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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사람의 강정마을 여행기 4일차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4. 16. 11:05

 

▲ 여러분은 이제 구럼비를 볼 수 없습니다.

▲ 일부 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구럼비가 그렇게 중요하나?" "제주 경제를 살려야지" "국가 안보가 중요하지"

국가의 안보라는 큰 명분을 내세우고 해군기지건설은 진행 중입니다.

정옥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해군기기 건설 필요성에 대해 노무현 전 대통령은 말라카 해협의 해적을 잡기 위해서, 

현 정권은 이어도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해적은 지금 국가간 공조로 다 퇴치됐고, 이어도는 영토 분쟁의 대상이 아니다.

이 대통령과 중국 후진타오 주석도 이어도는 섬이 아니라, 수중 암초라는 점에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분쟁의 대상의 아니라는데 양국 모두 합의한 것. 그렇다면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해군기지의 안보적 가치는 과연 무엇이냐

결국 정부가 내세운 해군기지 안보논리는 가짜 안보’ 다. 강정마을의 투쟁이야말로 진짜 안보를 지키는 싸움이다.

(출처: 제주도민일보 4.15일자 기사)


▲ 해군을 상대로 한 청문회를 앞두고도 마구잡이 구럼비는 발파되고 있습니다.

국가는 강정이라는 작은 마을에 말 그대로 폭력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 구럼비를 멀리서 바라 봅니다. 철조망과 펜스가 사라진 청정 구럼비를 보고싶습니다.

 

▲ 제주 강정에서의 마지막 날입니다. 오늘도 강정천 앞에는 백배를 드리기 위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일상처럼 자리를 두고 실랑이가 벌어집니다.

경찰이 너무 앞으로 온 바람에 시민들의 자리가 도로에 가까워지기 때문입니다.

쉽게 물러시지 않습니다. 시민들의 <안전>은 두 번째입니다.

 

▲ 강정에서 매일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풍경. 

매일 아침 마을에서부터 강정천까지 삼보일배를 드리는 할아버지.

 

▲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단순히 구럼비해안만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들꽃처럼 순하게 살던 강정마을 사람들도 사라집니다.

 

▲ 3월 22일 목요일. 두번째 청문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제주도지사의 대답을 들을 때까지 제주도청 앞에서 촛불문화제를 이어갑니다.

비는 오고 옷은 젖어 들어가지만 강정마을은 오늘도 침묵할 수 없습니다.

 

강정마을에서 언니 한 분을 알게 됐습니다

김경숙/ 골프장 해고 투쟁 노동자

Q. 강정마을을 찾은 이유는?

: 강정 이야기를 계속 접했다. 육지에 있으면서 강정의 소식을 트위터. 카페를 통해 나누고 퍼 담았다. 답답했다.

강정에 와서 큰 일은 할 수 없겠지만 와서 청소라도, 설거지라도 해야겠다 하는 마음에 달려왔다.

삶이라는 것은 다른 이의 생명을 취하기 때문에 유지가 된다. 풀을 먹든 고기를 먹든 적당히 쓰고 최소한 생명을 취해야

환경도 지키고 나, 더불어 후손도 지킬 수 있다. 그게 참 삶이 아닐까.

 

▲ 비가 많이 왔습니다. 우비를 입어도 비 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주도 와서 제일 많이 한 말은 '춥다'가 아닐까 싶어요.

 

▲ 전날 인터뷰한 강동균 마을회장님. 사실 말 걸기가 죄송할만큼 초췌하셨습니다.

오래 시위에 참가한 활동가와 주민들은 전부 입술이 트고, 눈이 충혈되고...

그래도 깃발은 휘날려야 하는 것이라며 선두에 서서 젖은 깃발을 드셨습니다.

 

▲ 경찰의 과잉 폭력진압에 대한 기자회견 중 망치진압 재연 중입니다.

인간 띠를 재현했던 여자활동가는 '팔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너무 무서워서...'라고 말을 잊지 못했습니다.

망치로 팔을 맞은 활동가는 현재 치료 중입니다.

 

▲ 비 때문인지. 체감 온도가 더 낮게 느껴지는 날입니다.

