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뵈서 죄송합니다]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 김상화님"
고등학생 과외를 한 적이 있다. 몇달이 지나도록 인사조차 하지 않던 녀석과의 만남이 3개월이 되던 날, 나는 그에게 분노의 뒤통수 한방을 날렸고 우린 유교적(?)사제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그 후 그의 성적은 올라만 갔고 나는 생각했다. 애들은 역시 때려야... 그런데 그 학생 보다 훨씬 어리고 철없어 보이는 아이들에게 영화를 만들게 하고 그것도 모자라 영화제 사회를, 심사를 보게 하며 그들을 위한 영화제를 만들어낸 이가 있다. 그를 만나러 갔다. |
몰라뵈서 죄송합니다. #9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 김상화님"
안녕하세요 저희는 3idiotproject입니다. 먼저 간단한 소개 부탁드릴게요
김상화(이하 김) : 소개할게 없어요.
(웃음) 뭐라도 써야되서...
김: 이름은 김상화라고 이렇게 지어졌는데 이름은 굉장히 만족스럽게 쓰고 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한자로 쓰면 서로 ‘상’자에 화할 ‘화’자라고 해서, 서로 화평한, 서로 두루 화합할 수 있는 이런 역할을 아마 태생적으로 이렇게 부여받은 것 같아요. 그래서 뭐 싸우기도 많이 싸우지만 함께할 수 있는 것들을 만드는 역할을 나름대로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그래 뭐 특별하게 소개할 건 없지만 그렇습니다. 그러고 이제 별명으로 두꺼비라는 이름을 많이 쓰고 있는데, 그건 20대때 사회 변역 운동이라고 보통 그 당시에는 그렇게 얘기를 했죠. 이제 그 일을 할 때 본명을 쓰기 좀 꺼림찍한 상황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보통은 가명들을 많이 지었었는데 우리가 일했던 예술가 단위에서는 별명을 지어서 특별히 썼죠. 그래서 그 당시에는 본명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두꺼비라는 이름으로 불리웠고 지금도 그러고 있죠.
저희는 워낙 직함도 많으시고 교수님이시고 여러가지 일들을 많이 하셔서 사실 그런 이야기를 해주실 줄 알았는데 역시 다르신 것 같습니다.(웃음) 저번에 사석에서 대학 시절 얘기를 잠깐 해주셨는데 뭐 쉽게 이수할 수 있는 학점도 포기하시고, 조금은 지금의 우리 대학생들과는 조금의 다른 모습의 생활을 하셨던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김: 다 똑같죠 뭐. 다른 건 없고, 특별할 것도 없고, 제가 대학때 서양화라고 하는 장르를 선택을 하던 시점에선 그게 직업이 될거다 라는 생각보단,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있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라는 생각을 가장 먼저 하게 된거죠. 그렇게 대학을 진학을 하면서 작가로 사회적 삶을 계속 살아간다 라고 하는 게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건 이미 다 알고 있었었고...
음... 고등학교 시절 화실 선생님등의 삶을 보았을 때 전업으로 활동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어요. 교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작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고.. 그런데 교직을 가지고 있으면서 작가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치열한 작업 과정을 가지지 못하다 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작가로 훨씬 치열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평탄한, 평탄이라기보다는 편안한 틀들을 가지고 있다면 작가로서의 치열성은 떨어지는 것 같다라는 생각을 했었고.... 그래서 대학시절 2학점만 더 따면 교사자격증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다 갖췄는데 그 2학점을 포기를 했죠. 그런 선택이 옳다 그르다 또는 뭐 특별하다 이런 생각은 전혀 안 들어요. 그냥 누구라도 그렇게 선택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그리고 지금 친구들도 마찬가지고 두 분도 마찬가지로 자기 삶을 자기들이 선택하고 있는 거잖아요. 똑같은거죠.
평탄한, 평탄이라기보단 편안한 틀들을 가지고 있다면 작가로서의 치열성은 떨어질 것 같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
저도 어떻게 보면 옛날엔 남들과 같은게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이런 저런 에피소드들이 많은데, 혹시나
어릴 때 자기만의 어떤 신념을 위해서 만들어진 어떤 에피소드 같은 거 있으신가요?
