부족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중산층의 인생에 회의를 느끼는 007을 묘사했으면 더 멋있었을지도(마지막 말은 ‘반’농담이다).
<본 얼티메이텀 이후로 지붕타기가 헐리우드 액션 영화의 주류화가 되었다. 오토바이로 지붕타기는 확실히 업그레이드라면 업그레이드다. 하지만 그뿐이다. 공간 풍경부터 바이크 액션 스타일까지, 본 얼티메이텀을 능가하지는 못한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냉전 시대와 007의 정치 지형학
앞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007은 냉전 시대의 산물이다. 종전이라는 표층 아래에 첨예하게 펼쳐지는 첩보전은 물론 실제로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나 사실 일반은 ‘카더라 통신’ 1으로밖엔 알 수가 없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첩보물은 정치 음모론과 더불어 상상력을 극대화시키기에 너무나 좋은 요소를 갖추고 있었고, 정치적으로 보자면 안보 중심의 보수적 민족주의를 고취시키기에 완벽한 텍스트였다. 우리에게 돈 한 푼 주는 법 없어도 롯데를 응원하는 부산 관객들(나 포함)을 보아도 알 수 있듯, 사람들은 ‘우리편’이 지는 꼴은 절대로 못 보니까. 더 나아가서 관객들은 ‘착한 쪽’에 부속되길 선호한다. 이 둘이 앙상블을 이루니까 헐리우드의 수많은 액션영화들이 관객의 기호를 맞출 수가 있는 거다. 007은 그것을 잘 이용해 미국 2이 냉전 시대의 우방이자 적의 보이지 않는 음모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존재라는 상징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했다.
헐리우드 액션 영화에 영향을 끼친 4대 역사 3 중 하나인 냉전 시대까지 막을 내렸으니 4 이제 007 시리즈도 막을 내려야 하건만. 전형적인 영국 신사의 이미지를 드러내는 첩보원인 007은 그렇게 쉽게 자신의 상징을 포기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하지만 정보통신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생각보다 똑똑해졌으며, 이 세계의 적과 아군의 구도를 자유주의와 빨갱이로 양립화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더 이상 007이 공산주의 운운하면 구식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전문용어로 ‘시대착오’라고 한다). 1989년 007 16편인 「살인면허(Licence to kill)」 이후 17편인 「골든 아이(Golden Eye)」가 나올 때까지 6년의 공백을 두어야 했던 007 시리즈는, 이 17편에서부터 냉전 시대의 종말을 시인하고 ‘잔당 척결’을 내세우기 시작한다. 하지만 말이 ‘잔당 척결’이지, 기저에 깔린 악의 근원은 ‘돈’이다.
자, 이제 적이 ‘빨갱이’에서 ‘돈’으로 바뀌었다. 물론 1988년에 이미 ‘다이 하드(Die hard)’가 이런 변화를 제대로 간파했던 것도 있다. 감옥에 갇힌 소련의 우리 동지 운운하는 악당이 노린 건 사실은 나카토미 빌딩 금고에 있는 돈이었다. 이 통렬한 성찰이 007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가 없었을 터다. 그러나 자꾸 ‘돈’, ‘돈’ 하면 자본주의의 상징인 007이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으므로 아직 남은 ‘빨갱이’ 국가인 북한을 악으로 설정한 「007 어나더 데이(Die another day)」 같은 망작이 나왔다. 이 작품은 007 시리즈가 갖는 탄생과 시대적 변화의 모순을 극명하게 드러내며, 냉전 시대 우파주의의 복권을 꾀하다가 침몰한 케이스가 되었다. 그 바로 다음 작품인 「007 카지노 로얄(Casino Royal)」이 95년에 ‘시대는 변했다’는 주장을 한 「007 골든 아이」의 감독 마틴 캠벨에 의해서 다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매우, 매우 인상적이다.
