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은 별매입니다. - 웰빙, 로하스, 친환경
마트에서 장을 보다 보면 항상 ‘친환경 농산물’이나 ‘로하스’, ‘웰빙’ 코너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한때 이 말들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를 좀 지난 것 같지만 여전히 소비자에게 유효한 모양이다. 아마도 이런 말들이 찍힌 단어들을 보면 대체적으로 두 가지의 의미를 떠올릴 것이다.
1. 몸에 좋다.
2. 값이 비싸다.
친환경과 웰빙은 다르다. 그리고 웰빙과 로하스는 단어의 기원으로 보았을 때 거의 반대말에 가깝다. ‘친환경’은 자연에 위해를 가하는 것들을 생산단계에서 최대한 배제시키는 방식으로 얻어낸 생산물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웰빙(Well Being)’은 인간이 개인의 삶을 정신적으로도 건강하고 풍족하게 가꾸고자 하는 일종의 복지의 개념이다. ‘로하스(LOHAS)’는 ‘건강과 지속 가능성을 생각하는 생활 양식(Lifestyle Of Health And Sustainability)'의 준말이다. 웰빙이 너무 개인주의적인 경향이 있기에 우리의 삶을 계속해서 윤택하게 할 수 있도록 환경도 고려하는 방식이 바로 로하스다. 웰빙과 친환경이 결합되었다고 하면 될까. 예를 들어 공기가 안 좋아서 내 집에만 공기청정기를 달아놓으면 그건 웰빙이고, 지구의 대기 자체가 맑아져야 하므로 자동차를 타는 것을 줄이거나 하면 그것이 로하스인 거다.
그런데 마트에서는 ‘친환경’=‘웰빙’=‘로하스’다. 언어란 것이 꼭 어원 그대로 유지 활용되는 건 아니라지만 이건 좀 심하다. ‘친환경’이 처음 어느 가게에서 쓰이기 시작하더니 ‘웰빙’이라는 좀 더 상급 개념이 생기고, 그보다 하이 클래스인 ‘로하스’가 등장한 꼴이 되어 버린 것이다. 가게 A에서 말한다. ‘내가 원조다’. 가게 B가 말한다. ‘내가 진짜 원조다’. 가게 C가 방점을 찍는다. ‘내가 진짜 원조 할매다’. 그런 식이다. “니들은 겨우 웰빙이니? 우린 로하스야. 웰빙? 천박하기는.”
그러므로 어떤 단어를 쓰든 똑같다고 가정하고 생각해 보자. 웰빙 제품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내 몸에 더 좋다. 아무래도 농약 따위를 덜 쓰고 인위적인 조작을 덜 가했을 테니까. 둘째. 자연에 좋다. 이건 내게 직접적으로 뭔가가 오는 건 아니더라도 도덕적인 만족감을 준다(이 ‘도덕적’이라는 말에 대해 썰을 풀기 시작하면 A4 5페이지쯤은 쓸 수 있겠지만 본질이 아니므로 일단 통과).
그럼 웰빙 제품이 왜 비싸지는가. 간단하다. 농약을 쓰면 좀 더 생산량이 늘어난다. 병충해로 죽게 되는 것들이 훨씬 덜하니까. 모양도 더 고와진다. 그러면 더 잘 팔리고 손해가 덜하다. 웰빙에는 이러한 손실품에 대한 비용이 추가되어 있다. ‘얘가 얼마나 잘 키우기 어려운지 아쇼? 그러니 돈을 더 내셔야지’라고 웰빙이 말한다. 공산품도 마찬가지다. MSG를 넣으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맛을 손쉽게 낼 수 있는 반면 그걸 넣지 않으면 대신 다른 것들로 맛을 채워야 하니까 더 비싸지는 식이다. 생산원가 대비로 몇 배의 수익을 거두어들이는 주제에 참 민감도 하시다. 좋은 원료를 넣었다고 한들 10%도 넘기지 않는 함량의 재료들을 가지고 천 원씩 이천 원씩 늘려먹는 꼴이란 뭔가.
친환경이나 웰빙이나 로하스라는 말을 마트에서 보면 그래서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우리에게 ‘건강한 삶’은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별매품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싼 대신 몸에 안 좋은 게 들어간 것들이 제공된다. 뒤집어 말해, 싼 제품에는 그만큼 안 좋은 게 있다는 걸 기공지한 거나 다름이 없으니 그걸 사가는 사람은 몸에 안 좋다는 걸 알고 사가는 거니까 군소리하지 말라는 식이다.
본래 광고 중에서도 비교 광고가 씁쓸한 법이다. ‘가족을 아끼는 남자라면 땡땡 아파트’라는 광고를 보면 땡땡 아파트에 살지 못하는 남자들(여러 가지 이유들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이 재력이겠지 아마)은 좌절감이 커진다. 웰빙 제품을 사지 못하는 것도 비슷한 절망감을 준다. 내 몸을 생각한다면, 혹은 내 애인이나 아이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웰빙을 사고 싶지만 비非웰빙 계열의 제품들의 두 배 가격을 보고 나면 TV에서 나온 사다코와 눈 마주친 사람 마냥 손이 덜덜 떨린다. 내 몸도 귀하지만 내 지갑 사정에 더 민감한 사람들이 가는 곳이 마트가 아니던가.
자본주의라는 것이 우리 둘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값을 매기는 시스템이긴 한데 이건 좀 씁쓸하다. 물도 돈을 받게 되었으니 머지 않아 공기도 돈을 받을까 싶긴 하다만(아, 공기청정기로 돈을 이미 받고 있구나) 친환경과 웰빙과 로하스로 우리의 건강을 잣대질하게 만드는 형국이란. 웰빙을 사야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로하스를 사지 못하면 내 몸을 덜 아낀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건 좀 잔인하지 않나. 건강이 별매품이 아닌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모든 제품에 웰빙이 들어가 있어 굳이 찍힐 필요가 없는, ‘MSG 무첨가’가 라면의 홍보 문구가 될 필요가 없는 세상은 언제쯤 우리 앞에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