김: (웃음) 굉장히 밋밋한 사람이고 농담으로 하는 얘기가 아니고 정말 자폐가 있었어요. 사람이랑 앉아서 대화하는걸, 굉장히 불편해하고, 굉장히 힘들어하고... 그래서 낯선 공간에 가는 걸 굉장히 힘들어하고. 그야말로 자폐에 빠져서 그림 그리기에 딱 좋은 성향이죠. 세상하고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이 아니고 세상을 바라보고 그 세상을 내 나름대로 해석해서 틀어박혀서 재현해내는....이 짓거리 하기에는 가장 적합한 성향을 가진 거죠..(웃음)
안 믿기는데요(웃음)
김 : 아무도 그걸 믿지를 않아(웃음) 그렇기 때문에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까지 학교 다닐 때 친구가 지금 거의 없어요. 아예 지금 만나고 있는 건 지금 당대 이 시간에 지금 만나고 있는 이웃들이지 과거로부터 축적되어있는 친구들이 잘 없는 것 같아요.
그러면 그렇게 성격이 바뀌는거와 순수예술을 하시다가 문화 기획 쪽으로 진로를 바꾸신것이 어떤 관계가 있는건가요?
김: 그렇죠. 그렇죠. 단체 대표가 되면 뭐 별일 안해도 사실 상관 없는데 그 일을 어차피 맡았으니까 내가 개인 창작을 하는 것 보다는 협회의 살림살이들을 좀 더 나은 쪽으로 만들어가는 일들을 해야 했었죠. 협회 살림의 녹록하지 않은 현실들을 극복 해가려면 여러가지 방법들이 있지만, 정책적인 지원을 끌어내는 것도 있을 것이고 또는 다른 단위들과 관계가지며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기도 해야 할 거고, 협회 회원들 각각이 가지고 있는 재능들을 결합시켜서 시너지 효과를 높이는 일도 해야될 것이고. 기타등등 해야 하는 일들이 많잖아요. 그런 지점이 이제 오늘 같은 상황들까지 오게 된거죠.
그렇군요.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 이야기를 해볼텐데요, 뭐 이것도 많은 질문을 받으셨을텐데 왜 하필 대상을 어린이로 하셨는지요?
김: 처음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가 만들어지기 전에 한국사회에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어린이가 주인이 되는 영화 축제는 아예 없었어요. 근데 해외에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영화제는 100개가 넘게 만들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는 전혀 그렇지가 못 하다는 거고, 부산은 부산국제영화제 때문에 굉장히 말도 안되게 영상도시라는 거창한 비젼을 만들어내면서도 그 속에서도 여전히 마찬가지로 어린이는 소외 되었던거죠. 그러니까 얼마나 웃기는 일이냐는 거죠. 이런 절름발이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아이들이 주인이 되는 아이들에 의한 영화축제가 필요하다 라고 하는 필요성을 제기를 했죠.
굉장히 인상 깊었던 점이 아이들이 영화를 만들고 시상을 하고 또 사회까지 본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주최측에서 보면 너무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위험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운영상의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김: 뭐 어려울게 없죠. 실수하는 게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그 실수가 실패가 아니고 오히려 성공적인 요인으로 보였죠. 사회를 보는데 아이들이 더듬거린다고 해서 “무슨 이런 사회가 있냐” 라고 예기 안하잖아요(웃음) 꼬맹이들이 그렇게 하니까, 애쓰는 모습을 보고 굉장히 귀여워하고 좋아하시는거지. 그러니까 권한을 부여함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성과가 훨씬 더 큰거죠.
