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싹 안내/생존사

만국의 아마추어가 씨부렁거릴 때까지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6. 5. 14:52

- 개념 미디어 바싹 생존에 부쳐

 

  초저가 여행상품, “니가 가라 펀드”

  “니가 가라”펀드를 만들었다. 세상에 분명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기성의 언론들은 쉬쉬하고 있고, 근데 저대로 두면 나에게도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은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근데 한두 시간 거리도 아니니 우째 갈 수도 없고, 갈 시간은 있어도 갈 돈이 없는 백수의 참담한 심정이란. 그래서 직접 “니가 가라”펀드를 만들었다. 요런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겠고 그러면 한 명쯤 보내는 일은 가능하겠다 싶었다.

  아마추어 특파. 이번에 처음으로 제주도 강정엘 보냈는데, 보내도 꼭 저거들 같은 백수 아마추어를 보내고 그런다. 아마추어가 가서 뭐하나 싶겠지만 그 지점에 우리 “아마추어 개념미디어 바싹”의 그럴듯한 철학이 있다. 만국의 아마추어들이여 씨부렁거려라. 더 이상 기성 언론의 의도적 누락과, 언론인들의 손쉬운 자기 합리화에 내 이웃의 소식을 맡기지 않겠다는 거창한 선언. 이러면 너무 거창해 보이는데 그저 나중에 우리 같은 아마추어, 백수, 학생 같은 개인들을 못살게 굴도록 작동 될 현재진행형의 이슈지역에 아마추어를 급파해서 놀고 느끼고 오라는 여행상품이다.

  전문기자가 아니니까 당연히 전문기사가 나오지는 않는다. 일종의 자료수집가의 역할을 맡아 놀러간 사람인데, 베짱의 크기에 따라서 놀거나 휴양을 하고 올 수도 있을 것이다. 다녀온 느낌을 사진과 글, 그림 등 자신이 지닌 재능으로 치환하는 것이 특파된 아마추어가 하는 일이다. 회의 뒤풀이에서 나온 특파 이야기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순식간에 한 명을 제주도로 보내버렸다. 다녀온 아마추어는 몸살과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바싹의 실행력에 기자들이 슬슬 눈치를 살피고 있다는 후문. 어느 날 밀양이나 바그다드에 보내질 지도 모른다는 공포 엄습.

 

 

 

씨부렁이들의 탄생

  지난해 가을부터 엽서크기의 친환경 주간지라는 아이디어 하나로 화가공동체 민들레 대표 신승훈이 사람들을 모았다. 남들은 신문이지만 엽서는 크기가 작으니 환경오염을 덜 시킨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였다. 그럼 숨은 왜 쉬고 사는지 몰라. 처음에 딱 그런 느낌을 받았다. 어벙한 대학생들과 백수들과 아마추어들이 그 말에 홀려 열심히 잡지를 준비하고 있었다. 준비는 있어도 실체는 나오지 않는 그런 유령회사의 시간이 몇 개월. 잡지는 있으되 기사가 없는 지지부진의 시간. 열심히 준비하던 청춘은 한 명 두 명 생활전선으로 사라졌다. 창간도 하기 전에 폐간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대학 1학년의 지선씨만 꾸준히 나오고 있었고, 이제 막 레포트의 문법에 익숙해진 지선씨가 기사를 완성해내는 것이 미디어의 존폐를 결정지을 판이었다. 참관하러 갔다가 재미들린 나는 나중에 지선씨가 훌륭한 기자가 되면 스승이 나였음을 밝힌다는 조건으로 편집장이 되었고 필사적으로 지선씨의 코너를 짰다. 레포트의 문법을 버리면서 지선씨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 그러면서도 욕먹지 않을 방법을 강구하다가 “친절한 지선씨의 내용만 봐라”가 나왔다. 문화예술에 대해 반말 비평이다. 너무 착해서 반말로 씹고 비판하는 데 애로사항이 있었지만 1호 코너이고 이제는 원로코너로 자리 잡았다.

  부산의 문화소식들을 꾸준히 올리고, 지선씨의 기사가 몇 개 연재되면서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늘어났다. 대단한 유명세를 타서 그런 것이 아니고, 발행인 신승훈 특유의 허세로 사람들을 꾀어왔다. 나는 편집인으로서 오신 분들의 시간이 아까워서 그 사람들의 장점과 특기를 파악하고 하나씩 코너를 짰다. 절대 사전에 모의된 것이 아니지만 초대=코너짜기라는 공식은 달성률 90%. 지금 바싹에서 기사를 맡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기자가 되었다.

  예술가에 대한 편견을 다루는 궁색 발랄 웹툰 “그런 놈, 그런 사람”과 일상의 모습을 감성 일러스트와 짧은 글로 표현하는 “감성미행”을 프리마켓 아마존의 작가 유진과 봉지양을 초대해 만들어내었다. 경우씨의 “콘크리트 이야기”가 긴 산고 끝에 태어났고, 산청의 대안학교에 다니는 나은이가 학교생활을 에세이로 풀어내는 “산청에서 온 편지” 코너를 맡았다. 이렇게 코너가 몇 개 만들어지고 나니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후 함께 해보고 싶다며 찾아오는 사람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전한 발행인의 문어발식 꼬이기를 통해서(솔직히 이때부터는 나도 동조했다) 젊은이들 앞 길 좀 알려달라는 세 얼간이 프로젝트 “몰라뵈서 죄송합니다” 인터뷰, 풀 뜯어 먹고 사는지 이슬먹고 사는지 이웃집 예술가 전격 인터뷰 “이우지 예술가”, 김규정 작가의 캐릭터 골목 탐방 “골목마실”, 그리고 엽서에 실린 표지의 작가 인터뷰가 더해져 6개월 대장정 회의가 폐간을 면하고 바싹 1호로 발간이 되었다.