「카지노 로얄」은 007의 이후 시리즈라기보다는 프리퀄, 즉 새로운 시리즈의 시작이라는 평가를 더 많이 받았다. 새로운 007인 다니엘 크레이그가 영국 신사로서의 007의 이미지가 아니라 몹시 똑똑한 동네 양아치 형의 느낌이었다는 점도 마틴 캠벨이 변화를 인식하고 정말 과감한 선택을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차기 007이라고 했을 때 그 배우의 젠틀과는 거리가 먼 터프한(이라고 하고 못생긴 이라고 읽는다) 이미지 사진을 보고 얼마나 숱한 007 팬들의 비난이 이어졌는가. 그 비난을 영화의 개봉과 함께 덮어버릴 수 있을 만큼 「카지노 로얄」은 수작이었다.
<이 장면은 실제 영화에서와는 앵글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실제 영화를 보면 인셉션이 떠오른다. 잘 만든 영화가 너무 많아서 유감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그런데 제임스 본드는 왜 그랬을까
그런 「카지노 로얄」이 21편이었고, 이번 「스카이폴」은 23탄이다. 샘 멘데스는 프리퀄 이후 두 번째 편만에 또 다시 프리퀄을 시도하는 과감함(과감해도 너무 과감함)을 보였다. 그런 시도는 샘 멘데스가 감독으로서 007에 대해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시각을 전제로 해야만 하는 것이고(마틴 캠벨이 그랬듯이), 그것은 「스카이폴」에서 두 가지 맥락으로 나타난다.
첫째는 ‘더 이상 냉전은 없다’라는 것이다. M이 청문회에서 하는, ‘오늘날 우리의 적에게는 제복도, 국기도 없다’라는 말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덧붙여 ‘지금 여러분은 안전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멘트를 통해 보수적 안보주의를 여실히 드러낸다. 아쉽게도 이는 「테이큰(Taken)」이 표방했던 불쾌한 안보주의다. 또, 앞서 길게 고찰했듯 이는 007 시리즈가 이미 성찰해온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래 이야기할 만한 거리가 되지 못한다.
요즘 헐리우드의 트렌드에는 ‘돈’이 적이 아닌 ‘절대악’의 설정이 있다. 「다크 나이트(Dark night)」의 조커가 대표적이다.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혼돈을 초래하는 것이 중요한 악당. 이는 「다크 나이트」와 같은 해에 개봉해서 조커와 함께 그해 최고의 악당으로 등장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an)」의 안톤 쉬거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나쁜 짓으로 거액을 뜯는 건 어린애 코 묻은 돈 뺏기만큼 쉬운 일이 되었다. 이런 시대에는 이념도 의미가 없는 것이 옳다. 그런 경향의 한 방향에 불과한 이야기를 「스카이폴」은 너무 진지하게 던져대고 있다.
‘정체성’과 트라우마의 측면은 「스카이폴」이 매우 중요하게 가져가는 또 하나의 화소이다. 작품 초반에 M에게 끝까지 신뢰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M이 자신을 배신했다고 말하는 007. 이는 악당인 실바가 M에 대해 주장하는 ‘배신’과 같은 맥락을 지닌다. 실바가 007의 내면의 악이라는 데에 대해서는 부정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007 테마송이 나오는 화면에서 보면 007이 자신의 그림자들을 쏘는 가운데 그 그림자 중의 하나가 실바가 되어 007을 겨누니까. 곧 이 작품은 007이 자기 안의 악과 싸우는 이야기가 된다.
이는 ‘스카이폴’이라는 옛날 살던 집 이름을 부정하는 007의 트라우마와도 연계가 된다. 007은 유년 시절 고아가 된 아픈 기억을 안고 있다. M은 고아가 된 007을 안아주었다. 입으로는 ‘천애고아가 요원으로 적격이지’라고는 말을 하지만 두 사람의 인간적인 유대감을 넘어서는 애정 관계는 명백하다. 본드는 목숨을 걸고 지켜줄 만큼 M을 어머니로 여기고 있다(본드의 내면의 악을 상징하는 실바가 끊임없이 M을 ‘엄마(Mama)’라고 부르는 것도 인상적이다). M에 대해 ‘bitch’라고 말할 만큼 부정하면서도 끝내 M을 안아주는 것이 본드의 ‘선’인 것이다.