그리고 , 아이들이 자기들이 만든 영화들을 심사한다고 하는 부분에 대해서 그게 가능한가라고 하는 질문을 굉장히 많이 받고 그걸 또 이해를 못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곤 했는데, 굉장히 음. 뭐라고 할까요, 불편했었어요. 관습, 사회적 통념이란 것이 굉장히 많이, 무조건 아이들이다 라고 하면 낮게 취급을 해 버리는 거죠. 아직 성장이 덜 됐을 뿐 아니라 생각도 덜 컸을 것이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도 없다 라고 몰아부쳐 버리는 태도들이 있는데, 저는 굉장히 잘못 됐다 라고 생각하는 거죠. 누구나 사람이라면 주체적으로 살 수 있고 능동적으로 살 수 있는데,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우리가 기회를 안 준다는 거죠. 우리 사회가 기회를 주지를 않고 있는 것이었을 뿐인데 그렇지 못하다 라고 생각하는 건 저는 굉장히 잘못된 태도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아이들이 선택하는 것이 저는 늘 옳다라고 생각을 하고, 실제로 아이들이 선택한 것을 어른들을 통해 가지고 블라인드테스트를 시켜보면 그 결과가 똑같아요. 아이들이 선택한 거를 노출하지 않고, 어른들한테 선택하라고 한 뒤 어른들이 선택한 것과 아이들이 선택한 걸 비교해보면 거의 한 90%가 동일해요. 그렇다는 거죠
아이들이 선택하는 것이 저는 늘 옳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기회를 주지 않았을 뿐이예요 |
네. 생각은 쉬운데 정말 , 느끼는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김: 그렇죠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편견을 그냥 깬거죠. 우리가 못 보던 걸 보는 것이고 인정하지 않던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우리 시스템이 이제 그렇다는 거지요. 그리고 아이들이 세상을 이해하고 능동적으로 살 수 있도록 주체적으로 살 수 있도록 경험하게 해 주는거죠
아이들을 그렇게 어떤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존재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는 존재로 보기는 우리 통념상으로는 되게 어려운 일인데,
김 : 그렇죠
되게 좋은 시도이고 또 그런 걸 통해서 아이들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이 아이들에게 ‘나쁜 아이’로 성장하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요새 나쁜 아이들 정말 많은데 어제 뉴스를 보니까 중학생들이 애들이 친구를 기중기에 걸어서 겁주고,
김: 응,응 영화에서 많이 나오잖아
그래서 사회적으로 참 위험한 발언인거 같은데(웃음) 나쁜 아이를, 어떤 개념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신건지요?
김: 어.. 제가 이제 나쁘다 라고 하는 개념은 사실 능동적인 주체적인 행동과 사고를 하는 이런 친구들을 이야기 하는거죠. 왜냐면 어른들이 ‘이렇게 하라 라고 시키는 것만 수동적으로 해오는 아이가 아닌, "아, 나 그거 싫은데요? 난 이렇게 하고 싶어요"와 같이 자기 생각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친구들을 착하다고 보지 않는 우리 풍습에 대한 역설을 얘기하는거죠. 그렇게 자기 생각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아이가 나쁜 어린이면 그럼 이 나쁜 어린이를 만들어내자. 이게 역설로 얘기가 되는거죠 근데 기중기에 걸고 그런(웃음)
우리가 어른들이 금기하고 있는 것들을 하는 친구들에 대해서 이제 뭐 비행이라는 단어를 쓰기도 하고 또 나쁘다고 얘기를 하기도 하고 불량이라고 얘기를 하기도 하고 굉장히 부정적인 태도로 굉장히 많이 취급을 한단 말이에요. 근데 그렇게 일탈하는 친구들, 그렇게 일탈하는 친구들일 경우에 저는 오히려 훨씬더 다른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라고 생각을 해요
저도 비슷하게 생각해요 사회적 통념을 벗어나는 것도 큰 용기이지 않습니까?
김 : 그렇죠
정형화된 교육을 받아오는 상황에서 그런 용기를 가진다는 걸 보면 충분히 다른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통념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한다는 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자라나는 친구들한테는, 전 정말 그런 걸 해본적이 없거든요.
김: 마찬가지로 나도 너무 후회스러운데(웃음) 어쨋든 지난 시기이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얘기했다는 ‘요즘 젊은 것들 싸가지 없다’.그런 아주 오래된 고대 사회에서부터 그랬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항상 새롭게 성장하는 세력들은 기득권을 깨고 들어와야 되는 거거든요. 그거는 당연한 역사발전의 원동력이란 생각을 하구요. 그래서 새로 성장하는 친구들이 스스로 기득권들을 자꾸 깨고 확장해 들어와야 사회적 지위들을 확장할 것이고 그렇게 되는거잖아요. 저는 그래서 싸가지 없는 젊은이들이 많은 세상이어야 그 사회가 굉장히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을 갖춘다 라고 생각을 해요.
