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찬리 생존중/[ 문득 이 단어 ] 에세이

사랑에 대한 단상 - 남자 사람 친구는 또 뭐냐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7. 5. 14:37

-남자 친구 Boy friend, 여자 친구 Girl friend




1.


사랑이란 참 좋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아 그것 때문에 속 쓰린 사람도 숱할 것이고, 밤잠 못 이루며 새벽의 시간을 확인하고도 뒤척이는 이도 있겠지만. 괴롭다고 하여 좋지 않은 것은 아닐지니. 그 괴로움도 무릅쓰게 만드는 어떤 힘이 사랑에는 있는 듯하다.


이 세상엔 지금껏 사랑을 논하는 숱한 가요와 문학과 그림과 영화와 퍼포먼스 등등이 쏟아져 나왔다. 그럼에도 어느 것 하나 사랑이 무엇인가를 명확히 정의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만큼 사랑에 대한 가치는 다양하며, 그만큼 앞으로도 지금까지보다 더욱 방대한 것들이 사랑을 논하게 될 터이다.


따지고 보면 세상에 정답이란 게 뭐 있겠는가. 정답이 없으므로 사람을 고민하게 만든다. 나는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사랑에 대한 각자의 정답이 묘하게도 일치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본다. 가끔 그 개념과 의미가 서로 어긋날 때 다툼이 생기기도 하겠지만, 각자의 사랑에 공통점이 차이점보다 많다면 관계는 지속될 수 있는 게 아닐까.



2.


사랑하는 사람을 칭하는 말들은 참 많기도 하지만(자기, 당신, 허니, 애기-이건 박신양이 대한민국의 많은 연인들을 망쳤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만......- 등) 일단은 가장 기본적인 어휘는 뭐니뭐니해도 남자 친구, 여자 친구이다. 이 단어를 쓸 때에는 우리말에서는 참 애매하다. 남자 친구나 여자 친구는 파생적 의미로 연인을 뜻하게 된 것이지만, 사실 어휘 그 자체로는 연인 말고도 가리키는 사람이 많으니까.


연인과 대비하여 ‘연인이 아닌 남자 친구’나 ‘연인이 아닌 여자 친구’를 부르는 명칭이 우리말에는 없다. 성이 같은 친구를 부를 때에는 앞에 성별을 붙이지 않는다. 오히려 붙이면 더 이상하다. 김장훈이 싸이를 그냥 ‘친구’라고 부르지 않고 ‘남자 친구’라고 부른다면 단번에 스포츠신문 1면 대서특필감이 될 것이다. 그러면 김장훈은 박경림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 우리는 편하게 ‘친구’라고 부르지만 이런 관계에는 마땅한 구어 표현을 찾기가 난감하다.


물론 ‘이성 친구’나 ‘동성 친구’라는 말도 있다. 그런데 그건 딱딱해서 그런지 입에 잘 붙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참 희한한 용어가 나오기 시작했다. ‘남자 사람 친구’, ‘여자 사람 친구’라는 말이 그것이다. 당연히 표준어는 아니고, ‘사람’이라는 일반적인 타자를 가리키는 용어를 사이에 붙이는 것이다. 우스꽝스러운 말인데 이런 말이 생긴다는 건 구분이 필요해졌다는 걸 뜻하는 게 아닐까.


영어권에서는 이 용어가 있다. male friend, female friend가 그것이다. 많이 쓰는 건 아니라도 실제로 사용을 하는 용어란다. 그러면 연인을 가리키는 용어는 자연스레 boyfriend, girlfriend로 될 수 있다. 우리말의 남자 친구나 여자 친구는 영어로 직역하면 오히려 male friend, emale friend에 더 가깝다.


외국에서는 성인에게도 boy나 girl이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대개 친근하게 부르거나 혹은 좀 얕잡아 부르는 말로 통용된다. 물론 friend에 boy나 girl이 붙었다 해서 연인을 얕잡아 부르는 건 아닐 것이고, 친근감의 표시쯤 되지 않을까.



3.


boyfriend를 소년 친구로, girlfriend를 소녀 친구로 부르는 경우를 상상해봤다. 뭔가 느낌이 좀 이상하다. 지금 서른이 넘어간 내가 이십대 후반인 여자 친구에게 소녀 친구라고 하면 놀랍게도 ‘자기’보다 닭살스러운 구석이 생긴다. ‘애기’만큼의 구라는 아니겠지만 뭔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다. 친구들과 만났다. 나는 내 연인을 소개한다. “이쪽은 내 소녀 친구야.” 내 친구들은 아마도 날 미쳤다고 하거나, 소꼽친구의 개념으로 받아들일 거다. “소녀 친구라니, 유치한 녀석.”


우리말에서 소년친구, 소녀친구가 성립될 수 없는 건 남녀 사이의 연애를 어른의 것으로 보는 시각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린 시절에 하는 연애는 제대로 된 연애가 아니라는 말을 하는 이들이 많다. 난 그에 대해 반쯤은 찬성하고 반쯤은 반대하는 편인데 어쨌든 소년 친구와 소녀 친구라고 하면 연애의 단계가 아니라 그저 서로 좋아하는 아이들의 친구관계가 더 많이 연상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소년 친구와 소녀 친구는 어색해도 boyfriend나 girlfriend가 익숙한 건 그만큼 이 단어들을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굳이 영어 어휘를 우리말로 직독직해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어떻게 부르냐에 따라 생기는 마음도 다르지 않을까.


영미권의 연인을 뜻하는 이 두 단어 속에는 그만큼 순수한 감정으로서의 연애의 의미가 들어 있는 것 같다. 나이가 아무리 많이 들어도 서로를 boy와 girl로 만들어주는 사랑.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 속에서는 그런 풋풋한 사랑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결혼을 전제로 한 사랑이나, 주판알 굴리기 바쁜 연애보다 그런 것에 얽매이지 않는 아이 같은 마음 말이다. 우리의 귀에 소년 친구나 소녀 친구가 순수하다기보다 유치하게 들린다면, 우리의 사랑이란 어떤 것일까 하는 것을 한 번쯤 고민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