007은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요원의 코드명이다. 청문회에서 위원장이 ‘00이라는 코드명을 왜 아직도 사용하느냐’라고 질문하기도 한다. 실바가 말하는 ‘쥐’ 이야기는 007이 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경으로 깔고 있다. 수많은 쥐들 중에 살아남은 쥐를 키우는 M을 이야기하는 것은 ‘엄마는 왜 나만 바라봐주지 않아?’라는 호소이다. 여기에 ‘늙음’의 화소가 작용을 한다.
메인 테마에서 대단히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가 바로 어깨의 총상이다. 본드는 초반에 어깨에 사소한 총상을 입는다. 그게 테마곡이 흘러나오는 내내 배경 이미지에 나온다. 아마도 본드의 노쇄함을 상징하는 요소인 듯싶다. 처음 총에 맞았을 때에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니던 본드는 이후 어깨의 총상 때문에 총을 제대로 들지 못하는 상태로 나온다. 이제는 늙어버린 본드. 체력 테스트 등도 다 떨어진다. Q에게 장비를 받을 때마다 도대체 어디다가 써먹을지 상상도 안 되는 장비를 받으면서도 그걸 또 어떻게든 써먹고야 말던 본드가 젊은 Q에게서 ‘폭탄 볼펜 5 같은 거 요즘엔 안 만들어요 6’라는 핀잔을 받는 장면은 이전 시리즈들의 시대착오에 대한 비판이자 동시에, 그런 상상을 하는 것이 오히려 시대착오라는 변화에의 역설이다. 게다가 매번 장비를 박살내먹는 본드에게 장비 반납을 요구하는 Q란.
이런 변화가 적응도 안 되고 못마땅한 본드. 그는 자신의 묵직한 직구적인 방식을 고수하고자 한다. 시대에 밀려 낙오되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본드. 그가 ‘살아남은 쥐’가 되는 것은, 시대의 흐름 속에 007을 (믿음을 배신하고) 취사선택하는 현실에서 버림받지 않는 ‘구관’이 됨을 의미한다.
<희대의 악당 안톤 쉬거를 연기한 우리 하비에르 바르뎀 형님한테 이렇게 수준 낮은 악역 연기 시키지 마라. 출처 : 네이버 영화>
그래도 아쉬운
냉전 시대와 종식의 모순을 이 이전에 잘 드러낸 작품이 있으니, 바로 「퍼스트클래스」이다. 이 작품에서는 이미 세상에는 적과 아군의 관계가 손바닥 뒤집듯이 뒤바뀔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어느 쪽이 선이고 악인가는 순전히 관계와 행위에 의해 결정된다. 돌연변이의 집단이자 절대악이었던 헬파이어 클럽은 인류의 위협이었고, 이러한 위협에 맞서 싸우는 엑스맨 집단은 헬파이어 클럽을 제압하는 순간 새로운 악으로 부상한다. 1차 대전 당시 수용소에서 가족을 빼앗긴 고통을 겪은 매그니토가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채 인간을 부정하는 존재로 되는 과정과, 온화한 환경 속에 인간을 긍정하는 프로페서 X의 관계 양상도 포인트다. 이를 통해 시대의 비극이 개인에게 어떻게 암적으로 전이되는지, 그런 개인의 분노가 어떻게 시대를 뒤흔드는 결과를 낳는지의 상관관계까지 조명해낸 것이다.