주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에 세상과 불화할 수 밖에 없는 사람으로 태어나게 된거예요. 태생적으로 세상과 불화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발칙할 수밖에 없는 |
그러면 지금의 20대들을 보면 되게 많이 안타까우시겠어요. 정해진 길을 가는 이들이 대부분이잖아요?
김 : 안타깝다 라고 하는 것보다는 음, 그런 걸 꿈꾸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도 우리사회가 그렇게 만들어왔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것을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 그런데 일반적으로 지금의 친구들은 뭐 공무원 시험을 치려고 하고 대기업에 취업하려고 생각만 하고 있다 라고 얘기들 많이 하지만 이 친구들의 숫자가 저는 그렇게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사회적 현상을 그렇게 일반화 시켜서 얘기하지만 저는 오히려 발칙한 생각을 하고 오히려 당당한 사회참여를 해내는 친구들이 눈에 보이는 숫자는 적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 힘들이 아직, 여전히 남아 있다 생각해요. 그래서 향후에도 여전히 존재할 것이고, 그래서 어떤 사회제도처럼 그렇게 종속되어서 살아가는 삶을 선택할 거라고 생각을 안하죠.
그렇군요. 다음 질문으로 조금 직접적인 질문이 될 수도 있는데 빚도 있다고 하셨는데. 월수입이 어느 정도 되시나요?
김: 계산해 본적이 없어요. 살림이 굉장히 방만하고 개념있게 정리가 안되요. 할 줄도 모르거니와 빚이 만들어 졌던 것은 과도한 욕심 때문이었죠. 수업을 하는 거죠. 왜냐면 예를 들어서 1억이 있으면 1억이란 돈에 맞춰서 그 만큼의 살림살이를 규모있게 짜서 진행해야 하는데, 그런데 잘하려고 욕심을 내다 보면 지나치게 하게 하죠. 그런 상황이 빚을 만들게 하는 거고. 사회적 경험을 크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공부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어떤 형태로든 비용을 지불해야 공부가 된다는 것을 그때서야 깨닫게 되는 거죠. 그 경험이 굉장히 커요. 그 경험이 단체나 조직운영들을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탄탄하게 해주는 계기를 만들기도 해주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질문을 드리는 이유가 저희 세대가 경제적인 부분에 굉장히 많은 집착을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과연 이 길을 걸어도 먹고 살수 있냐 라는 고민을 많이 하거든요. 지역의 문화 예술 영역에서 길을 걸어간다고 한다면 금전적인 측면에서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나요?
김: 그렇죠. 초점이 어디에 두느냐.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를텐데, 쌈수다에 오시면 알게 되겠지만 부산에서 15년에서 20년 정도 일하는 친구들인데 뭐 먹고 사는 문제. 경제적으로 상대적으로 좀 부족하다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다르게 얘기하면 우리가 비교하는 삶을 살게 되면 내 몫은 항상 적게 되어있어요. 비교 할 때엔 나보다 적은 놈과는 비교를 안 해요. 나보다 많은 놈과 비교를 하는 거지. 비교를 하는 순간 그렇게 되요. 나보다 적은 놈과 비교를 해서 난 저놈보다 좀 많이 가졌구나 나눠줄까? 이런 생각 안 하거든... 내 가치는 나보다 항상 많이 가진 쪽을 향하게 되어있고, 나는 항상 열등하게 되는 거죠. 그러면 평생 열등하게 사는 거지 그러니깐 먹고 사는 문제는 굉장히 간단해요. 예를 들어서 우리가 의식주를 해결하는 부분에 얼마의 돈이 들어갈 것인가 잘 따져서 곰곰히 생각해 보면 대충 결론이 나와요. 무엇 때문에 집사야 되고 차사야 되고 안 써도 되는 것들이잖아(웃음)
내 가치는 나보다 항상 많이 가진 쪽을 향하게 되어있고, 비교를 하는 순간 나는 항상 열등하게 되는 거죠. |
제가 20대 때에도 돈벌이 진짜 신경 안 쓰고 살았거든요. 필요하면 그 당시는 건설현장에 일자리 구하는게 굉장히 쉬웠어요. 친구들이 그쪽에도 많았고, 말만하면 일자리가 생기는 거야 거기서 보름쯤 일하면 두달 먹고 살거나 아니면 강사를 하거나 등등. 그 돈이 그리 크진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유지시켜 나가기엔 충분한 돈이었거든.
