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 옵, 옵, 옵, 오빤 강남 스타일 아니에요 - 강남, 그리고 스타일
싸이의 신곡 ‘강남 스타일’이 대박 돌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강남 스타일의 패러디로 홍대 스타일이나 대구 스타일 등이 나오면서 인기 부채질에 열을 올리더니, 요즘엔 거꾸로 버전에 오케스트라 버전까지 나왔다. 그야말로 승승장구다.
처음에 지나가듯이 이 곡을 들었을 때 들리는 가사라곤 ‘오빤 강남 스타일’이라는 말밖에 없었기에 되게 웃기다고 생각했더랬다. 강남 스타일이라니. 요즘엔 별별 웃기다 못해 어처구니 없는 가사들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다가(넌 내꺼중에 최고라느니, 니가 얼마나 잘난 놈이기에라느니, 십점 만점에 십점이라느니) 나 잘났다를 당당하게 외치는 가사들도 많기에 그냥 그런 가사 중 하나이려니 했다. 얼마 못 가 사그라들 반짝 성공일 거라 예상했던 노래가 알고 봤더니 내가 좋아하는 싸이의 노래였다.
싸이는 굉장히 날라리스러운 노래를 매 앨범마다 한두 곡씩 꼬박꼬박 넣어왔고, 데뷔곡인 ‘새’도 엽기송으로 알려졌으며, 그 날라리스러운 노래들 속에서 요즘의 가벼운 세태들을 칼날 같이 찌르는 정교함으로 무장한 가수였다. 싸이의 노래라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강남 스타일이 가볍게 들리지만은 않는 것이다.
지역의 특정한 성격이 강해지면 그 성격은 지역의 대표성을 지니게 되며, 이는 고스란히 그 지역의 명칭에 반영된다. 그러면 실제로 가 보든 가 보지 않았든 우리는 그 지명을 듣는 순간 이 대표성을 연결시켜 떠올리게 된다. [강남=부자동네], [해운대=바닷가 혹은 클럽], [홍대=자유분방, 청춘, 예술 등]와 같은 방식이다. 해운대의 경우 부산 현지인들에게는 바다의 이미지보다는 클럽과 부유한 젊은이들의 이미지가 더 많이 떠오르는데, 외지인들에게는 해수욕장이 훨씬 더 강하다. 대표성이란 이렇듯 보이는 것이나 알려지는 정도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개인간에 차이가 나기 쉽다.
강남은 앞서 말했다시피 부자동네라는 이미지가 대표적이다. 서울 현지 사람들은 강북이 더 알부자다 강남이 더 알부자다를 놓고 자존심 싸움을 벌이는 모양인데(진짜 부자들은 별로 신경도 안 쓰겠지만) 어느 쪽이 진짜 알부자건 일단 한강 이남 지역은 대한민국 부유층을 대표하는 지역이 되었다. ‘부자’의 이미지에 있어 해운대가 부산 단위의 대표성이라면 강남은 전국 단위라 하겠다.
지역이 지니는 계급차의 위력은 그대로 언어에 전이되어 파급효과를 발생시킨다. ‘분당 사람’, ‘강남 사람’ 하면 그 사람을 보는 눈이 아예 달라진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부유층’이라는 말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렇다면 이 이미지는 얼마나 실체와 가까울까.
대한민국에서 강남부자의 모습을 실제로 본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서울쪽에 사는 사람이야 이래저래 볼 일이 있겠지만 나머지 지역 사람들에겐 별로 마주칠 일이 없지 않겠는가. 대개 유유상종이라는 말에 충실하게, 비슷한 계층의 사람들끼리 또 어울리는 법이라 ‘통장에 얼마 들었는지 생각 않고 사는 부자’를 곁에 둘 일이 별로 없다. 결국 우리의 이미지는 TV에서 보여준 부자 캐릭터로 간다. ‘시크릿 가든’의 현빈이 사는 집과 옷이 부자의 이미지인 우리들에게 이 강남 부자상이란 판타지이다. 알고 보면 진짜 알부자들은 동네 주민임을 강조하도록 트레이닝복, 친근한 표현으로 추리닝을 입고 다닌다느니 하지만 아무도 모를 일이다. 굳이 알부자 동네 사람이 아니더라도 추리닝은 많이들 입고 다니니까 추리닝을 입었다고 부자인 것도 아니고, 과시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미약한 정보는 상상력을 자극하는데 상상력이란 게 원래 경계가 없는 법이어서 실체와 동떨어지는 일이 부지기수다.