한편 적과 정체성을 언급한 것으로는 「본 얼티메이텀」이 있다. 본 시리즈의 최대 걸작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시작하면서부터 나오는 대사가 매우 인상적이다. 상부의 명령으로 이유도 모른 채로 본을 쫓던 러시아 경찰. 그들을 제압한 본에게 경찰은 자신에게는 가족이 있으니 쏘지 말라고 한다. 이때 본은 ‘넌 내 적이 아냐’라고 하며 나가 버린다. 그 장면을 보는데 거의 철학적 충격이 왔다.
이미 「블러디 선데이(Bloody Sunday)」, 「플라이트 93(United 93)」을 통해 ‘적’의 개념에 대해 자신의 철학을 잘 정리한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다. 그런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 덕 라이만 감독이 재미있고 깊이 없는 액션 영화로 만들어놓은 「본 아이덴티티(Bourne Identity)」를 이어받았다는 점은 아주 인상적이다. 내가 썩 높게 평가하진 않지만 「본 아이덴티티」는 CIA가 민족주의적 안보사상을 정의라는 미명으로 행한 폭력에 대해 대항하는 기반을 만들어 주었다. 이 기반을 바탕으로 폴 그린그래스는 ‘악은 우리 안에 있다’는 개념과 ‘그런 적을 올바로 보아야 한다’는 가치를 바탕으로 「본 얼티메이텀」이라는 대역작을 만들어냈다.
비슷한 경향의 이 작품들은 명쾌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007 스카이폴」은 이에 비해 욕심이 많았다. 트라우마, 아직 죽지 않은 노장, 부모자식형 애정, 내면의 자아와의 싸움, 시대에 대한 고민. 그 많은 것들을 복고적으로 이만큼 담아내면 대단하다고 할 수도 있을진 모르지만, 그렇다고 잘 만들었다고 할 순 없는 거다. 생각도 반성도 없었던 기존 007들에 비하자면 훌륭할지는 몰라도 말이다.
실바가 외치는 배신은 그리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억지에 가깝다. 쥐 이야기는 괜히 꺼냈다 싶을 만큼 구관명관 화소와 트라우마 화소의 연계점 구실을 하지 못한다. 실바가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적인 것처럼 연출을 하지만 「다크나이트(Dark night)」의 조커가 하는 짓과 똑같은 짓을 하면서 반의반도 못 따라가는 수준이다. 그렇다고 007의 반격이 설명한 것처럼 지능적이냐 하면 전혀 그렇지도 않다. 외려 무식하기만 하다. 사건이 개연성이 떨어지니 철학과 상징을 뒷받쳐주지 못한다. 게다가 전작들의 형편없는 물량공세 액션씬을 고민 없이 그대로 따라가기까지 한다. 그러니 그냥 그럴싸해만 보일 뿐 액션과 철학이 따로 노는 꼴이 되어 버린다.
결정적으로, 본드에게는 끝내 고뇌가 없다. 스카이폴 저택으로 돌아가는 것은 자신의 트라우마와 정면으로 대결하는 상징으로 볼 수도 있다. 옳다. 그러나 그건 ‘요소’이고, ‘해법’은 또 별개인 거다. 내면의 악인 실바는 선인 본드와 철저하게 경험만 공유한 위치에 놓인다. 개인이 내면의 악과 싸우는데 이렇게 흔들림이 없다니. 본드는 실바를 보며 동정하지도 않고, M을 보며 의심하지도 않는다. 결국 본드는 자기 안의 선을 철저하게 유지한 상황에서 내면의 악을 분리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낸다. 트라우마였던 스카이폴 저택을 자기 손으로 박살내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다. 밖에서 실바가 공격을 하니까. 이런 깊이 있는 주제의식을 고작 이 정도로밖에 풀어가지 못하는 거다. 까놓고 보면 이 작품보다 문제가 더 많은 「다크나이트 라이즈(Dark night rise)」조차도, 그 안의 브루스 웨인은 고뇌를 극복하고 성숙하는 히어로였다.