  그 6개월 동안 참 많은 인연이 생겼고 사건들이 있었다. 폐간과 창간을 넘나드는 그러한 부침의 역사는 고스란히 이름의 변화에 담겨있다. 홀씨-씨부렁-바싹으로 발행 전 이름이 변경되었는데, 한 사람의 기자가 탄생하고 코너가 나오는 과정을 생각했을 때 “씨부렁”이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린다고 의견을 모았다. 우여곡절 끝에 이름은 바싹이 되었지만 우리의 케릭터는 씨부렁이가 되었다. 나중에 편집권 독립이 필요하면 씨부렁이를 근거삼아 발행인을 내쫓을 구실을 대놓고 만들어 놓은 것이다. 기자들도 씨부렁 1, 씨부렁 2 이런 식으로 씨부렁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아마추어 개념미디어 바싹

  바싹은 고등학생, 대학생, 화가, 프리랜서, 백수 등의 아마추어들이 모여서 만든 엽서 연동 웹진이다. 권력의 하수인이나 기업의 홍보지가 된 기성 언론에 대한 대안으로 개인의 시선과 재능을 소중하게 다루는 개념 있는 미디어를 표방하겠다는 의미와, 아마추어들이 코너를 하나씩 만들어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과정을 포함한 미술인 ‘개념미술’에서 수식어를 빌려와 “아마추어 개념미디어 바싹”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검증 단계가 거의 생략됐다시피 한 “니가 가라 펀드”는 이런 과정의 미디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뭉치고 저지르고 수습하는 것이 현재 바싹 정체성의 팔할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마추어스런 사람은 다름 아닌 발행인이다. 그는 빈센트 반 고흐가 못 다 이룬 화가공동체의 꿈을 이뤄보겠다고 신문과 오리고기 배달을 하며 화실의 월세를 충당하고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화가의 포스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그의 현실성이라고 하는 것이 신문배달과 오리고기를 통해서 나오다보니 들어도 득이 되는 말을 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사실을 기자들이 빠르게 간파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원고료를 주겠다고 하는 그의 성실성과, 그의 엉뚱한 아이디어 하나가 의외로 큰 사건으로 이어졌다는 점은 인정해야겠다. 물 한 방울 떨어트렸는데 거대한 파도가 인 꼴이다. 불과 6개월 전 서넛이서 하던 회의가 요즘엔 15명이 훌쩍 넘는다. 하나의 코너가 만들어지는데 3-4개월이 걸렸는데 한 달 사이 코너 6개가 더해졌고 또 두 명의 새로운 아마추어들이 참여를 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대놓고 자랑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새로운 수다의 형식 탄생

  처음에는 이왕 시작한 일이니 그럴듯한 잡지 하나 나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났다. 하지만 꾸준히 모임이 이루어지고 매체의 형식이 잡혀가면서 제일 놀란 것은 회의에 참여한 사람들이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면서, 재밌을 것 같기도 해서 해보자던 마음이 첫 호 5,000부 발행을 즈음하여 개념적 방식이 지니는 힘을 체험하게 되었다.

  스스로 코너를 짜고 회의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체크하고 다시 다듬는 사이 기자로서의 정체성도 함께 만들어졌다고 해야 하나. 그보다도 회의자체가 각자가 지닌 말하기의 방식을 수용하고 다시 돌려주는 즐거운 수다의 자리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자신의 장점을 풀어놓으면 회의테이블이 살을 붙이는 식이다. 거창하게 집단지성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집단잡기를 활용한 장점 부풀리기라고 할 만하다.

  그렇게 하나씩 코너가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가 각 기자들의 장점을 공유하는 과정이 되고 그것은 또 개인이 지닌 수다의 방식을 수용하며 수다집단이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수다가 작품이 되고 글이 되어 기사가 되고 매체가 되는 미디어. 여기가 바로 바싹이다. 바싹의 캐릭터가 “씨부렁이”가 된 것도 이러한 연유다. 씨부렁거리는 것을 무시하거나 멸시하는 방법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더 잘 씨부리도록 하는 것. 얼렁뚱땅 만나게 된 기자들이 하나의 코너를 맡게 된 것을 보면 세상에 자기 코너 하나쯤 만들어 씨부렁거릴 수 있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 같다. 바싹은 그런 씨부렁거림들과 개인이 지닌 수다의 형식을 지지하고 격려한다.

  우리는 성별도 직업도 연령도 넘어서는 또 하나 수다의 형식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과의 말하고-듣는 과정을 통해서 기존에 참여한 기자들의 수다는 물론이고 2호의 발행을 앞두고 체계에서 떠밀렸거나 고군분투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빡빡이의 그림 인터뷰, 세종대왕이 물려준 한글을 분해해서 쓰는 소설 “한글 뜯어먹記”, 단어를 통해 삶을 돌아보는 “문득 이 단어”, 무용과 춤의 거추장을 걷으며 몸에 대해 이야기하는 “무용지물(舞踊知物)”, 성소수자를 다루는 연재소설 “빠스정류장”, 그리고 작은고추 디자인 스튜디오 친구들의 일상 디자인 뽀개기 “작은고추씨의 맵시”가 더해져 파격적인 수다의 전이를 오가고 있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뭔가 거창하지 않지만 자기 이야기와 수다의 방법을 지닌 당신. 당신은 이미 씨부렁이다. 만국도 좋고, 지역의 아마추어들이여 씨부렁하자. 개념 없는 것들에 우리의 이웃과 친구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를 내맡기지 말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