그러니 ‘강남 스타일’이라는 말은 철저한 허구다. 이승기가 척 봐도 명품인 옷을 입고 나와서 이게 강남스타일입니다 하면 대한민국 인구의 90%는 아 그렇구나 하고 말 것이다. 그 정도 옷은 입어야 부자로 보일 수 있는 거다. 최소한 자신이 없어보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명품을 입어야 한다. [아메리칸 사이코] 1에서 명함 재질을 가지고 누가 더 부자인가를 싸우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명품을 입었으므로 부자가 아니라 명품을 입어야 부자가 된다. 이미지가 앞서고 실체가 뒤를 따른다. 이 얼마나 시뮬라크르 2적인 세계인가.
‘스타일’이라는 말은 ‘강남’의 이미지성을 더욱 강력하게 드러낸다. 강남의 이미지에 걸맞는 옷과 차를 갖추어야 강남 스타일이 되는 것이다. ‘스타일’이란 말이 들어가면서 진짜 강남이든 아니든 ‘강남인처럼 보인다’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내가 어떻게 보이는가를 중요하게 여기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의 정서가 즉각적으로 드러나지 않는가.
나는 놀랍게도 ‘강남 스타일’이 매우 깊이 있는 뮤직비디오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실제로 이 뮤비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시뮬라크르로서의 강남 부자의 이미지가 완전히 부재하니까. 싸이는 자기가 강남 스타일이라고 하면서 뮤직비디오 시작부분에서부터 동네 놀이터에서 바캉스하는 모양새로 누워 있다. 부자가 아니라 부자 스타일이다. 강남이 아니라 강남 스타일인 것처럼. 강남에서 촬영한 게 분명한 것도 보이지만 여러 모로 곳곳이 서민적 일상성을 지닌 곳이 더 많다. 한강 오리보트 사이의 아리랑 3호 보트, 지하철, 목욕탕, 고속버스, 횡단보도 건너기, 조깅하는 여인네들, 바둑인지 장기인지를 두는 노인들. 진짜 강남 스타일을 표방하며 고급차를 타고 등장한 유재석은 싸이와의 댄스 대결에서 싸이의 전혀 세련되지 않은 춤에 밀려서 퇴장한다. 맨 마지막에 떼거지로 나와서 춤을 추는 부분을 보라. 경비 아저씨, 태권도복 입은 사람, 의사 가운, 권투선수, 치어리더, 학생, 사무원에 한복 여인까지 별별 사람들이 다 서 있다. 따라하기 쉽고 재미있는 말춤을 추는 이들 중에 정말 강남 스타일로 보이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노래가사도 별로 강남 스타일과 관계 없는 것 같다.
싸이는 이렇게, ‘강남 스타일’을 끊임없이 외치면서 ‘강남 스타일’의 허구를 조롱한다. 그래서 이 뮤직비디오가 재미있다. 노홍철이 추는 만렙의 허리춤 스킬도 놀랍지만, 그렇게 진지하게 노래를 부르는 장소가 품위 없게도 엘리베이터 안이라서, 혹은 화장실이라서 더 재미있다. 여자의 엉덩이에 괴성을 지르며 강남 스타일의 품격을 깎아내리기에 재미있는 것이다. 이후에 나오는 패러디물은 바로 이런 깊이의 맛이 떨어진다. 홍대 인근과 클럽 입구에서 내내 찍은 걸 보여준다고 ‘홍대 스타일’이 되는 게 아니다. ‘홍대’라는 단어에서도 ‘클럽, 청춘, 예술’ 등의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홍대 스타일'에는 그런 의미를 살린 게 없으니까 별 매력이 없다. 경상도 사투리 살짝 쓴다고 ‘대구 스타일’도 아닌 거고.
부인에게서 ‘오빠’라는 말이 듣고 싶어서 만들었다는 노래에 너무 거창한 의미를 부여한 건지도 모르겠다만, 이 정도면 정말 정이 가는 강남 스타일이다. 이왕이면 뮤비에서처럼 그 다양한 서민층들이 강남 스타일과 다 함께 말춤을 추는 시대가 오면 더 좋기도 하겠는데, 이건 너무 거대한 시뮬라크르이므로 오늘은 여기까지만.
- 아메리칸 사이코(2000) : 메리 헤론 감독의 범죄 스릴러. 부유한 이가 사소한 이유로 살인을 저지르고 나서부터는 살인에 빠져든다는 줄거리를 통해 현대사회의 병폐와 부유층의 허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본문으로]
- 시뮬라크르 : 복잡하게 설명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단순히 말해 ‘원본을 뛰어넘어 신뢰를 받는 복제’라고 하자. 몽쉐리 빵집의 고로케가 실제로는 더 맛있더라도 사람들이 빠리바게뜨라는 상호를 보고 그 빵이 더 맛있다고 믿는다면 이러한 판단에서 작용하는 것은 실제 빵의 맛이 아니라 ‘빠리바게뜨’라는 기호에 기대고 있는 상상 속의 빵이다. 사람들은 맛을 중시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미지를 보고 소비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