그럼 그때 직업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으셨어요?
김 :전혀. 삶의 골반 자체가 그런 부분에 탁 막혀 있어서 어찌 보면 굉장히 무능한 인간이예요. 사회적으로 따져 보면. 지금도 마찬가지로 한국사회에서 부동산을 소유해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반대하고 있는데, 다르게 예기하면 능력이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내 소유로 부동산을 내 이름으로 소유한 적이 없고..
그런데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전에 대한 열망이 있을 법한데 그러면 그런 욕구는 없나요
김:그게 다른 사람이랑 다르다면 다를 수 있는 지점인 것 같은데, 불안하지 않아요. 어떤 형태로건 다 된다라는 생각을 하고 요즘 젊은 친구들한테 많이 회자되는. 그 또한 지나가리라. 뭐 얼마나 더 어려워지겠어요. 뭐 노숙을 하면 또 어때(웃음)
지난번 부산노리단의 인터뷰 때 송한얼님이 부산에 있는 여러 단위들이 서로 네트워크가 잘 되어 있지 않는 것 같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선생님이 생각하시기에 부산지역의 문화는 어떤 문제점이 있다 라고 생각하시나요?
김: 없다고 생각하는데요(웃음)
잘되고 있다 라고 생각하시나요?
김: 그렇죠. 저마다 사정들이 다 있기 마련이고, 보통 우리가 문제가 있다 라는 것은 내가 니하고 이야기가 너무 안되서 미치겠다 라는 것이 아니라 다른 동네하고 비교 해 보니깐 좀 안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 저는 문제가 있다 라고 이야기 하는 태도에는 그런 것이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 지향점이 외부에 있기 때문인 거네요.
김: 그렇지, 그렇지.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우리사회의 아주 중요한 패러다임이잖아요. 내가 나로써 성장하고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 무엇을 요구하느냐 그것만 보고 사는 거죠. 그렇게 길들여져 왔어요. 그러다 보니 우리 지역의 문제를. 우리가 인식해서 공유해서 풀어나가려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외부에서 부산이 어떤 문제가 있다 라는 시선을 가지면 문제가 있다 라고 그냥 생각하는 거지.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우리사회의 아주 중요한 패러다임이잖아요. 내가 나로써 성장하고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 무엇을 요구하느냐 그것만 보고 사는 거죠. 그렇게 길들여져 왔어요. |
네 말씀 잘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올 한해의 목표는 어떤 것이 있으신가요?
김: 올해 목표라.. 그것보단. 예순살이 되면 락 밴드를 만들어서 실버 타운을 돌아다녀야 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실현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벌써 이 이야기를 한지 오래되었는데, 개인적으로 굉장히 큰 도전이고. 아까도 얘기 했듯이 자폐적인 성향을 지금도 가지고 있고, 편한 사람이 있는 공간이 아니면 잘 안가기도 하고 낯선 곳에 내 몸을 던지는 것을 굉장히 힘들어 해요. 그래서 무대에 선다는 것은 그래서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인데 음악이 가지고 있는 힘을 이후에 같은 계층, 같은 세대의 사람들과 공유하며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지금 꿈꾸고 있는 최고죠. 또 저는 70정도 쯤에 생물학적 생명을 마감시켜주는 제도를 만들어야 된다 물론 선택해서(웃음),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요즘은 필요이상으로 오래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죽음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다르게 했음 좋겠어요. 정말 행복하게 마감할 수 있는... 어차피 생명은 유한한 것인데, 유한한 생명의 끝도 행복하게 될 수 있도록.... 항상 우리는 죽음을 굉장히 불행한 걸로 생각하는데 지금 나이쯤 되니깐 62년생이니깐 딱 50년 살았잖아요. 이 정도면 충분하거든 사실. 내가 살아보니 그래요. 지금 반 정도 밖에 안 되죠. 반보다 많나? 오십년 살아보니 이정도면 세상을 뭐 경험할거 다 했다 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내 삶의 목표는 지금 현재 내 이웃과 더불어 하고 있는 일들과 또 그 동지들과 함께 최고 행복하게 사는 것. 이게 가장 좋은 목표인 것 같아요. 이건 올해 뿐만아니라. 그걸 깨달았던 지점에서부터 생을 마감하는 시간까지 계속될 것 이구요.
네 긴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