이런 날에는 춤을 춥니다. 몸치인 저도 열심히 춤을 따라 하며 열을 만들어 냅니다.

오늘은 쑥쓰러움을 무릅쓰고 앞으로 나가 발언도 하고, 노래도 불렀습니다. 

"도지사 오빠에게!"라고 서문을 띄우자 도청 안에 대기하던 전경들도 박수를 쳤습니다.

(후에 생각하면 오빠라고 부른 것도 짜증납니다.)

촛불 문화제는 소란을 떠는 일이 아닙니다.

활동가들의 의견을 듣고, 서로 공유하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긴장도 풀고 웃음도 만듭니다.

촛문 문화제는 서로를 위로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 비를 맞으며 오래 기다렸지만 청문회 답변은 들을 수 없었습니다.

해군 측에서는 질문의 내용이 방대하므로 당장 대답할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결국 제주도청 현관까지 들어가 조용히 시위를 이어갔습니다.

다시  청문회는 10일 뒤로 미뤄졌고, 다음날 제주도지사는 중국으로 출장을 간다고 했습니다.

 출장, 참 허울 좋은 변명. 그 누구도 강정마을을 책임지지 않습니다.

 

▲ 손 잡은 것이 인연이 된 내 사랑 보라할머니.

구부정하게 걸어다니시다가도 구럼비 앞에서는 허리가 쭉 펴집니다.

오늘도 씩씩하게 시위에 참석하셨습니다. 할머니 최고!

 

▲ 시위가 진행되는 도중에, 비행기 시간에 맞춰 자리를 떠야 했습니다.

조용히 자리를 뜨려고 하자, 한 분이 그래도 어르신들께 인사를 드려야 한다고 옷깃을 잡았습니다.

어떻게 간다고 인사를 해야 하나. 마이크를 잡자 막막해졌습니다.

떠난다는 말에 앞자리에 앉은 할아버지의 눈동자가 일렁입니다.

숱한 사람들이 강정마을을 오고가기에 이별에 익숙하실 줄 알았습니다.

 "저는 글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좋은 글을 쓰겠습니다. 강정마을에 필요한 글을 쓰겠습니다."

고개 숙여 인사드렸습니다. 힘내라는 말이 이렇게 슬프고 먹먹한 말이었을까요.

"강정마을 어르신들, 힘내세요."

 

 

 

그동안 남들 보다 조금 더 예민한 감수성을 믿고 밥벌이를 했습니다.

방송작가로 몇 해를 살았지만, 작가라는 이름에 걸맞게 떳떳했던 적은 손꼽아 몇 번입니다.

강정마을에서의 하룻밤이 지나고 나는 너무 외롭고 비겁해지고 싶었습니다.

도대체 여기서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쓸 수 있을까. 막막하고 무서웠습니다.

강정마을은 다른 세계였습니다. 과연 내가 다른 지역에 있다면 강정마을 이야기가 실감이나 날까. 분노할 수 있을까...

그래서 틈나는 대로 느낌을, 생각을, 사실을 페이스북에 중계했습니다.

내 안에서 풀어지지 않는 답은 마주치는 사람에게 질문 했습니다.

 

- 당신은 왜 강정마을에 왔느냐

-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나는 그 당연한 대답 앞에서 입을 꾹 다물었습니다.

한 활동가는 자기성찰이 없으면 누구나 악마가 된다고 했습니다.

적어도 악마가 되지 않기 위해서, 사람 이라는 것이 부끄럽지 않도록

살면서 두 가지를 판단기준으로 삼으려 합니다.

 

아름답냐. 아름답지 않냐.

부끄럽냐. 부끄럽지 않으냐.

 

3박 4일의 짧은 일정, 다양한 만남과 위기가 있었지만,

제주 강정마을은 정말 아름다웠고

강정에서 만난 사람들은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 니가가라 제주도 펀드 아이디어를 내고, 진행해주신 편집자 진명씨, 발행인 훈느님 감사드리며

기회를 주신 바싹팀원들에게도 존경과 감사의 인사 드리고 싶습니다. (다음은 누구~ 다음은 어~디?)

쿨하게 후원해주신 분들께도 애정드립니다.

 

 김수미 특파원/마산지부장

(withss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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