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 생존마감

[산청에서 보내는 편지] 21세기 간디PC방 폐쇄령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6. 5. 14:55



  이제 슬슬 여름이 찾아오려 하고 있는데, 여기는 아직 아침저녁으로 쌀쌀하네요.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이런 저런 일들이 쌓여서 모두가 해롱거리고 있는 듯합니다. 이때쯤 되면 다들 수업에, 과제에, 동아리나 이동학습 준비나 사람들에 치여 해내느라고 큰 에너지가 필요하거든요. 핑계를 대자면 저도 연극연습, 인도 이동학습준비, 농활 등등 좀 바빠서 편지가 늦어졌지요. 그 중에 가장 큰 이유는 간디PC방으로 통하는 간디학교 전산실이 이 주 동안 폐쇄됐었기 때문이에요. 이왕 수업을 땡땡이를 치면 멀리 놀러라도 가지, 수업시간에 전산실에서 컴퓨터를 하는 학생들이 적발되어서 전산실 폐쇄령이 떨어졌어요. 지금은 폐쇄가 풀린 전산실에서 이 편지를 적고 있습니다.


  전산실이 폐쇄됐을 때는 모두 과제를 어디서 해야 할지도 난감하고, 웹툰도 인터넷 쇼핑도 드라마도 못봐서 불편해했습니다. 그렇지만 의외로 좋은 점도 있더군요. 이른바 ‘전산실 잉여’라고 불리던 이들이 밖으로 나오게 됐거든요. 주말에도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거나 도서관에서 책 읽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학교는 기본적으로 탈 기계나 공동체 같은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계에서 자유롭고 인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요. 그래서 공동체 약속에 전산기기 사용을 규제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런데 점점 바깥세상에서 휴대폰이며 노트북이며 뭐라고 규정할 수도 없는 최첨단 기계들이 쏟아져 나오니 복잡해졌지요. 선생님들의 말을 빌리자면 학교에 아무도 휴대폰을 가지고 있지 않고, 공중전화 한 대로 모든 학생들이 집에 연락을 하던 때와는 정말 많이 달라졌답니다. 
 
  그래도 작년엔 큰 산을 하나 넘었지요. 전산기기 규칙을 크게 바꿨거든요. 대부분 더 완화됐지요. 노트북을 식구총회에서 허락 없이, 기숙사나 학교나 어디서나 쓸 수 있게 됐습니다. 카메라와 탭도 전산기기로 규정하고, 실내에서 소리가 나면 집행부가 압수하기로 했어요. 이 밖에도 여러 새로운 규정들이 생기고 없어졌습니다. 몇 차례에 걸친 토의가 있었고 점심시간부터 저녁시간까지 뜨거운 논쟁도 이어졌어요. 한쪽에서는 간디 정신을 지키자 말하고 다른 쪽에서는 지금은 시대가 너무 달라졌다 하고. 누군가는 그건 별로 상관없는 일이라 말하고. 위화감이나 소외감 같은 문제도 있다 하고. 생각이 달라 결정하는 것이 힘겨웠습니다. 전산기기 문제는 한동안 학교의 핫이슈였지요. 그렇지만 그렇게 큰 바람이 부는 동안 생각을 아주 많이 하게 됐던 것 같아요.

  부산에 가서 지하철을 타면 사람들이 모두 조그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더군요. 옆 친구와 얘기하면서도 쉼 없이 문자를 보내고 있고요. 그런 모습이 낯설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그렇지만 이곳 학교라고 예외는 아닌 것 같아요. 다른 여느 학교처럼 휴대폰 사용이 금지되어있지 않으니 자유롭게 스마트폰을 쓸 수 있고 기숙사에서는 노트북을 잡고 있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니 말이에요. 보고 있자면 괜히 씁쓸해지기도 하고, 21세기가 됐는데 어쩔 수 없이 발 맞춰 나가야하는 건가싶기도 하고, 나조차도 기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는 생각도 들고,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사람이 기계를 쓰는 건지, 기계가 사람을 쓰는 건지. 그렇지만 저 또한 컴퓨터가 없으면 과제를 하기도 힘들고 친구 스마트폰을 보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라고요. 아직 고민이 더 필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기숙사에서 노트북으로 영화 보는 것보다는 친구들하고 수다 떠는 게 더 좋고 주말에는 전산실에서 드라마 보는 것 보다는 축구하고 나들이 가는 게 더 재밌다는 겁니다. 이제 글도 다 썼으니 전산실에서 나가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