본드를 힘들게 하는 건 세월이었지 그 자신의 이중성이 아닌 거다. 그러니 본드에겐 그 극복이 다 쉽다. 관객은 ‘이것이 고비입니다’라는 진술과 제시만 받았을 뿐 전혀 공감할 수 없다. 차라리 「카지노 로얄」에서 사랑했던 연인 때문에 아파하던 본드가 냉혈한으로 거듭나는 과정이 훨씬 더 서정적이고 가슴 아프다.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인물들의 바닥까지 파헤치는 심리 묘사가 서글프도록 그리운 「스카이폴」은 그래서 허망하다. 옛날 007로의 회귀는 성공적이었을지 몰라도, 새로운 007의 시작을 알리기에는 「스카이폴」은 역부족이다.
- 카더라 통신 : 비 경상권역에서 이 글을 읽으실 분들을 위해 주석을 굳이 달자면, 들려오는 이야기로만 확인 가능한 정보를 일컫는 용어. ‘~라고 하더라’의 ‘하더라’의 경상도 사투리가 ‘카더라’임. [본문으로]
- 미국 : 007은 영국 스파이고, MI6도 영국의 첩보조직이다. 고로 영국이 그런 존재여야 하는데 우리는 왜 미국을 떠올리는가. 그건 단순히 헐리우드의 자본이 들어갔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코쟁이는 무조건 미국이라는 상징이 있어서이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당연히 미국은 영국의 부속국가이지만, 그래서 우리는 ‘영미’라는 단어를 쓰지만 우리에게 서구의 중심은 ‘미국’이다. 이런 기호화를 헐리우드는 아주 충실히 구축하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우리는 미국인과 영국인을 구분하지 못하고, FBI와 CIA가 미국 조직이라는 건 알아도 MI6가 영국조직인 것은 모른다. 그건 미국인들이 한국전쟁을 전혀 모르고, 한국인과 중국인과 일본인을 구분 못하는 것과 같다. 범인류적인 공통 무지이니 너무 속상해하지 말자. [본문으로]
- 4대 역사 : 첫째, 월남전. 둘째, 냉전시대. 셋째, 911 테러. 넷째, 분쟁시대. 하나씩 하나씩 풀어가도록 하겠다. [본문으로]
- 냉전 시대까지 막을 내렸으니 : 누구도 막을 내렸다고 믿진 않는다. 하지만 냉전 시대가 정말 시작하기나 했는지 정말로 아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다. [본문으로]
- 폭탄 볼펜 : ‘007 골든아이’에서 나온 아이템이다. 샘 멘데스는 마틴 캠벨의 작품을 빈정거리면 안 되는 거였는데 이건 감독이 잘못한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나도 ‘골든 아이’를 볼 때 폭탄 볼펜 쓰는 장면에서 실소를 금할 수 없었긴 했다. [본문으로]
- 요즘엔 안 만들어요 : 사족이지만, ‘현실화’는 헐리우드 액션 영화들이 많이 표방하는 ‘코미디’ 요소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액션 장면을 위해 들어가는 쓸모없는 발명품들의 비현실성에 대한 냉소라는 말이다. 영화 ‘엑스맨’에서 싸우러 갈 때 ‘쫄쫄이 타이즈라도 입을까?’라고 하는 울버린의 대사가 압권이었다. 원래 울버린(을 포함한 엑스맨 캐릭터들, 을 포함한 모든 미국 히어로물의 캐릭터들)은 원색의 알록달록한 쫄쫄이 타이즈 유니폼을 입고 있었으니까. ‘엑스맨 3’가 여러 모로 욕을 먹었지만 그 중 하나로 ‘엑스맨’ 1편에서 저렇게 비웃어놓은 유니폼을 끝내 입힌 것에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쫄쫄이만 아니면 된다는 착각을 브랫 래트너 감독이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