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에서 보내는 편지] 동아리 오디션을 통해 다시 대안을 생각하다
울며불며 3학년 언니오빠들을 떠나보낸 것도 두 달이 지나고 학교에는 다시 새바람이 찾아왔습니다. 아직 여기에선 일명 ‘외송리 미친바람’이라 불리는 칼바람이 쌩쌩 부는 꽃샘추위가 한창입니다. 그래도 봄은 서서히 오고 있는지 학교에는 싱싱한 활기가 돌아요. 학교에 새 식구들이 생겼거든요. 두려움과 설렘을 가지고 온 마흔 명의 신입생들이 드디어 입학을 하고, 저는 선배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덩달아 마음이 들떠있어요.
이제 막 학교에 들어온 아이들에게 ‘뭐가 제일 기대돼?’ 하고 물어보면 대부분은 ‘동아리가 너무 재밌을 것 같아요’ 라고 합니다. 동아리는 학교생활의 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아주 다양한 동아리들이 있고, 동아리들은 저녁마다 모임을 가지고, 함께 공부를 하고, 캠페인을 준비하고 또 열심히 공연 연습을 합니다. 아마 신입생들도 선배들을 보면서 마음에 드는 동아리들을 점찍어놓고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그 전에 거쳐야 할 관문이 하나 있습니다. 신입생들은 생각도 못했을, 바로 동아리 오디션입니다. 동아리들 중 반이 조금 넘는 동아리들이 신입 회원들을 오디션을 통해 뽑습니다. 공연을 잘 할 수 있는지 평가하고, 여러 질문을 해보기도 하지요. 우리도 동아리를 선택하지만 동아리가 우리를 선택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우리 안에서 누군가를 평가 할 수 있는지, 잘하는 사람을 뽑아서 하는 게 맞는 일인지, 정말 공정하게 뽑고 있는지, 이런 미심쩍은 생각들도 함께 들지요. 저 또한 지금으로부터 꼭 1년 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동아리 오디션을 봤었습니다. 지금이야 친구들과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추억이 됐지만 그 때는 그렇지 못했어요. 저도 동아리 오디션을 꽤 떨어졌거든요. 함께 오디션을 본 제 친구는 붙고 저는 떨어졌을 때, 남몰래 화장실 안에서 펑펑 울었던 기억도 나요. 그렇지만 그 때는 여기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새내기였고, 이것이 여기의 규칙이라면 따라야할 것 같았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그 전까지 평범하고 착실한 학생이었습니다. 9년 동안 그런 것들을 해왔기에 잘 본 사람은 붙고 그게 아닌 누군가는 떨어지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리고 3월이 지나자 그 시절은 잊혀져갔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식구총회(일주일에 한 번 전교생전교사가 모여서 하는 회의)는 저도 모르게 이곳에서 무뎌졌던 것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했습니다. 다함께 ‘동아리 오디션제’ 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거든요. 저희 학교철학은 두 가지, ‘사랑’ 그리고 ‘자발성’입니다. 그런데 왜 수많은 동아리에서 오디션을 볼까요? 왜 매년 동아리 오디션에서는 붙는 사람은 붙고 떨어지는 사람은 떨어지는 걸까요? 누군가를 평가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요? 가능하다면 무엇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문화인 동아리, 이대로 정말 괜찮을까요? -이런 것들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토의 안건이었지요. 발의자를 포함해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여러 가지 말을 들으면서 저는 많은 고민을 하고, 또 예전의 저를 떠올렸습니다. 나는 왜 이곳에 왔을까. 그래도 내가 좀 더 행복하고, 그리고 함께 행복한 길을 찾아서 온 것이 아닐까. 모두가 같은 모습, 같은 생각을 하도록 하는 것이 싫어서, 일등과 꼴등. 강자와 약자, 이것 말고 다른 길은 없을까 해서 온 것이 아닌가. 그렇지만 저는 잊고 그저 하루하루를 살고 있더군요.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후배들에게도 동아리 오디션을 치러내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 부끄러움이 저를 되새기게 했습니다. 저는 잘하는 사람, 맞는 사람끼리 모여 하는 것이 아닌, 함께 즐기고 노력해서 맞춰 나가는 법을 배우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것을.
이번 식구총회를 통해서 아마 많은 식구들이 동아리에 대해서, 더 나아가서는 이곳에서 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한번 곱씹어보게 됐을 것 같아요. 어느새 저도 이곳에서 1년을 살면서 여기에 길들여진지도 모르겠어요. 물론 저는 이곳을 많이 사랑하지만, 또 익숙해져서 제가 느끼지 못하는 것들이 있겠지요. 그렇지만 막 이곳에 온 신입생들에게는 여기의 이상한 점들이 눈에 잘 띌 테고, 저도 그 중의 일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만큼 저를 재정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다시 힘을 내서, 이곳에서의 두 번째 해를 치열하게, 또 행복하게 살아 내려고 합니다. 1년 전의 저에게 부끄럽지 않게요.
나은 ynaeun1201@naver.com