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인생은이벤트]NG 이벤트 일기
나는 이벤트 대행사를 다니는 스물여덟 직장인이다. 꿈도 열정도 없이 허무맹랑하게 살아왔던 스무다섯, 나에게 하고 싶은게 생겼다. 공연을 보러 가거나 각종 행사장에서 한번씩 보이는 그들. 등에 STAFF라는 글자가 찍힌 옷을 입은 그런 사람 말이다. 많은 청중들에게 즐거움과 재미를 주기 위해 무대가 아닌 보이지않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그 뒤로 스탭을 하기위해 알바도 하고, 직업으로도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알아보게 되었는데 이벤트 기획자, 음향디자이너, 파티플래너 등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설레는 직업들이 있었다. 당시 공대 2학년에 재학중인 나는 자퇴를 하고 이듬해 전문대학 이벤트 관련학과에 입학을 하게되었다.
부푼 기대감을 안고 입학하였는데 이런 제길 청중으로서 보고 즐기던 그런 재미난 부분만 있는것이 아닌 이건 무슨 3D 직업인것이다. 남들 놀때 일하고 남들 일할때 더 일하는... 행사하나를 기획, 연출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것인가. 행사를 준비하기 전에 영화로 따지면 시나리오쯤 되는 기획서를 쓰기위해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문서로 작성한다. 정말 완벽히 쓴 기획서를 가지고 본 행사를 하기위해 연출을 하면 아무 문제 없이 잘 될 줄만 알았는데 그때부터 이 놈의 변수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행사는 엄청난 총체적 난국에 빠지게 된다.
얼마전 모델하우스 컷팅식 행사때 일이다. 모델하우스 컷팅식이라 해봤자 불과 20분 남짓 밖에 걸리지 않지만 그래도 난 긴장이 되었다. 건설회사 대표에 임원들까지...각종 행사장 아르바이트는 많이 해봤지만 컷팅식은 처음인 나는 음향 오퍼레이터(음향을 만지는 사람)를 보기엔 긴장이 되어 실장님께서 몸소 오퍼레이터를 해주시기로 하였다. 대신 난 꽃가루가 발사되는 에어샷 스위치를 켜기로 하였다. 그날따라 오퍼레이터를 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컷팅식을 진행하는 출입문 안쪽에서 투명문이 닫힌채 하기로 하였다.
(오퍼레이터가 행사에 임하는 시야)
행사 시작 1시간 전 도우미 팀장의 사회로 리허설은 순조롭게 마무리 되었다. 본행사가 시작되고 사회자의 멘트에 맞추어 실장님께서는 BGM을 틀었는데 그날따라 깔끔하게 음악이 틀어졌는지 신입인 나에게 우쭐되는 표정으로 행사에 임하셨다. 대표이사의 기념사가 끝나고, 식순에 따르면 컷팅하는 것만이 남아있었다. 에어샷을 틀어야 하는 나는 긴장해 있었고 행사 경력 15년차의 실장님은 상당히 여유로워 보였다. 이제 사회자가 컷팅하기 전 구호를 외칠거고 실장님은 팡파레 BGM을 나는 에어샷 버튼을 누르면 된다. 사회자가 "하나", "둘"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셋" 실장님은 팡파레 BGM을 트셨고 나에게 에어샷 버튼을 누르라는 싸인을 주셨다. 버튼을 누르는 순간 짜릿한 느낌 뭐랄까 마치 목말랐을 때 탄산음료를 마실때의 쾌감이 느껴졌다.
'오늘 행사 무사히 끝났구나'하는 생각도 들면서 마치고 소주 한잔 하러 갈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았다. 실장님은 마냥 여유롭게 웃고 있다.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있나 보다. 하지만 돌아보니 다른 사람들은 당황해 하고 있다. 그렇다 변수가 생겨버린 것이다. 컷팅 전 기념촬영을 하기위해 사회자가 구호를 외쳤는데 출입문 안쪽에 있던 우리는 그 소리를 잘 듣지 못했고 팡파레와 에어샷을 틀었던것이다. 팡파레 BGM은 다시 틀수 있는 거라지만 하늘높이 솟아 바닥에 아름드리 깔려있는 에어샷 꽃가루들을 어찌 다시 담으리오...
(올바른 컷팅식의 바른 예)
약 3초간, 체감시간 30분의 정적이 흘렀다. 순간 한명의 임원이 리본을 컷팅하였고 옆에 있던 임원진들도 그 상황을 벗어날려는지 눈치껏 컷팅을 해주었다. 그걸 지켜본 사회자도 정적을 깨고 재치있게 컷팅을 해달라고 곧바로 멘트를 해주었다. 어찌됐건 저찌됐건 상황은 잘 마무리 되었다. 컷팅이 끝나고 출입문을 열고 대표이사님이 들어오셨다. 웃으며 수고하셨다고 말씀을 해주셨다. 휴.. 살았다.. 행사가 끝나고 클라이언트의 질타가 있긴 했지만 대표이사님의 한마디 덕분에 실장님과 나는 무사히 회식을 할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잔의 안주거리가 될수있는 에피소드지만 그 당시는 어찌나 공포스러웠는지...
변수란 천재지변처럼 언제어디서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않고 찾아온다. 변수가 찾아오면 어김없이 NG상황은 뒤를 따른다. NG = No Good. NG는 좋지않다. 하지만 많은 NG상황을 겪으면 그만큼 더 노련해지고 대응능력이 빨라지지 않을까. 언제 어디서 터져나올지 모르는 NG상황을 재껴두고 오늘도 난 행사를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